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919

다시, 공부란 무엇인가

다시, 공부란 무엇인가입력 : 2024.04.25 20:55 수정 : 2024.04.25. 21:00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새삼 공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내가 속한 작은 인문학공동체와 나의 공부에 대한 질문이다. 신도시 주택가에서 16년 전 처음 마을인문학 공동체를 열었을 때, 세상에서는 우리를 ‘공주(공부하는 주부)’로 불렀다. 당황했지만 현실이었다. 이후 ‘공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은 “다른 공부가 다른 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다시 모스, 마르크스, 폴라니 등의 공부로 연결되고, 또다시 마을작업장, 마을화폐의 실험으로 나아갔다. 이후 청년들이 오면 “청년들과 중장년 세대의 연대”라는 화두를 붙잡고, 또 밀양과 엮이면 “에너지 정..

칼럼읽다 2024.04.28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유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유그들에겐 너무 짧은 신호등, 위험해도 건널 수밖에 없다24.04.25 17:40l최종 업데이트 24.04.25 17:40l손보미(springhand)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퇴근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직 몸이 가볍구먼!' 자신을 과대평가했던 탓일까. 달리기를 시작한 지 이틀 만에 문제가 생겼다. 오른쪽 발목과 발바닥이 욱신거렸다. 운동화 바닥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생겼다. 1시간을 생각하고 나갔던 달리기를 20분만 하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마침 신호등 초록불이 깜빡거리며 남은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빨간 불로 바뀌기 남은 시간은 15초.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뛰었을 그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했다. 횡단보도 앞 그늘막 의자에 앉..

칼럼읽다 2024.04.26

저마다의 디아스포라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저마다의 디아스포라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수정 2024-04-24 19:06 등록 2024-04-24 15:04  두 개의 디아스포라, 베네딕토 수도원과 미군부대 사이의 피정센터 ‘경계 위의 집’. 사진 이명석  이명석 | 문화비평가  오랜만에 고향 가는 경부선 기차를 탔다. “노스탤지어의 여행인가요?”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야 한다. “아니오. 디아스포라의 여행입니다.” 기차가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고향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느꼈다. 가장 최근에 들은 고향 소식은,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 이승만 동상을 가져와 전적지에 세웠다는 거였다. 어릴 적 가족이 농사 짓던 참외밭이 근처의 다른 전적지 옆에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온다고 아스팔트를 전적지 앞까지만 깔았던 기억이 난다. “니는 다리..

칼럼읽다 2024.04.25

5평 토굴서 30년…“편안함이란 몸과 마음이 같이 있는 거요”

5평 토굴서 30년…“편안함이란 몸과 마음이 같이 있는 거요”이광이 잡념잡상 _02  ‘무사찰주의’ 지리산 암자 도현스님수정 2024-04-24 11:40등록 2024-04-24 07:00  “자기가 숨 쉬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봐요. 지금 숨 들어간다, 나온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거라. … 들숨날숨 가만히 보고 있으면 멀리 떠돌던 잡념들이 내 안으로 돌아와요. 마음을 불러 몸 곁에 두는 거지. 몸과 마음이 같이 있으면 편안해지는 거요. … 지혜는 내 것을 덜어낼 때, 내 몫을 덜 가질 때 나와요. 당장은 손해 같지만 나중에 돌아와. 삭히면 깊어지듯이.”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꽃달(花月)’, 들이나 산이나 백화난만이다. 겨울을 넘어온 동백과..

칼럼읽다 2024.04.24

씨 말리는 사회, 지속 가능한가

씨 말리는 사회, 지속 가능한가 입력 : 2024.04.14. 21:48 박이은실 여성학자 씨앗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봤는가? 봄마다 색색의 꽃잎을 터뜨려 겨우내 쪼그라들었던 마음을 활짝 펴주는 갖가지 모습의 꽃나무들도 씨앗에서 그 삶의 처음을 시작하고 밥상에 오르는 각종 봄나물들 역시 씨앗에서 시작한다. 인간도 그렇다. 그러니 씨앗이 사라진다면 세상도 그걸로 끝이다. 씨를 말린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다. 예부터 농부들은 씨앗지킴이였다. 그해의 먹거리를 책임질 농사는 전해에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을 꺼내 튼실한 것들을 잘 골라 준비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대량으로 짓는 농사도 마찬가지이고 소량의 다양한 식물들을 키우는 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콩, 깨, 상추, 파, 배추, 호박, 오이… 밥상에 올릴 ..

칼럼읽다 2024.04.24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입력 : 2024.04.21 21:44 수정 : 2024.04.21. 21:47 서정홍 산골 농부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식구회의를 열었다.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용돈을 올려줄 때도, 옷이나 신발을 살 때도, 학원과 학교를 선택할 때도, 어떤 일이든 식구회의를 열어 결정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다 자라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산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식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식구회의를 연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도 나눈다. 그리고 서로 덕담을 나누기도 한다. 나는 식구회의 때, 자식들에게 한평생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가끔 한다. 이오덕 선생님 말씀처럼, 가난해야 물건을 귀하게 쓰고, ..

칼럼읽다 2024.04.22

헤어진 뒤에 진짜 만남이 시작된다면

헤어진 뒤에 진짜 만남이 시작된다면 입력 : 2024.04.21 21:38 수정 : 2024.04.21. 21:41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이별에 관해 생각하고 있다. 대개의 이야기는 모험을 떠나며 시작되지만 은 독특하게도 모험이 끝난 직후에 시작되는 애니메이션이다. 십 년간 세상을 떠돌며 함께한 네 명의 일행. 그 어렵다는 마왕 퇴치까지 완수했으므로 이들은 뿔뿔이 흩어지기로 한다. 이별에 가장 동요하지 않는 자는 주인공인 프리렌이다. 그의 동요 없음은 긴 수명과 관련이 있다. 그는 엘프라서 천 년 넘게 산다. 십 년의 여행쯤은 무수한 찰나 중 하나일 뿐이다. 프리렌에게 ‘어떤 마을을 느긋하게 둘러본다’는 개념은 수십 년 단위의 시간을 의미한다. 백 년을 빈둥거린다 해도 큰 상관 ..

칼럼읽다 2024.04.21

십 년째 오는 봄비

십 년째 오는 봄비 입력 : 2024.04.18 20:46 수정 : 2024.04.18. 20:56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비는 신비한 물질이다. 저 창공에 얼마나 깊은 우물이 있어 이 포근한 공중에서 느닷없이 물이 떨어지는가. 비가 와도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이 퍽 놀랍기도 하다. 비는 누구에게만 오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온다. 사물을 적실 뿐 아니라 사람을 촉촉하게 만든다. 우수 지나 곡우 근처, 이즈음에는 물이 많이 필요하다. 비는 와야 하는 것. 비가 온다. 놀라움이 오고 있다. 봄비 내린다. 비는 하늘에서 온다. 비에는 많은 성분이 들어 있다. 비는 천하에 골고루 내리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별하게 안긴다. 오늘 오는 비는 그야말로 십 년째 매해 오는 비. 사월에 찾아오는 비는 하늘이 흘리는..

칼럼읽다 2024.04.20

‘자두청년’을 떠나보내며

‘자두청년’을 떠나보내며 입력 : 2024.04.18 20:49 수정 : 2024.04.18. 20:57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설날이 지나자마자 농촌의 청년 활동가에게서 무거운 연락을 받았다. 청년 귀농귀촌 1번지로 알려진 의성군으로 귀농해 자두 농사를 지으며 ‘자두청년’이자 ‘로컬크리에이터’로 살았던 청년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고, 뇌사 상태라는 소식이었다. 고인의 유서에는 농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청년단체의 수장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으로 당한 착취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 적혀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사실무근이라 반발하지만 조만간 수사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농촌에 살러 들어간 청년들은 이런 일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고들 입을 모았다. 알려지지 않은 사건사고도 많고, 좁..

칼럼읽다 2024.04.19

지금 머무는 그곳에

지금 머무는 그곳에 입력 : 2024.04.16 21:49 수정 : 2024.04.16. 21:50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이따금 주변에 안부를 전할 때면 제주에 사니까 어떤지 질문받곤 한다. 부럽다고 했고, 타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선택이 용기 있다고도 했다. 그럴 때면 어떻게 답해야 맞을지 고민되었다. 로스쿨 제도의 도입 이래 신규 교원 임용공고가 거의 나지 않아 온 세부 전공을 가진 난 안정적으로 공부하고 가르칠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사실 다 좋았다. 도심 한복판이나 산골, 혹은 강가나 항구였어도 마찬가지로 기뻐하며 갔을 것이다. 그건 생계의 문제였지 선택이나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간절했던 대상은 거주 조건보다는 일할 자리였다. 지역의 숨은 명소를 추천해달라 청할 때도 답하기 쉽지 않았..

칼럼읽다 2024.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