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버섯과 바다의 낙관

닭털주 2023. 9. 15. 21:28

버섯과 바다의 낙관

입력 : 2023.09.13. 20:16 인아영 문학평론가

 

 

언제나 책상을 깨끗하게 치워두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올여름 유독 책상 위에 오래 머물렀던 책이 있다.

김금희 소설가의 산문집 <식물적 낙관>(문학동네, 2023)이다.

식물에 과문한 내가 귀여운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다양한 식물을 소개받을 수 있는 것도, 오랫동안 수십 가지 식물을 길러온 저자의 다정한 생각의 결을 따라가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내 곁에 두고 싶을 만큼 이 책의 특별했던 점은 각종 실패의 경험,

그리고 그것을 신중하게 품고 있는 따뜻한 기운이었다.

여느 식물 서적과 달리 이 책에는 집에 식물을 들여와 기르고 있다는 기쁨 못지않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식물이 마르거나 죽어버리곤 한다는 상심이 진하다.

 

열심히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어도 코로키아 잎은 왜 바싹 말라 우두둑 부서지는가.

반면 잎이 딱딱하고 희끗해졌던 올리브는 왜 갑자기 노랗고 앳된 새순을 틔우는가.

저자의 답은 모른다이다.

하지만 식물을 완벽하게 통제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한 덕에 그는 오히려 식물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낙관에 도달한다.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그런 공백 때문에 어떤 식물은 자라고 어떤 식물은 성장을 멈춘다.”

식물등과 서큘레이터로 광량, 통풍, 물 주기를 조절해도 점점 마르는 코로키아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기다림뿐일 수도, 올리브가 갑자기 더 높이 뻗고 새잎을 펼친 것은 그저 자기 마음에 맞게 올리브가 해내려던 일이었을 따름일 수도 있다.

인간은 식물을 책임지고 통제하는 전능한 감독관일 수 없다.

단지 식물들이 서로 공생하며 살아가는 환경에서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미국 인류학자 애나 칭이라면 작은 방에서 이루어지는 식물들의 상생도 다양한 생물종이 함께 참여하는 세계-만들기(world-making) 프로젝트의 일종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얼마 전 번역 출간된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현실문화, 2023)은 그 상생에 관한 놀랍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와 1986년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구소련 체르노빌의 폐허에서 자라난 송이버섯의 복잡하고도 풍성한 연대기를 따라간다.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지 못해 척박한 땅으로 밀려난 소나무 잔뿌리에 송이버섯 곰팡이가 기생하면서 온갖 땔나무, 나물, 버섯, 열매, 이끼류, 균류, 인간과 공생하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자본주의와 근대화가 추동한 인간의 일방적인 개발이 아니라 박테리아, 식물, 곰팡이까지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서로에게 접촉하여 서로를 교란하면서 촘촘하게 얽혀 있는 환경을 구축해온 역사가 있다.

 

인간에게 맞춰진 하나의 리듬으로 전진하는 진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진 다양한 생물 종들이 빚어내는 배치.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무한하게 규모를 키우는 확장성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이 우리 모두를 변모시킬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불안정성.

애나 칭은 이것이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처한 시대적인 조건이라고 말한다.

왜 아니겠는가. 방사능 오염수 130t이 바다에 방류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은 인간이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한다고 착각할 수 있었던 시대의 철 지난 잔여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낙관이란 아무리 자연을 훼손해도 인간은 괜찮을 것이라는 긍정 회로가 아니라, 무수한 생물 종이 서로를 변형, 파괴, 생성하는 흐름에 인간은 단지 작은 부분으로서 기생하고 있다는 겸손한 인식이다.

착각은 더 이상 역사가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에게는 다른 낙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