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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콤파라티오’, 비교하는 인간 [똑똑! 한국사회]

닭털주 2025. 5. 1. 10:17

호모 콤파라티오’, 비교하는 인간 [똑똑! 한국사회]

수정 2025-04-30 18:44 등록 2025-04-30 17:32

 

 

 

게티이미지뱅크

 

이승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반도체물리학 박사)

 

 

5월은 기념일이 풍성한 달이다. 노동절로 시작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이 이어지니 가정의 달로도 불린다. 설날과 추석 못지않게 지출이 늘어나는 달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다소 덜 알려졌지만 이렇게 각종 기념일이 줄지어 있는 5월에는 매우 의미 깊은 기념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520세계 측정의 날이다.

세계 측정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75년 파리에서 체결된 미터협약을 기념한다.

 

미터협약은 세계 17개국이 참여한 국제조약으로서 길이 단위 미터와 질량 단위 킬로그램을 함께 사용하기로 맺은 국제적 약속이다. 지금이야 가정집 욕실 앞에도 체중계가 놓여 있을 만큼 측정이 일상이지만, 당시는 국가마다 심지어 마을마다 사용하는 단위가 제각각이었다. 당연히 상호 교류와 신뢰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미터협약은 단위의 정의와 보급을 통일하고 측정값을 국제적으로 신뢰하게 함으로써 인류가 공통된 기준에 따라 상호 비교할 수 있는 결과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든 출발점이었다. 미터협약을 기점으로 생긴 파리 국제도량형국에서는 측정의 국제 동등성을 확보하기 위해 측정 분야마다 위원회를 운영한다. 각국 측정표준 대표 기관이 참석하는 분과위원 국제회의는 매년 열린다.

 

특히 올해는 미터협약 150주년이자 필자가 소속된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도 창립 50돌을 맞은 뜻깊은 해이다. 올해에도 국제도량형국에서 물질량자문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나와 우리 연구원의 동료들은 이 회의에 참석해서 각자의 분야에서 지난 1년간 수행해온 측정값의 국제 상호 비교 결과와 이를 준비하기 위한 사전 연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얻은 과학적 사실들을 함께 논의했다. 회의에서 만나는 다른 나라 과학자들과는 1년에 한번뿐인 만남이지만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끼리 느끼는 연대감은 깊다. 각국을 대표하는 측정표준 기관의 일원으로의 사명감 또한 이 모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과학자라고 해서 모든 언행이 오직 과학만은 아니다.

매년 표면분석 분야 과학자들이 회의 뒤 함께하는 소소한 저녁 자리는 힘들었던 일상부터 자녀 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오가곤 한다. 올해는 유난히 국제 이슈가 대화의 중심이 됐다. 과학자들은 그저 연구에 몰두하고 싶지만, 유럽에서는 전쟁으로 공동 연구가 어려워졌고, 미국에서는 정권 교체로 출장이 까다로워졌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내게도 질문이 쏟아졌다. 대한민국의 연구·개발 예산 축소가 회복될 가능성은 있는지, 십대들까지 참여한 시위는 소문처럼 평화로웠는지 등이었다. 나로서는 이번에 주관 진행하기로 결정된 국제 비교로 주목받고 싶었지 이러한 이슈로 주목받고 싶지는 않았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선거 때마다 쏟아졌던 공약(公約)이 번번이 공약(空約)에 그쳤던 기억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만큼은 다르기를, 기초과학을 포함한 과학기술계가 모두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측정의 본질인 비교는 인간 본능에 가깝다.

과연 실존하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뭐든지 잘하는 엄마 친구 아들이나 아빠 친구 딸때문에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자주 비교당해왔는지를 떠올려보자. 누가 성적이 더 좋은지, 누가 무슨 상을 받았는지 등등 모든 게 비교거리였다. 어디 학창 시절뿐이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더 어린 시절에도 비교와 측정은 끊임이 없었다. 생후 몇개월 만에 뒤집기를 했나, 몇개월째에 두 발로 걸었나 등, 인간의 생애는 측정과 비교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애초에 산과 병원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몸무게를 재고 키를 재서 평균값에 비해 어떤지부터 기록한다. 그러니 나는 인간을 감히 호모 콤파라티오(homo comparatio), 비교하는 인간이라고 부르련다. 내년 국제회의 식사 때는 대한민국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 부러움을 사게 되기를, 호모 콤파라티오로서의 나는 진심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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