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919

아파트 블루스

아파트 블루스 서한나 | 보슈(BOSHU) 공동대표· 저자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엘리베이터에는 거울 깬 사람들 시시티브이(CCTV)로 확인했으니 관리사무소로 연락하라는 종이가 있고 지하주차장에는 ‘대소변 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퇴근길에 주차장 기둥에서 소변을 보는 중년 남성을 마주치고 자주 큰소리로 시비를 거는 젊은 남성을 만난다. 이웃은 소음과 호흡을 나누는 사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곳에는 나누지 않은 소음을 듣는 이웃이 있다. 어느 밤에는 옆집 사람이 현관을 두드렸다. 참을 수 없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누워 있던 내 몸에서 날숨이 크게 나와 그를 괴롭힌 것일까 내 호흡기를 의심했지만, 그가 모든 집에 돌아가며 항의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그의 방문은 내게 더욱 두려운 ..

칼럼읽다 2022.02.07

자유의 모순

자유의 모순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내가 생각하는 미국 보수 정치의 문제 중 하나는 낙태는 무조건 반대하면서 총기 소유는 허용하는 것이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든 산모의 건강이 위험하든 배아가 세포분열 중인 단계부터 생명은 그토록 소중한데, 이미 태어난 사람들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것은 괜찮다는 말인가? 민간인의 무장해제와 군대와 경찰로의 무력 집중은 근대국가 형성의 기본이다. 어쨌든 어떤 이에게 총기 소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살아갈 자유가 제약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자유와 자유가 대립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한 풍경이다. 일단, 재벌 기업가가 주가 하락을 감수하면서도 멸공을 주장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이십대 남성을 주 지지층으로 ..

칼럼읽다 2022.02.07

[이우진의 햇빛] 눈송이는 알고 있다

[이우진의 햇빛] 눈송이는 알고 있다 꽁꽁 언 한강에 눈이 내리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이우진 | 차세대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극지에서 가져온 얼음 조각을 물컵에 넣으면 통통거리는 소리를 내며 뭔가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수십만년 동안 차디찬 눈의 세계에 갇혀 있던 기포가 세상에 다시 제 모습을 내보이는 순간이다. 얼음 속의 기포가 터질 때마다 고대 생명체의 숨결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기포는 설원을 지나던 맘모스가 큰 귀를 펄럭일 때 빠져나온 체취를 담고 있을지도 모르고, 또 다른 기포는 쥐라기 평원을 누비며 포효하던 사나운 공룡의 거친 숨소리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기포는 오랜 여정을 거쳐 극지에 당도한다. 우선 하나의 눈송이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예사롭..

칼럼읽다 2022.02.07

사라지는 극장들... 이러다간 제2 봉준호·오영수는 없습니다

사라지는 극장들... 이러다간 제2 봉준호·오영수는 없습니다 [2022대선 정책오픈마켓] '다양성 영화'를 볼 국민의 권리도 지켜지길 22.02.05 20:41l최종 업데이트 22.02.05 20:41l장혜령(doona90) 코로나를 겪은 지 3년 차로 접어든 2022년, 밀폐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의 접촉을 피하는 흐름상 그야말로 메인 타깃이 된 '극장'은 생태계가 파괴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극장은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으로 낙인찍혔고, 코로나 전에 본 영화가 최근 극장에서 본 마지막 영화인 사람도 꽤 많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극장만큼 안전한(?) 곳도 없다. 왜냐면... 극장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음료를 제외한 상영관 음식물 섭취가 제한되면서 마스크를 벗을 일도 줄었다. 팬데믹 전엔 방학, 휴가..

칼럼읽다 2022.02.06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복길 자유기고가· 저자 엄마 말은 지독하게 안 듣고 컸지만 그 말 중에서 나 좋을 대로 가슴에 새긴 건 하나 있다. “젊을 땐 모르는 게 당연하다.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하고 고개 숙여라. 그게 기특해서 어른들은 다 가르쳐 줄 거다.” 그래서 나는 모르면 알 때까지 물었고, 알아도 일단 묻는 것부터 시작했다. 엄마 말이 맞았다. ‘잘 모르니 가르쳐 주십쇼’ 하는 요청을 거부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궁지에 몰리고 위기를 맞을 때마다 고개를 숙이며 힘을 빌렸다. 그렇게 20대 내내 ‘무엇이든 물어보는 젊은이’로 어영부영 즐겁게 살았다. “엄마, ‘젊은 때’란 건 대체 몇 살까지 포함되는 거야?” 작년부터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이제 나를 향해 질문하기 시작한 것..

칼럼읽다 2022.02.06

조선 후기 '조폭 문화'가 발달한 이유

조선 후기 '조폭 문화'가 발달한 이유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2 폭력 조직이 없었던 시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특별히 두각을 보인 시기를 찾아내는 것은 쉽다. KBS 사극 의 시대 배경인 조선 후기가 바로 그 시기다. 이 시대의 조직폭력은 인구의 도시 유입과 함께 심화됐다. 에 등장하는 폭력배들도 유동인구가 많은 시장 거리에서 주로 활동한다. 좀 단순해 보이면서도 생명력이 꽤 질긴 왈자패 두령 계상목(홍완표 분)도 저잣거리 상인들을 상대로 완력을 행사하고 있다. KBS2 . 조선시대 사회체제의 핵심은 지주가 노비 출신 소작농을 토지에 묶어놓고 이들의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수취하는 것이었다. 법률과 관습에 의해 보장되던 이 체제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을 계기로 동요하기 ..

칼럼읽다 2022.02.05

왜 장어는 구워야 맛있을까

왜 장어는 구워야 맛있을까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장어 맛집으로 유명한 한 식당에서 지인들을 만났습니다. 각자 하는 일도 다르지만 모두 요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번 모임의 만찬 요리는 제가 제안을 했는데요, 얼마 전 장어에 관한 짧은 글을 쓰다가 그만 장어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장어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흔히 민물장어라고도 부르는 뱀장어입니다. 뱀장어는 주로 민물에서 생활하지만,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잡히기도 하죠. 그런데 이 뱀장어는 알을 낳기 위해 아주 먼 바다로 긴 여정을 떠납니다. 알을 낳으려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오는 연어와는 정반대입니다. 장어의 일생은 정말 신비롭습니다. 어찌 그리 먼 바다로 나가 알을 낳고, 그 새끼들은 또 어떻게 그 ..

칼럼읽다 2022.02.05

‘정책 범죄’가 예술가들을 저격했다

‘정책 범죄’가 예술가들을 저격했다 오창은 문학평론가·중앙대 교수 “칼에 찔려 죽을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사람은 죽을 수 있습니다.” 극단 ‘마실’ 손혜정 대표의 고통스러운 호소다. 그는 2015년에 공공기관인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모사업에 신청했었다. 뉴욕 문화원에서 순회공연을 하는 프로젝트였다. 당시 ‘예술경영지원센터’ 직원으로부터 ‘최종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공연을 위해 영문 번역 등에 들어갔다. 하지만 심사결과 발표가 지연되더니, ‘뉴욕 문화원 공연 지원 사업’ 폐지를 알리는 최종 통보가 왔다. 당시 손혜정 대표는 3개월여 동안 ‘도대체 왜 제외되었는가’에 대해 용기를 내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었다. 하지만 개인이 기관을 상대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손혜정 대표는 20..

칼럼읽다 2022.02.05

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원주여고 학생들을 응원하며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얼마 전 원주여고의 신문 동아리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교훈을 개정하고픈데 동문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라는 책을 쓰면서 공립고등학교의 교훈과 교가를 전수조사했고 ‘훈’이라는 언어가 얼마나 낡고 보수적인 형태로 그 구성원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있는가를 살폈다. 남학교의 ‘충성, 용기, 의리’, 여학교의 ‘순결, 고결, 정숙’과 같은 언어들. 산업화와 군부독재 시기에 만들어진 50년이 넘은 그 훈들은 그 시기의 욕망을 담고 여전히 우리 곁에 숨 쉬고 있다. 원주여고는 아내가 졸업한 학교다. 책을 쓰다가 “당신 학교의 교훈은 뭐였어?” 하고 물었을 때, 그는 잘 기억하지 못했다. 검색해 보고서야 “착한 딸, 어진 ..

칼럼읽다 2022.02.05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하는가? 채석진 미디어문화 독립연구자 최근 넷플릭스 영화 (애덤 매케이, 2021)이 세계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영화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거대한 혜성을 막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을 그린 블랙 코미디이다. 천문학자 대학원생 케이트와 그녀의 지도교수 민디 박사가 거대 혜성을 발견하여 위기 상황을 보고하고 백악관으로 이송되는 장면까지는 할리우드 영화의 익숙한 패턴을 따른다. 하지만 이후 영화는 인류를 멸망에서 구하는 영웅 서사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인정되지도, 말해지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황의 연속으로 채워진다.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은 선거 전략과 특정 기업의 이익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계속 유예하고, 언론은 지..

칼럼읽다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