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꽃 피던 날
수정 2024-03-05 08:26 등록 2024-03-05 07:00
무꽃. 한겨레 자료사진
이광이ㅣ잡글 쓰는 작가
초봄 아침 볕이 남창 왼편에서 작은 삼각형으로 들어온다. 예각이 둔해지면서 빛은 점점 거실 안을 비춘다. 밥상 모서리에서 빛나다가, 밥을 다 먹을 때쯤이면 등 뒤에 와 있다.
일 없는 날 아침은 느긋하고 한가롭다. 베란다 손바닥만 한 화단에 모종해 놓은 수선화 몇 송이, 그리고 못 보던 꽃이 피었다. 하얗고, 약간 보라와 노랑이 섞인 작은 꽃 여러 송이가 얼굴을 비비며 피어 있다. 제법 굵은 줄기를 따라 내려가 보니 몸통이 무다. 무는 절반쯤 흙에 묻혀 있고 땅 위로 나온 몸통이 오그라들어 쭈글쭈글, 늙은 할멈처럼 말라비틀어졌다.
“저것이 뭣이래요?”
우리 아파트 아랫집에 노인이 혼자 산다. 엄니하고 말벗하며 지내는 사이다.
노인은 근처 야트막한 산밭에 부지런히 뭘 뿌리고 거두고 하여, 엄니가 가끔 얻어먹는다고 했다.
“베란다에 무가 꽉 찼더라. 양껏 가져가라고 해서 여나무 개 가져왔다. 가을무가 삼보다 낫다고 하더라만, 영 형편이 없더라.”
몇 개 씻어 쪼개보니 바람이 들어 퍼석퍼석하고 맛도 별로 없었다.
먹자니 그렇고, 버리자니 그렇고, 해서 마대 자루에 넣어 둔 지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러다가 음식물 쓰레기 버릴 때 같이 치우려고 들고 나갔다. 근을 재서 버리는 쓰레기 값이 4천원이나 나왔다 한다.
마대를 열어 무를 하나씩 버리는데, 그 안에서 촉감이 다른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꽃이었다. 몸끼리 서로 부대끼는 틈 속에서 퍼런 꽃대를 세우고, 굽은 대 위에 하얀 꽃을 피운 것, 그것을 버릴까 망설이다가 바닥에 따로 놓았다. 다른 것들은 명줄을 놓아 버렸고, 마대 안에서 개화한 것은 두 개였다.
“그 속에서 살아 볼라고 애쓴 것이 기특해서….”
엄니는 두 개를 들고 돌아와 저 화분 흙 속에 꽂아 두었던 것이다.
내가 “버려불제 그러셨소?” 했더니, “차마 못 버리겄드라” 하신다.
삶은 이토록 극적이다.
아침 밥상에서, 저 쪼그라든 무의 생존과 귀환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 꽃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언젠가 마주쳤던 고양이의 눈빛이 생각났다. 깊은 밤 술 한잔하고 대리운전으로 귀가하던 날에 보았던, 도로를 가로지르다 차에 치일 뻔했던 고양이가 깜짝 놀라 돌아보는, 헤드라이트에 비친 그 눈빛. 이 꽃이 그 눈을 닮았다.
날 지난 우유를 보며 머뭇거리는 어머니에게 버려부씨요! 나는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과자를 모으면서
멤생이 갖다줘사 쓰겄다
갈치 살 좀 봐라
갱아지 있으먼 잘 묵겄다
우유는 디아지 줬으면 쓰것다마는
신 짐치들은 모태갖고 뙤작뙤작 지져사 쓰겄다
어머니의 말 사이사이 내가 했던 말은 버려부씨요! 단 한마디
아이가 남긴 밥과 식은 밥 한덩이를 미역국에 말아 후루룩 드시는 어머니
무다라 버려야, 이녁 식구가 묵던 것인디
아따 버려불제는, 하다가 문득…
그래서 나는 어미가 되지 못하는 것
우연히 한 식당의 벽에 걸려 읽어보았던 시, 이대흠의 ‘밥과 쓰레기’라는 시다.
‘버려부씨요!’ 하고 나도 엄니에게 늘 했던 말이 여기 시가 되어 나온다.
‘버려부씨요!’ 했던 것들은 염소와 강아지와 돼지와 엄니를 살리는 밥으로 되살아나고, 정작 쓰레기로 버려진 것은 ‘버려부씨요!’ 하고 내뱉은 그 말이었다.
꽃 피운 무를 차마 버리지 못하는 손과 ‘무다라 버려야, 이녁 식구가 묵던 것인디’ 하는 말이 이제 와서 ‘그래, 인(仁)이 어디 먼데 있더냐?’ 하는 ‘자왈’로 이해된다.
여러 해가 지나 어머니도 떠나시고 하여 그 무가 제명을 살고 또 종자를 맺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냥 가끔 그 무꽃이 생각난다.
그 뒤를 따라, 지금은 배불러 밥을 남기지만 옛날에 일부러 밥을 남겼던 사람들,
밥그릇 절반도 못 되게 자시고 뒷사람 먹으라고 짐짓 배부른 척했던
세월을 살다 간 사람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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