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921

[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승자의 역사

[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승자의 역사 최우리 | 기후변화팀장 최근 만난 공무원들은 일이 손에 잘 안 잡힌다고 했다. 그동안의 일들을 정리하는 정도에 그친다고들 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정책 방향이나 현재 하던 일에 관심 정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계획을 추진력있게 진행하기에는 확신이 없다고 했다. 정부가 바뀌면 사람도, 조직도 다 바뀐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하는 말로 들렸다. 관료화된 사회 속 수동적 개인을 탓하기는 쉽지 않다. 역사는 결국 승자가 기록하기 때문에 누가 승자가 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실무자들은 더욱 잘 안다. ‘승자의 역사’라는 관용어가 떠오른 것은 정치권이 다시 소환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을 대표했던 4대강 ..

칼럼읽다 2022.02.22

바람의 말

바람의 말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너는 달빛의 아이란다. 어머니는 종종 이야기했다. 늑대 울음 같은 바람이 초원을 휘감고 지나가는 밤이었지. 게르의 천장 틈새로 보름의 달빛이 흘러들어 홀로 잠든 나의 배를 어루만졌어. 달빛은 마른 땅에 내린 빗물처럼 스며들었지. 동틀 무렵까지 환한 빛이 곁에 머물렀어. 얼마 뒤 보름달처럼 배가 부풀었고 네가 태어난 거야. 1) 아이는 바람처럼 떠돌고자 했으나,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병든 어머니를 살릴 약초를 찾으러 떠나거나,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맹세하며 떠나거나. 하지만 어머니는 늑대처럼 강인했고, 달빛은 사그라들었다가도 되살아나곤 했다. 아이는 홀로 초원에 섰다. 먼 곳에서부터 풀이 눕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바람을 마주 바라보자, 눈동자가 베인 듯 아팠..

칼럼읽다 2022.02.22

문화정책 ‘MBTI’

문화정책 ‘MBTI’ 정재왈 예술경영가 고양문화재단 대표 나에게 정치는 멀지만 정책은 가깝다. 정치의 중심인 여의도와 달리 정책은 내가 몸담고 있는 현장의 일이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특히 공공 영역에서 정책은 서비스 대상인 시민의 삶과 직결된다. 정책의 수혜 대상이 크고 작든 그 편익(便益)에 대한 고민은 정책 집행자의 숙명 같은 것이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정치는 현실의 정책으로 구현되는바, 문화예술 현장에서도 찾아온 정치의 계절을 그냥 허비할 수는 없다. 대선판을 놓고, 요란한 이전투구요 정책 실종이라며 장삼이사의 아우성이 대단하다.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늘 뒷전이라고 자조하는 문화예술계에서도 소리 없는 아우성은 불문가지다. 하나 작금 BTS와 이 세계..

칼럼읽다 2022.02.22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정찬ㅣ소설가 2022년 새해의 거리가 유독 어둡게 느껴지는 것은 코로나 때문일 것이다. 델타 변이에 이어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확진자의 급증 속에서 최근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발견되어 바이러스의 생명력에 대한 두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구 생태계를 붕괴시키기까지 하는 자본주의의 가공스러운 에너지가 바이러스의 생명활동에 전전긍긍하는 형국이 비극적이다 못해 희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자본주의는 휴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휴식은 정지이며 죽음이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생명체는 이익의 발생이 정지되는 죽음을 용납하지 않는다. 인류의 신화는 봄의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해 겨울의 죽음이 필요하다는 자연의 이치 속에서 잉태되었다...

칼럼읽다 2022.02.22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신예슬 음악평론가 음악을 듣고 글 쓰는 일을 하지만, 가끔 음악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 최선을 다해 지식과 경험을 쌓아도 음악의 가장 중요한 본질에는 가닿지 못하는 것만 같다. 음악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그 크기와 무게를 재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음악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가질 수 없다. 시간 속에서 생겨났다 금세 사라진다. 음악을 듣고 나면 깜깜한 방에 혼자 남는 것 같았다. 음악은 무엇일까. 어딘가에 있긴 한 걸까. 막막함 속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이런 물음이 흐려지는 순간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시끌시끌한 현장에 갔을 때, 그리고 음악가를 대면해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음악가에게 음악이 무엇이냐고 새삼스럽게 질문하는 건 어..

칼럼읽다 2022.02.21

형벌이란 무엇인가

형벌이란 무엇인가 윤지영 | 변호사 고백하자면, 저는 김수억이라는 사람을 경계했습니다. 지인들의 입에 김수억이라는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는데, 이야기 속의 그는 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 현장에 있었습니다. 단식을 했고, 연행되었고, 고난의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격할 거라 생각했던 그는 반듯하고 예의가 발랐습니다. 투사의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든, 순수하고 선량한 청년이 제 앞에 있었습니다. 그런 김수억이 형사사건에서 5년을 구형받고(지난해 11월30일) 현재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습니다.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요구하면서 서울지방고용노동청과 대검찰청 민원실 앞에서 농성을 하고 청와대 행진 도중 길을 막았다는 것이 그 이유..

칼럼읽다 2022.02.21

나는 정치를 포기할 수가 없다

나는 정치를 포기할 수가 없다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신문사 칼럼 연재를 덜컥 수락했지만, 글쓰기는 언제나 내 길이 아니라고 느꼈다. 나는 글이나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출하고자 했다. 번지르르한 글과 말이 필자·화자의 삶과 괴리된 경우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 경험상 인간은 대체로 그렇고 나는 그런 인간이 되기 싫었다. 그래서 글과 말은 아껴야 한다. 글말과 삶이 상반된 것도 싫고, 글말만 뱉어 놓고 행동하지 않는 것도 싫다. 글말이 앞섰다가 실천하지 못한다면 나도 내가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미 실행한 일에 관해 쓰고 말하거나, 내가 꼭 해야 할 일에 대해 나를 다그치기 위해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글말을 앞서 남긴다. 이런 규칙을 세워 놓아도 가끔은 지키지 못할 약속을 ..

칼럼읽다 2022.02.21

한국인의 떡볶이 500년…간식이 아니다, 영혼의 주식이다!

한국인의 떡볶이 500년…간식이 아니다, 영혼의 주식이다! 영원한 솔푸드 떡볶이 한국인 위로하는 추억의 맛이자 힐링 푸드, 나날이 인기 올라가 조선시대 고급 볶음요리에서 고추장·밀 대량 공급 뒤 지금 형태로 코로나 특수 타고 밀키트 국내외 판매 급증…떡볶이 바도 생겨 50년째 영업을 하는 떡볶이 노포 ‘철길 떡볶이’. 가게 곳곳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그저 흔한 분식집이 아니라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에요.”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떡볶이 노포인 철길 떡볶이. 송민숙(41)씨는 10대 때부터 먹었던 ‘추억의 떡볶이’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곳은 송씨의 ‘떡볶이 고향’이다. “동네 모습은 변했지만 떡볶이집은 예전 그대로예요. 맛도 변하지..

칼럼읽다 2022.02.19

상인의 현실감각, 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 서생의 문제의식 박권일 몇 해 전 어느 소설가가 신문 칼럼에 이렇게 썼다. “나는 한국에 서생이 너무 많아 문제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머리 맞대고 풀어야 할 과제들이 ‘옳으냐 그르냐’의 싸움으로 변하는 모습을 볼 때 특히 그렇다.” “주자학을 신봉했던 나라답”게, “서생의 문제의식은 자주 들을 수 있지만 상인의 현실감각은 그렇지 않다.” 일단 조선과 대한민국을 비슷한 사회로 보는 관점에 뜨악하게 된다. 게다가 ‘서생이 너무 많다’는 의미가 ‘옳고 그름을 따져 묻는 데 집착한다’는 것이라면, 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만일 한국이 원리원칙과 시시비비를 따지는 데 깐깐한 사회였다면, 세월호 참사는 애당초 일어날 수 없었다. 삼풍백화점은 그렇게 주저앉지 않았을 것이고 성수대교는 지금도 건재했을..

칼럼읽다 2022.02.19

우상의 황혼

우상의 황혼 이세영 논설위원 이진경, 진중권, 안치환. 한국 급진주의를 현대화한 주역으로 난 주저 없이 이 세 사람을 꼽는다. 개인 경험과 또래 집단 분위기가 반영된 주관적 판단이니, 누군가 정색하고 반박하면 힘들여 쟁론할 생각까진 없다. 이들은 소박한 민중주의와 자폐적 민족주의에 긴박됐던 한국의 급진주의를 순수이성(이론)과 실천이성(도덕), 취미판단(예술) 영역에서 세계 시간의 눈금에 맞게 정렬시켰다. 한국 좌파는 이진경에게 지적 엄밀함과 의제의 첨단성을, 진중권에겐 정치·도덕 판단의 엄정함을, 안치환에겐 넉넉한 서정과 정교한 심미안을 빚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대화를 선취한 서구인들이 오랜 논쟁 끝에 합의한 모더니티(문화적 현대화)의 핵심은 이것이다. 종교와 형이상학이 지배하던 문화 영역이 독자 기준..

칼럼읽다 2022.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