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곤증
입력 : 2024.04.17 21:59 수정 : 2024.04.17. 22:03 임의진 시인
대구사람들은 게으름뱅이를 ‘겔배이’라 한다지.
그곳 변두리가 고향인 후배를 엄마가 ‘겔배이 지지바’라 부른대.
잠꾸러기는 ‘자부래비’, 연결하면 ‘겔배이 자부래비 지지바’.
엄마랑 둘이 사는 그녀가 노상 얻어 듣는 소리란다.
‘오라바이~’ 엥기며 애교를 뿌리면 쬐끔 귀엽다. 수치는 잠깐이요 이익은 영원해.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심정으로, 최근 쪽팔리는 일을 계획했다가 그냥 그만뒀다.
그래 밥은 내가 사고 커피는 그 친구가 사는 것으로 쫑파티.
이후 춘곤증을 견뎌보려 커피에 샷을 추가.
봄날 점심을 먹고 나면 춘곤증이 덮친다. 하품이 연방 쏟아져. 고
향 마을에선 ‘부슴방’이라 아랫목을 그리 불렀다. 한낮이라도 까닥까닥 졸면 엄마가 “아야~ 부슴방에서 눈 붙이고 오니라” 그러셨다. 벚꽃 만개 후에 봄눈이 펄펄 날리고, 아니 날리면, 나이를 잊고 입을 죽 하니 내밀면서 잠시 꽃눈 맛을 본다. 행동거지마다 당최 철이 덜 들었다.
요새 올라다니는 대학가 산자락엔 진짜 다람쥐가 산다.
‘안녕하십니까불이, 감사합니다람쥐’ 하면서 <개그콘서트>의 ‘꺾기도’ 수련장인가.
아이들 취향으로 평생 까불며 실수나 잘못도 인간미다 하면서 사는 거다.
게을러도 좀 괜찮아. 대충에 대강 살아도 욕먹지 않는 다람쥐는 생애 전체가 감사합니다람쥐. 현대인들은 시쳇말로 너무 빡세다.
죽기 살기로 조이고 밀어붙인다. 그러다 죽어버리면 뭔 소용인가.
가출 청소년 방랑자처럼 가방 하나 들쳐메고 고속열차에 올랐다.
다음 누구와 약속이 없으니 기차도 내 마음도 여유롭더라.
잠을 자보려 눈을 붙였는데 춘곤증은 참 묘해.
자려고 벼르면 잠이 도망가.
열차 밖은 연초록 잎새들로 숲이 꽉 찼구나.
순간 평화가 감사하여라.
세상은 전쟁과 불안으로 암울한 터널이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