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닭털주 2022. 8. 15. 12:54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그렇다. 말은 깨진 거울이다.

사회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비추면서도, 깨진 틈 사이로 세계를 구기고 찢어버린다.

특히, 혐오표현은 한 사회의 균열상과 적대감의 깊이를 드러낸다.

흔한 방식이 급식충, 맘충, 틀딱충처럼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것.

대상을 규정짓는 말이 만들어진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다.

물에 잉크가 퍼져나가듯, 상상은 그 말을 씨앗 삼아 번져나간다.

하청노동자를 하퀴벌레’(하청+바퀴벌레)로 부르자마자,

그 말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감정이 불뚝거리고, 대하는 방식도 정해진다.

사람을 벌레로 부른 이상, ‘벌레 대하듯하면 된다.

불결하고 불순하고 해로운 존재이므로 하나하나 박멸하거나, 한꺼번에 몰살시켜야 한다.

적어도 눈앞에서 얼쩡거리지 않게 쫓아내야 한다.

거기에 가해지는 폭력은 정당하고 필요하기까지 하다.

어떤 말을 썼느냐?’보다 누가 썼느냐?’가 더 중요하더라.

누가 썼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나니.

일본 극우세력들이 바퀴벌레, 구더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재일 한국인·조선인들이다.

하퀴벌레란 말이 원청 노동자들한테서 나왔다는 게 더욱 아프다.

당장의 곤궁함을 야기한 사람들을 해충으로 지목함으로써 파업으로 일 못 하는 개개인의 불만을 집단화하고, 약자에 대한 반격의 용기와 논리를 제공해준다.

한치의 양보나 측은지심,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다.

그 뒤에 있는 불평등 구조를 보라고? 이 분열을 조장한 무능한 정치를 보라고?

물론 봐야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하퀴벌레란 말을 곱씹으며, 우리 사회의 내적 분열을 스산한 눈으로 바라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