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선거 후의 날들

닭털주 2022. 3. 1. 13:51

선거 후의 날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날 아침, 출근한 직장동료가 내뱉듯이 말했다.

더러워서. 이제 랭귀지스쿨 등록해야겠네.” 그가 말한 랭귀지는 전라도 방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엔 이런 말을 들었다.

수상해, 내 주위에 그 사람 찍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는데 웬일인지.”

다수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증오와 혐오에 싸여 있다 보니 그리 된 것이었을까.

 

선거 후의 5년이 불안하다

갈등과 고통의 시간이 다가온다

 

급한 대로 결과 승복 등과 함께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으로

통치구조 개헌 논의를 기대한다

 

선거 결과의 승복에 관해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비열한 것은 2016년에 도널드 트럼프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선거에서 이긴 경우에만 결과에 승복할 것이다.”

2020년의 선거에서 지자, 그의 지지자들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겠다면서 의사당에 난입했다.

우리나라의 이번 대선에서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기면 공명선거, 지면 부정선거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게다.

내로남불의 악성 변종을 보는 기분 아닐까.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지 않는다. 이기거나 배울 뿐이다.”

그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 정신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무는 쓰러졌을 때 가장 잘 알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건 수없이 낙선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전기를 쓴 칼 샌드버그의 말이다.

패자 측이 선거 패배 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 부족했을까를 성찰하는 것이다.

잘 지지 못하면 또 진다.

이기면 승복이니 뭐니 할 문제가 없으니 그만이라고? 너무 좋아할 것 없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진영 논리의 승리이며 상처와 부담을 안은 승리일 것이다. 진영 논리는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고 병증이다. 보통의 양식을 가진 이라면 자기가 지지한 후보자가 당선되어도 걱정할 일은 많다.

지난 6일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지지 이유 중 가장 비율이 높은 것은 개인적 자질과 능력이었다(45.0%).

그러나 대장동 사건에 관련된 의혹이나 그 배우자의 문제는 과연 이 후보의 당선으로 모두 가라앉을 만한 성격의 것일까.

한편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지지 이유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것은 정권 교체를 위해서라는 것이었고, 후보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서라는 이유는 미미했다(4.1%).

정권 교체는 좋은 정치를 보기 위한 것 아닌가? 하지만 윤 후보는 기차 객석에 구둣발을 올려놓거나 집 없는 사람이 민주당을 찍게 하려고 정부가 악의적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강변하는 인물이다.

당선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자질이나 능력이 수월해질 리 없다.

이른바 ··의혹이 근거 없는 것이고 그가 도덕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여부도 미지수다.

본래 두 후보 모두 국민들이 바라는 수준은 아니었다.

상당수 유권자는 어느 후보가 마음에 들어서라기보다는 상대 후보가 밉거나 싫어서 투표할 것이다. 새 대통령은 반쪽조차 못 되는 위태로운 지지를 받아 출발한다. 누가 이기든 그 지지세력들은 그간의 증오와 복수심에서 패배한 후보에 대하여 선거기간 중 제기되었던 의혹을 밝혀 형사책임을 물으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반대세력은 새 대통령이나 정부의 작은 실책이나 과오에도 무지막지한 공격과 비난을 퍼부울 것이다. 이제는 말버릇이 되어버린 탄핵 주장이 걸핏하면 튀어나올 것이다. 거기에 편향적 언론과 소셜미디어가 가세할 것도 불 보듯 뻔하다.

누가 이기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이라고 하지만, 부동산 가격의 비정상적 상승과 부동산에 대한 집착적 수요는 자산소득 총액이 근로소득 총액을 넘어선 1988년 이래 우리 사회의 오래된 문제였다. 문제에 대한 대책이 잘못된 것은 분명하지만 대책이 문제를 만든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다음 대통령을 계속 괴롭힐 것이다.

두 후보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손실을 보상할 계획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재원 마련은 쉽지 않고, 코로나19가 끝나기는 아직 멀었다. 별로 절박해 보이지는 않아도 어떤 이들에게는 솔깃할 선심성 공약도 많지만 아마 다 이행하지 못할 것이다. 국가채무는 빠르게 늘고 있고 물가상승률은 예년의 평균을 뛰어넘는다. 새 대통령이라고 해서 대북 관계와 실업 문제를 시원스레 해결할 묘수가 있을 리도 없다.

 

급한대로 그나마 선거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 정치보복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 뒤늦게라도 협치와 관용의 정신을 국정의 어느 부문에서든 보여 주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으로 통치구조 개선을 위해 시작할 개헌 논의를 기대할 수는 없을까.

선거 후의 5년은 불안하다.

누구를 지지했든 편치 않게 가야 할 날들, 갈등과 고통의 일월이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