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끼인 나라’ 재상의 조건

닭털주 2022. 3. 2. 18:31

끼인 나라재상의 조건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춘추시대 정나라가 있었다.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어 일상이 피곤한 나라였다.

그곳에서 자산이라는 인물이 배출되었다. 공자보다 한 세대쯤 전 사람으로 명재상이었다.

그는 사상 최초로 성문법을 만든 이였다.

그래서 법가식 통치를 비난했던 유학자들에게 비난을 들어왔다.

그러나 공자는 자산을 높게 평가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자산은 옛 성왕의 사랑을 물려받아 행한 이였다면서 눈물짓기도 했다.

공자가 자산을 높이 평가한 까닭은

그가 22년 재상으로 일하면서 주변 강대국의 외침을 미연에 방지하고, 내정을 잘 돌보아 전쟁이나 정변 같은 혼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백성들은 한층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평화로운 삶의 실현이 자산 극찬의 근거였던 것이다.

자산은 어떻게 하여 끼인 나라의 이상적 재상이 될 수 있었을까?

이는 자산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철저하게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는 젊었을 때 벌써 박물군자(博物君子), 곧 박학다식한 군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학습과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하늘이 그에게 빼어난 기억력과 응용 능력을 허락했다고 해도, 해박한 지식과 정보를 자기 안에 담고 이를 도덕적으로 제어하는 노력을 게을리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덕분에 자산은 끼인 나라의 위정자로서 반드시 지녀야 하는 정확한 현실 판단과 미래 예측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는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는 조국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미래를 조국에 이롭게 조성해가는 데 더없이 필요한 역량이었다.

실제로 자산은 사태나 정세의 추이를 정확히 예측하여 대비함으로써 주변국이 함부로 굴지 못하게 했고, 안으로는 자신을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듦으로써 누구나 믿고 따를 수 있는 기준이 되었다. 일국의 정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재상이 예측 가능한 존재일 때 비로소 힘없는 이들은 미래를 안정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된다. 자산으로 인해 백성의 삶이 안정화된 이유다.

 

역사가 현실을 비춰보는 거울이듯 자산도 그러하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우리가 끼인 나라라는 사실은 그대로다.

자산 같은 위정자가 우리 사회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