칼럼읽다

코로나 2년, 산청군 두 노인

닭털주 2022. 3. 1. 13:48

코로나 2, 산청군 두 노인

 

[서울 말고] 권영란 | 진주 <지역쓰담> 대표

 

 

다음은 골짝 끝 운용마을이다. 맨 뒷좌석에 아직 두 노인이 타고 있다.

운전기사가 못 보던 얼굴이다. 두 노인은 차창 밖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큰 소리로 웃기도 한다.

어르신들, 어데 갑니꺼? 인자 종점인데예.” 운전기사가 큰 소리로 물었다.

두 노인이 동시에 답했다.

면사무소 정거장 앞에서 탔는데 원래 탔던 데로 가모는 되는 기요.” “.”

어째 운전기사가 그다음 말이 없다. 딱 실없는 노인들로 여겨지겠다 싶었을까.

짐짓 큰 소리로 뒷말을 이었다.

군내버스 타고 구갱 댕기오. 기사 양반이 골짝골짝 잘 데꼬댕겨 여직 모리는 동네꺼정 와보요.”

군내버스는 종점에서 5분쯤 정차했다. 두 노인은 잠시 내려 가방에 싸온 따뜻한 물을 마시고 볼일을 보기도 했다. 출발 직전에 올라탄 두 노인은 교통카드를 다시 찍는다. 군내버스는 두 노인을 태우고 다시 덜컹대며 골짝골짝을 되돌아갔고 그사이 새로운 승객은 없었다. 정오 무렵, 군내버스는 신안면사무소 앞에 닿았다.

두 노인은 정거장 근처 식당에서 국밥 한 그릇씩 먹으며 첫 시도에 괜히 설렜다.

버스가 지날 때 어디 골짝 어디 고개에 얽힌 옛날 일을 서로 추억하기도 하고, 평생 살면서 한 번도 가지 못한 골짝과 마을을 새롭게 보고. 마치 어릴 때 처음으로 버스를 탔을 때 기분이었다.

점심을 먹고 난 두 노인은 또 머리를 맞대고 다시 군내버스 시간표를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생비량 방면 군내버스에 올라탔다.

 

최근 들은 아버지의 군내버스 타고 유람후일담이다.

아버지와 맹헌 어른은 산청군 신안면에 살고 있다. 여든 중반의 남성 노인들이다.

난리 통에도 겨울을 겪었지만 두 노인에게 지난겨울은 유독 길었다. 바깥출입은 힘들고 어쩌다 좁은 승강기에서 이웃이라도 마주치면 조심스럽고 재가 방문 노인 돌보미는 일주일 두어 차례 전화 확인뿐이다.

어디서 확진자 1명 나왔다더라 알림만 울려도 인구 35천명 산청군 지역 전체가 위축됐다. 코로나19 2, 5일을 오가던 복지관 서예실은 언제 문을 열지 기약 없었다.

날은 풀렸지만 코로나 사정은 좀체 나아지질 않고 두 노인이 우연찮게 생각해낸 게 군내버스 타고 종점까지 갔다가 돌아오기였다.

사람 구경, 바깥 구경 하기에 맞춤이었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게 아니라 코로나 안전규칙을 지킬 수 있고 체력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시간 보내는 법을 찾아내 스스로 흡족해했다.

시내 노인은 우찌 지내노? 서울은 노인들헌티 지하철 무임승차제가 있어 종점까지 타고 다닌다 카더만 땅속으로 댕기기보다 구갱하기는 우리가 더 좋제.”

한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온 맹헌 어른이나 젊은 시절 도회지를 떠돌다 귀향한 아버지나 주변 동네를 구석구석 다니기는 처음이다.

코로나19 2, 농어촌 지역 노인들의 고립감과 소외감은 더욱 커졌다.

사각지대에 놓인 농어촌 지역 노인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묻는 정치인이나 행정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3920대 대통령 선거를 2주 앞두고 4당 대선 후보의 노인 공약은 노인 돌봄을 개인 영역에서 공공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전환하려는 정책이다.

환영할 일이나 노인을 여전히 복지 수혜자로서 돌봄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

노인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체계를 바꾸는 것은 힘든 일일까.

2025년이면 65살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사회가 된다.

이거 해줄게, 저거 해줄게 선심성 말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노인 정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노인이 행복한이라는 슬로건이 낯선 이유이다.

대통령 뽑는 기 이번이 끝일랑가. 하루죙일 문자 들어오는 소리에 심심치는 않구만. 내도 1표니까.”

사람이 그리운산청군 두 노인은 지금 일주일에 이틀은 군내버스 타고 유람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