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죽음 홍인혜|시인 한 그루의 나무와 살았다. 몇해 전에 들여온 녹보수 화분이었다. 어른 가슴께 정도 오는 키에 반들거리는 잎사귀가 빼곡한 멋진 식물이었다. 나는 원예에 전혀 재능이 없지만 나의 유일한 반려나무를 애지중지 가꿨다. 동거하기 시작한 첫해에는 화분흙에 묻어온 흰개미를 소탕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 약 저 약 바꿔 쳐가며 바글대던 개미 군단을 겨우 몰아냈다. 이듬해에는 깍지벌레와 장기전을 벌였다. 잎사귀 뒷면과 줄기에 불법 거주하던 벌레들을 테이프로 하나하나 떼어내며 나무를 간호했다. 매서운 겨울 날씨도 나무에겐 시련이었다. 적어진 일조량, 건조한 기후, 무거워진 실내공기 삼박자 때문에 녹보수는 겨울 끝물엔 항상 기력을 잃곤 했다. 나무가 초록색 불꽃이라면 2월 즈음엔 언제나 사위기 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