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예술강사 예산 72% 삭감…‘K-컬처’ 미래를 포기하나 [왜냐면]
수정 2024-10-23 18:56등록 2024-10-23 17:43
김정영 | 문화예술교육가·어린이 희곡집 ‘복숭아 형제의 대모험’ 저자
바야흐로 케이(K)-컬처의 황금기다. 세계 속에서 한국 문화예술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데,
국내 문화예술계는 정부의 사업 폐지와 예산 감축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하다 하다 못해 학생들의 문화예술교육 예산에도 시퍼런 칼을 뽑아 들었다.
내년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 예산을 무려 72%나 삭감했다.
운영비와 처우 개선비는 총 80억8700만원인데, 이 중 예술강사 인건비는 0원이다.
사실상 사업 포기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예술강사 지원사업으로 전국 8693개 초·중·고에 5021명의 예술강사가 직접 방문해 수업했다.
국악, 무용, 연극, 영화, 공예, 만화·애니메이션, 디자인, 사진 등 8개 분야다.
이 사업 예산은 국고와 지방비, 지방교육재정으로 편성되는데,
국고의 인건비가 0원이 되면서 지방교육재정에 따라 생사가 달려있다.
그런데 시·도 교육청은 사업 주관이 아니어서 반드시 예산을 편성할 의무가 없다.
만약 교육청 예산이 편성되지 않으면 그 피해는 학생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교육부 예술 교과수업의 빈 공간을 채운다.
국악 수업은 음악 교과를,
연극 수업은 국어 교과를,
무용 수업은 체육 교과를 보충한다.
교사가 할 수 없는 전문성을 예술강사가 분담하며 상호보완적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예술강사를 만나며 어린 예술가가 된다.
춤과 연기, 전시 등 단순한 경험을 넘어 그 시기만 보여줄 수 있는 고유의 예술 활동을 펼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200명의 예술강사를 2012년까지 5000명으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예술강사 사업을 확산시키겠다는 말을 번복하고, 거꾸로 지역 교육청으로 이관하겠다고 한다. 교육부와 문화예술·체육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까지 맺으며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융성시키겠다고 밝혔던 장본인이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스스로 없애는, 웃지 못할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산이 많고 삼면이 바다여서 두메산골, 외딴 섬에도 학교가 있다.
내년부터 당장 이 사업이 멈추면 격오지에 사는 학생들은 문화예술 자체를 경험하기 어려워진다. 군 단위 지자체는 문화예술 사교육 시장도 열악하다. 인구 2만명인 전북 무주군에는 학원·교습소가 27곳이 있다. 그중 문화예술 분야는 7곳밖에 되지 않는데, 그마저도 음악, 미술이 전부다. 무주군 학생 수는 초·중·고를 합쳐 1780명인데, 모든 학생이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없다 치더라도 6개 음악학원과 1개 미술학원에 문화예술교육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이 중단되면 상대적으로 소도시 및 군 단위 지자체 학생들의 피해가 더 클 것이다.
지금까지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포기한 정부는 없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까지 예술강사 지원사업은 꾸준히 증액·유지됐다.
약 20년간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뿌리내린 어린이, 청소년의 문화유산이다.
배우는 학생들이라 조금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웃음 가득, 행복 가득한 ‘케이-컬처의 미래’다. 전국의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고 문화 창조의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지속해야 한다. 유인촌 장관은 하루빨리 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예산을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이 아닌 문체부 수장으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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