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으면 리얼리스트도 아니다 조형근 | 사회학자 “나 경찰 아니야. 서라고. 이야기 좀 해!” 노인이 숨을 헐떡였다. 우리는 줄행랑을 멈췄다. “나도… 지지한다고….” 가쁜 숨 내쉬는 노인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1987년 11월 말, 서울 변두리 어느 골목이었다. 직선제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무렵, 선배와 함께 ‘민중후보’ 백기완의 포스터를 골목 여기저기 붙이고 있었다. 누군가 따라왔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도망을 쳤다. 아직은 군사정권 치하,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런데 쫓아온 사람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목이 멘 채 포스터를 소중하게 어루만졌다. 아무 말도 묻지 못했다. 그 노인은 얼마 만의 ‘커밍아웃’이었을까? 해방 정국을 이끌던 진보좌파 정치 세력은 분단과 전쟁을 거치며 남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