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우리는 왜 쇼펜하우어를 찾는가

닭털주 2024. 2. 28. 16:53

우리는 왜 쇼펜하우어를 찾는가

입력 : 2024.02.26 19:53 수정 : 2024.02.26. 20:01 임석재 한국연구재단 선임연구원

 

 

40대를 중심으로 쇼펜하우어 신드롬이 일고 있다.

그는 삶이 괴롭다면 그냥 평소보다 더 많이 먹고 평소보다 더 많이 자라고 말했다. 너무 단조로워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그의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TV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이장우씨는 먹고사는 데 집중하다 보니 마음이 편해지더라. 욕심이 내려가며 삶이 행복하더라고 밝혔다. 배우 하정우씨도 저서 <걷는 남자>에서 마음이 복잡해지면 일단 나가서 걷는다. 걷고 나면 머리 터지게 고민했던 문제들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슬슬 잠이 온다고 썼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최선을 다해 살다가 문득 찾아온 삶의 헛헛함이 기본에 집중하는 순간 충만하게 채워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를 비롯한 대한민국 대다수 사람들, 심지어 미취학 아동과 초등학생들조차 쉬지 못하고 너무 열심히 산다. 더 큰 꿈을 향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달릴 것을 끊임없이 주문받는다. 그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숫자로 대변되는 같은 목표를 향해 뛰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런 현상이 심화될수록 무기력이라는 단어도 비례해 늘어가고 있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부동산·주식 등을 비롯한 재테크 서적 옆에 무기력과 우울증을 위로하는 에세이가 놓인 것도 이러한 사회현상을 드러낸다. 표지도 블랙, 골드, 홀로그램 등 화려한 것과 톤다운된 심심한 일러스트로 서로 대조적이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는 걸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더 늦지 않게 그 본질을 찾아야 한다.

일상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따분한 것이라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일상은 우리 삶의 본질이고 기본이다.

그러니 그 가치를 무시하지 말고 풍요롭게 채워야 한다. 기본,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귀하게 여기는 사람 또한 많지 않은 것 같다. 가정의 부모가, 학교의 교사가, 조직의 리더가 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 그 집단은 중심을 잃고 와해된다.

저마다 가진 역량을 기본에 집중할 수 있다면, 사는 데 힘들고 어렵고 복잡할 게 없다.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리면 등 따습고 배부른 게 최고, 사람은 그저 마음 편한 게 최고.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내 아이만 낙오되는 것 같아서 그 욕심과 그 욕망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잘 먹고 잘 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일. 그것이 우리 삶의 최종 목표가 아니던가. 어제와 같은 오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내가 꽤 잘 살고 있고 인생이 무리 없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다.

특별한 행복은 자주 없지만 평범한 일상은 매일같이 주어진다.

반복되는 일상의 기쁨을 찾을 수 있다면 결국 가장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열심히 사는 것은 좋지만 삶의 무게가 나를 누를 때면 일단 기본에 집중하자. 일단 사람답게 살고 볼 일이다.

'칼럼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적인 이야기는 그만하라고요?  (0) 2024.02.29
열두 명만 모여도 세계는 복잡해진다  (0) 2024.02.28
죽음의 단풍  (0) 2024.02.28
표절공장 ‘생성형 AI’  (1) 2024.02.27
바둑, 또 다른 이름 ‘수담’  (1) 2024.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