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사이시옷…원칙은 현실을 망각하는 일이 잦다 [말글살이]

닭털주 2024. 1. 26. 22:33

사이시옷원칙은 현실을 망각하는 일이 잦다 [말글살이]

수정 2024-01-25 19:55 등록 2024-01-25 14:31

 

 

클립아트코리아

 

 

당신은 원칙주의자인가?

재미있게도 근본주의자, 급진, 과격파를 뜻하는 영어

래디컬’(radical)의 어원은 뿌리’(root)이다.

뿌리는 땅에 굳건히 박혀 있으니 뒤집어엎지 않고는 바꾸기 어렵다.

 

한국어학계에서 근본주의적 태도를 우직하게 지키는 곳이 한글학회이다.

한글학회에서 낸 우리말큰사전이 대중들로부터 멀어진 이유 중 하나는 사이시옷()을 적는 방법의 차이 때문이었다.

문교부 고시 한글 맞춤법에는 고유어가 들어간 명사들이 합쳐져 새 단어가 될 때,

발음이 달라지는 걸 어떻게 표시할까 하는 고민이 담겨 있다.

바다를 합쳐 [바다가]라고 발음하면 좋으련만, [바다까]라고 한다.

이 만나면 [비물]이 아니라 [빈물]로 발음한다.

그래서 단어 사이에 사이시옷을 붙여 뒷말의 소리가 달라지도록 했다.

이 원칙을 고유어에 고집스럽게 적용하면 북엇국, 순댓국이라 써야 한다.

한자어는 사이시옷을 일률적으로 쓰지 말아야 하니 화병(火病), 대가(代價), 전세방이라 써야 한다.

 

명실상부한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한글학회로선 단어 출신 성분이 한자어인지 고유어인지를 따져 사이시옷을 쓰라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 단어나 발음 나는 대로 적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래서 잇과, 칫과, 욋과처럼 한자어에도 사이시옷을 쓴다.

 

소리와 문자는 완전하게 일치할 수 없다.

한글이 말소리를 받아 적기 좋은 문자라지만 모든 소리를 다 표기할 순 없다.

신기가 있다’ ‘성적수치심에 쓰인 신기, 성적도 소리와 표기가 다르긴 마찬가지.

 

표기라는 건 반복과 습관에서 오는 선택이다.

원칙은 현실보다는 주의 주장을 바탕으로 할 때가 많다.

그래서 현실을 망각하는 일이 잦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