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921

‘자두청년’을 떠나보내며

‘자두청년’을 떠나보내며 입력 : 2024.04.18 20:49 수정 : 2024.04.18. 20:57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설날이 지나자마자 농촌의 청년 활동가에게서 무거운 연락을 받았다. 청년 귀농귀촌 1번지로 알려진 의성군으로 귀농해 자두 농사를 지으며 ‘자두청년’이자 ‘로컬크리에이터’로 살았던 청년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고, 뇌사 상태라는 소식이었다. 고인의 유서에는 농촌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청년단체의 수장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으로 당한 착취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 적혀 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는 사실무근이라 반발하지만 조만간 수사결과가 나온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농촌에 살러 들어간 청년들은 이런 일이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고들 입을 모았다. 알려지지 않은 사건사고도 많고, 좁..

칼럼읽다 2024.04.19

지금 머무는 그곳에

지금 머무는 그곳에 입력 : 2024.04.16 21:49 수정 : 2024.04.16. 21:50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이따금 주변에 안부를 전할 때면 제주에 사니까 어떤지 질문받곤 한다. 부럽다고 했고, 타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선택이 용기 있다고도 했다. 그럴 때면 어떻게 답해야 맞을지 고민되었다. 로스쿨 제도의 도입 이래 신규 교원 임용공고가 거의 나지 않아 온 세부 전공을 가진 난 안정적으로 공부하고 가르칠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사실 다 좋았다. 도심 한복판이나 산골, 혹은 강가나 항구였어도 마찬가지로 기뻐하며 갔을 것이다. 그건 생계의 문제였지 선택이나 용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간절했던 대상은 거주 조건보다는 일할 자리였다. 지역의 숨은 명소를 추천해달라 청할 때도 답하기 쉽지 않았..

칼럼읽다 2024.04.17

“아 유 얼론?”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아 유 얼론?”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수정 2024-04-14 18:47 등록 2024-04-14 18:00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20대 딸은 인간이 나오는 영화를 꺼린다. 잔인하고 복잡해 머리가 아프단다. 대신 동식물이 나오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딸이 유기냥 집사가 된 이유일 것이다. 개와 로봇이 다정하게 손잡고 서로의 눈을 맞추고 걸어가는 포스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로봇은 어릴 적 딸이 좋아했던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깡통 로봇을 닮았다. 저 개는 또 어디서 봤더라, 너무 친숙하다. 2디(D)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에 끌린 이유다. 딸의 취향을 저격이라도 하려는 듯 이 영화엔 인간이 없고, 인간의 말(대사)이 없고, 인간이 경..

칼럼읽다 2024.04.15

내 마음속 깊은 ‘보배’ 찾기

내 마음속 깊은 ‘보배’ 찾기 입력 : 2024.04.11 20:18 수정 : 2024.04.11. 20:21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최근 흥미로운 뉴스를 전해 들었다. 미국 경제전문 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들’ 목록에 국내 모 기업 창업주의 재산을 상속한 자매가 이름을 올렸다는 보도였다. 전 세계에서 33세 미만으로 순자산 10억달러 이상을 가진 사람이 25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뉴스를 접하며 나의 도반은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러면서도 “조 단위가 넘는 재산을 물려받는 느낌은 어떨까”라고 아쉬운 듯 덧붙인다. 우리에게는 허황한 생각이지만 덕분에 잠시나마 재미있는 상상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정말 세상은 요지경이다. 누구는 돈이 너무 많아 문제..

칼럼읽다 2024.04.13

히읗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히읗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입력 : 2024.04.11 20:20 수정 : 2024.04.11. 20:22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히읗이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농협은 어떻게 하나로마트의 간판을 내걸 수 있겠나. 나는 어디에서 질 좋은 삼겹살을 한 근 끊을 수 있겠나. 히읗이 없었더라면 어디서 후룩후룩 해장국으로 하루의 허기를 달랠 수 있겠나. 해는 서해에서 찌든 때를 씻고 다시 맑은 얼굴로 동해를 비춘다. 히읗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하루를 호출할 수 있겠나. 나이 들어 헛헛해질수록 가까이해야 하는 건 국어사전이다. 그림자가 반듯해야 그 모양이 단정하듯 적확한 말이라야 정확한 뜻이 가능하다. 초등학교 땐 전과를 보고 중학교에 들어가 영어사전에 제법 손때를 묻혔다. 철저히 외면했던 국어사전. 그러다..

칼럼읽다 2024.04.12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입력 : 2024.04.10 22:15 수정 : 2024.04.10. 22:17 서진영 저자 최근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은 (스리체어스, 2023)는 전국구 유명세를 자랑하는 빵집 ‘성심당’ 말고 딱히 손꼽을 만한 게 없는 것 아니냐 하는 도시, 대전을 조명한다. 언젠가부터 ‘노잼도시 대전’은 공공연한 우스갯소리가 됐다. 나 역시 이직하며 대전으로 이주하게 된 친구에게 “대전 노잼도시라는데 괜찮겠니?” 놀림조로 말한 적이 있다. 대전에 특별한 연이 없으니 관심 뒀을 리 없는, 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대전을 노잼도시로 넘겨짚었음을 고백한다. 노잼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에 살며 그 지자체가 출연하여 만든 정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저자 주혜진은 노잼도시라는 수식어..

칼럼읽다 2024.04.11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입력 : 2024.03.12 21:59 수정 : 2024.03.12. 22:05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말이 난무하는 시기이다. 한편으로 특정 경험, 특정 정보, 특정 이념, 특정 세력, 특정 정파, 특정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행태인 ‘반지성주의’가 사람들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놓고, 다른 한편으로 소위 진영론과 음모론이 결합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강요하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는 헬레니즘 철학자들이 권했던 ‘판단 중지(epoche)’도 도움이 된다. 가끔은 판단을 멈추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판단 중지’란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했던 회의주의 철학의 핵심적인 수행 방식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요구하기에 쉬운 일은 ..

칼럼읽다 2024.04.09

무표정

무표정 입력 : 2024.04.08 20:08 수정 : 2024.04.08. 20:09 김상민 기자 캔버스에 아크릴(41×32㎝) 입꼬리의 크기, 눈썹의 각도, 주름의 깊이, 눈동자의 크기와 방향, 얼굴색의 차이 등. 이런 미묘한 변화로 나의 감정이 표현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데 그게 잘되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눈썹은 찌푸려지고, 주름은 깊어집니다. 당황할 때는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나며, 눈동자는 춤을 춥니다. 내 속마음을 숨기고 태연한 듯 있고 싶지만, 야속한 내 얇은 껍데기는 내 속마음도 모르고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표현해 줍니다.

칼럼읽다 2024.04.09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입력 : 2024.04.03 20:24 수정 : 2024.04.03. 20:28 이은희 과학저술가 대개 구분 없이 쓰곤 하지만, 사실 우연(偶然)이란 단어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어떠한 현상이 너무나도 무작위적이라 예측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경우에 쓰인다. 바닷가의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나가며 모래사장에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들이 남기는 자국은 무작위적이어서 다음에 어떤 흔적이 남을지 예측할 수도 없고, 한 번 만들어진 자국이 재현되지도 않는다. 이는 신기한 현상이지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어떤 의미와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의미의 우연은 좀 다르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맞물려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이를 ‘기..

칼럼읽다 2024.04.08

정치적 자유를 주는 일이 최고의 정치교육 [세상읽기]

정치적 자유를 주는 일이 최고의 정치교육 [세상읽기] 수정 2024-04-03 18:44 등록 2024-04-03 18:25 선거를 몇 주 앞두고, 아이들에게 ‘선거 관련 특강’을 했다. 이병곤 제공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선거를 몇주 앞둔 날 교사 회의. 아이들에게 ‘선거 관련 특강’을 해보겠노라, 자청했다. 고학년 아이들이 곧 유권자가 될 터인데 정치 상황이나 선거제도에 관해 알려주는 일관된 정보 제공 통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교안을 작성하려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아이들에게 3분 정도 분량의 뉴스 보도를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 기사 몇 꼭지를 찾아 들어보았으나 아이들을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전문 용어가 넘쳐났다. 공천, 초..

칼럼읽다 2024.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