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안전 여부가 오염수 방류 기준이 되면 안 되는 이유

닭털주 2023. 8. 14. 09:40

안전 여부가 오염수 방류 기준이 되면 안 되는 이유

입력 : 2023.06.14 03:00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지난 12일부터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성물질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위해 2주간 시운전을 시작했다. 이날자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오염수 방류, 사형 선고어민들 피눈물이었다. 어부 일은 끝났다는 제주 어민들, 소금값이 한 달 동안 30% 넘게 오른 전남 신안, 수산물 소비절벽을 확신한다며 사형수 심정이라는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들의 소식이 이어졌다.

 

원고 마감 중 틈틈이 살펴본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에는 오염수 소식이 거의 없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자국 산업이 죽어가는데 안전이 검증되면 마시겠다는 국무총리. ‘우리 대통령은 이미 도쿄전력의 대변인을 자처한 바 있다. 방류를 찬성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텐데 왜 이런 문제에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조차 없는가. 그나마 홍준표 대구시장이 정부에 반대 입장을 주문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시운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 통보하지 않는 나라가 문제인가, 통보도 받지 못한 나라가 문제인가.

 

오염수 방류는 앞으로도 계속될 국제 문제다. 우주에 널린 쓰레기 청소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전쟁은 시작된 지 오래다. 많은 나라들이 자국의 쓰레기를 가난한 국가에 저렴한 비용으로 합법적으로 버리고 있다. 나라 밖이든 집 밖이든 폐기물을 공유 영역에 버리는 행위, 비 오는 밤 폐수를 쏟아내는 기업들, 미군기지가 서울 여의도나 강남에는 없다는 사실. 힘과 비용에 따른 현실이다.

 

힘의 논리는 무기력을 느끼게 하기 쉽다. 다른 관점이 필요한 이유다.

남의 집 앞, 길거리, 공용 장소에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당당하게 여러 차례 사전 공지를 해가면서 공포를 조성한 후에, “냄새가 안 나도록 약을 뿌렸다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몰상식과 폭력이다.

내 질문은 이것이다.

이런 일은 몰상식이라고 생각하면서 왜 오염수 방류는 전문적 지식(안전성)이나 국제법(합법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가.

안전하고 합법적이면 문제가 없는가.

 

이런 일에는 언제나 객관성을 증명하겠다는 외국 과학자가 출동한다.

최근 충북대 약대 박일영 교수는 일본 오염수, 희석해 마시겠다. 더는 공포 조장 말라며 국내 전문가로서는 처음으로 기존의 반대 입장을 반박했다.

 

몰상식의 기준

 

오염수를 처리한 뒤 삼중수소를 방류농도인 11500베크렐() 미만으로 희석한다면, 이 물 1를 마시더라도 내가 받는 실효 선량은 0.000027밀리시버트(mSv)”라며 이는 바나나 1개를 먹을 때 바나나에 포함된 칼륨-40 등에 의해 내가 받게 되는 실효선량 0.0001mSv의 약 4분의 1”이라고 주장했다.

 

일단, 이 말을 이해하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오염수 문제가 과학 논쟁으로 가면, ‘오염수라는 말부터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과학자들만의 논쟁이 될 것이다.

피해 지역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스스로 권위를 자랑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동원되는 것이다.

진리의 끝을 누가 알겠는가. 원주율 파이(π)의 값, 3.141592의 끝까지 세는 작업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논리로는 방류에 반대하는 우리 편과학자가 이기더라도 현실을 바로잡기 힘들다. 전문가의 의견을 믿고 찬성 혹은 반대한다? 그런 균형이 있는 사회도 아닐뿐더러 핵심은 유해물질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방류라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이미 한국 수산업은 그들이 만든 공포 정치때문에 존망의 기로에 섰다.

애초부터 불필요한 혼란과 공포를 조장한 이들은 한·일 정부다. 이때 가해자는 도쿄전력과 자국민의 의견을 묵살하는 한국 대통령이 아니라 지식이 부족해서생존의 공포에 떠는 어민들과 환경운동가가 된다.

 

전문가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분야와 쟁점에 따라 전문가는 절실하다.

그러나 전문가주의는 다르다.

방류 문제는 그들의 중립성, 소신, 뛰어난 업적과 무관하다.

그들의 말은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객관성 여부가 아니라, 인간의 인식에 현실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방류 언설 중 또 하나의 졸렬한 논리가 검증을 통한 국제법 부합 여부이다.

누가 검증할 것인가는 논외로 치자.

국제법의 판단이 중요한가?

피해 지역이 발생했다는 자체가 법적 문제를 떠난 현실이다.

오염물질이든 아니든 자국 밖 유출 자체가 문제라는 글로벌 윤리가 필요하다.

물은 근본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영역이다.

H2O는 국적이 없다.

국민국가의 영해 개념은 가장 비과학적 사고였다.

흐르는 물에는 국적이 없다.

이번 사건은 특히 한국의 피해가 크지만, 근본적으로 지구적 문제다.

 

정수 과정의 차이는 있지만, 80억 세계 인구가 사용하는 생활용수도 바다로 간다.

몇년 전 업무 관계로 제주의 큰 호텔에서 며칠 지낸 적이 있다. 객실 안내문에 건조한 문체로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청정한 제주 바다를 위해 물을 아껴주시고, 객실은 깨끗이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며칠을 묵더라도 체크아웃 때 한 번만 청소하겠다는, 양해의 뜻으로 이해했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이었는데 약간 의외였다. 고객에 대한 당당한 자세가 좋았다. 무엇보다 안도감이 들었다.

물 사용은 아무리 큰 돈을 지불해도 소비자의 권리영역이 아니다.

 

비무장지대(DMZ)는 비극의 산물이지만, 휴전선에서 남북으로 2씩 정해진 이 경계지역은 70년간 사람의 출입이 통제된 덕분에 지금 세계 최고의 생태 청정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바다는 땅과 다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고래는 많은 것을 상징한다.

고래같이 큰 생명체는 지상에서 살 수 없다.

우영우는 말한다.

인간은 달에 도착했지만 아직 심해에는 다다르지 못했고 그 비밀이 고래를 지켜주고 있다고. 나는 이 사실이 안심이 된다.

심해의 수압을 견디는 인공지능인()이 탄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에어컨을 둘러싼 안과 밖

 

인류가 바다에 버리는 것은 생활양식 자체다. 원전 오염수는 그 일부일 뿐이다.

육지의 물이 바닷물과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찾아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행위에는 전문가 의견이나 국제법을 찾지 않는다.

러시아의 행위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은 드물다.

이는 일종의 그래서는 안 된다는 가장 원초적인 합의이다.

이러한 윤리가 방류 문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원전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산림 파괴와 같다. 지구라는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이는 에어컨 틀기의 역학인 공기의 제로섬 게임과 같다.

에어컨을 켠 실내는 춥도록 시원하지만,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된 바깥은 덥다. 에어컨은 다른 공간에서는 뜨거운 공기를 생산하는 기계다.

나는 에어컨 안팎에서 일어나는 이 불평등한 등가에 슬픔을 느낀다.

공기 자체로 봐서는 전체가 더워질 뿐이다.

코로나가 이러한 법칙의 산물이었고, 앞으로 반복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미국의 부자 제프 베이조스는 화성에 살고 싶은 것이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다. 그 대표적인 행위가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문명의 장단점을 논한다. 폐해도 있지만, 결국 그 폐해도 기술이 해결할 것이라는 양비론이다. 이는 실제도 과학도 아니다.

장단점 논리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북반구에 사는 중산층이다.

슈퍼리치들과 중산층은 장점만 누리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과학문명이 발전할수록 삶의 질이 나빠진다.

직업을 잃고 건강이 나빠지고 교육 불평등이 심화된다.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의 힘으로 극단의 계급 문제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다.

스마트폰이 없다면, 우리는 스마트폰 대신 현실을 볼 것이다.

계급 제도는 가해자를 보호한다.

누군가의 절실한 생계에, 전문가의 의견과 국제법이 무슨 의미인가.

이미 피해는 발생한 것을. 단기간이지만, 해결은 한 가지다.

믿을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여야는 검찰 게임을 그만두고, 도쿄전력과 전력을 다해 싸워야 한다. 마음 편하게 해산물을 먹고, 바다와 수산업을 살리는 일은 의외로 쉽다. 더불어 일본 사회의 양심을 일깨우는 일이기도 하다.

 

가장 강력한 힘은 윤리적 여론이다.

전쟁은 전문가주의나 법치주의로 판단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염수 방류는 왜 전문가와 국제법이 기준이 되는가.

전 지구에 대한 전쟁, 행성 파괴 행위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