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서울 밖’이 아닌 ‘부산’에서 [서울 말고]

닭털주 2025. 5. 14. 20:11

서울 밖이 아닌 부산에서 [서울 말고]

수정 2025-05-11 18:34 등록 2025-05-11 15:08

 

 

 

부산 영도구 흰여울마을. 부산시 제공

 

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고향으로 돌아가서 사는 건 어때요?’ 볕 밝은 날, 처음 보는 누군가가 물었다. ‘어떤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실패라고 생각하기도 하던데.’ 카페 통창 너머로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평일 대낮의 서울 풍경을 눈으로 더듬으며 대답할 말을 고르던 순간을 기억한다. 아마도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던 것 같은데, 질문하는 목소리가 산뜻했던 것과 달리 자꾸만 내 마음은 가라앉았다.

 

그 무렵 고향에서의 삶은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일 같았다. 서울을 떠나 부산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말에 잘 된 것 맞지?’라고 묻던 질문이 시작이었을까, 자연스럽게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성장하는 친구들의 소식을 전해 들을 때부터였나. 부산행을 선택하고도 한동안 이 선택이 맞는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기보다 서울을 떠난 것만 같은 날들이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고향과 서울의 어떤 것들을 끝없이 셈하고 저울질하게 됐다. 서울이 기준이 되는 그 계산에서 언제나 패배하는 쪽은 부산일 수밖에 없었다.

 

서울 밖에 방점을 찍으면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자꾸만 마음이 갈급해졌다.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하지만 중요한 것만 같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

가끔씩 서울을 찾을 때면 어느새 낯설어진 지하철노선도를 바라보며 어디론가 계속해서 미끄러지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이곳이 서울 밖이 아닌 부산이라는 걸 알려준 건 여기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이유로 이 생동감 넘치는 바닷가 도시에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 그들은 지역에선 절대 안 될 거라 치부하는 일에 도전하고,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아도 스스로에겐 중요한 일을 시도하고, 부산이어서 만들 수 있는 경험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지금 이 순간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이들은 바깥의 기준이나 잣대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포부와 야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과 마주하면 지금 여기에 머무르지 못하고 자꾸만 애먼 곳을 헤매는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비로소 이곳이 서울 밖이 아닌 부산이 됐다.

 

얼마 전 긴 연휴의 시작에 만난 이들도 그랬다. 부산을 찾은 오랜 친구가 소개해준 친구들이었다.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독립영화 배급을 하며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만의 취향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을 이제 막 완성한 친구를 만났다. 부산에 대한 마음도, 앞으로의 계획도 달랐지만, 각자 다부지고 야무지게 이곳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풍성한 대화 틈에서 문득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삶의 가능성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지금, 이곳,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 또렷하게 떠오를 것 같은 어떤 새로운 풍경. 좁고 편협한 관점이 다시 한번 넓어지는 것만 같았다.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엔 영도 바다를 따라 오래 걸었다.

오랜만에 부산을 찾은 친구는 자주 멈춰 서서 여기 참 좋다를 외쳤고, 그 애가 카메라에 담는 풍경들은 더없이 부산답게 아름다웠다. 봄날의 영도를 만끽하며 언젠가 답하지 못한 질문에 대해 생각했다.

 

삶을 흑과 백으로만 나눠 본다는 건 좀 이상하고 슬픈 일 같다. 지역이 그저 서울 밖이 되는 게 이상하고 슬프듯이. 고향으로 돌아와 좋은 건, 납작한 상상력 너머의 무수히 다채로운 삶을 비로소 총천연색으로 볼 수 있게 된 일. 뭐가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건 좀 근사하지 않은지.

 

다시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고 생각할 동안 바다는 윤슬로 쉴 새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눈이 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