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닭털주 2022. 4. 11. 09:54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정병호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의 책 제목이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갈 수 없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균형 잡힌 인식으로만 안정과 발전이 가능하다.” 편을 가르고 상대방을 극단으로 몰아세우는 증오의 정치는 바로 모두가 경계해야 할 사회적 병이라고 했다.

보수정권이 황당한 일을 벌였을 때, 선생님을 찾아뵙고 앞날이 막막하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시계를 가리키셨다.

오른쪽으로 쏠린 시계추는 왼쪽으로 당기는 힘을 받는다.

한쪽으로 많이 나가면 그만큼 강한 힘으로 반대편으로 끌려온다.

그래야만, 시계는 제구실을 하지. 역사는 그렇게 진보하니, 긴 호흡으로 봐야 해라고 하셨다.

 

과연 그랬다. 이라크를 침략한 미국 대통령 부시가 온 세계의 비난과 반전운동 속에서도 재선되자, 더욱 각성한 미국 시민들이 힘을 모아 다음 대통령으로 젊은 흑인 오바마를 선택했다. 인종차별이 강한 미국 사회에서 상상조차 어려웠던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 오바마가 높은 인기를 누리며 대통령 임기를 마무리했지만,

오히려 강한 반발심으로 뭉친 보수는 트럼프라는 노골적인 차별주의자를 다음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도 그렇게 역동적으로 진동하고 있다.

왜 이렇게 좌우로 오갈까?

역사의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정치권력의 교체가 그리 보일 뿐이다.

실제로 그 배우들을 무대에 세우고, 그들의 입과 몸을 움직이는 힘은 장막 뒤 제작진, 어두운 객석, 그리고 거리의 군중 속에서 나온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무수한 사람들의 욕망과 기대와 전략이 경합하고, 갈등하고, 어우러져 그런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좌우는 고정되거나 변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보는 관점에 따른 상대적 위치일 뿐이다.

한 사람의 오른손과 왼손처럼 한 가족, 친구, 이웃도 나뉘고, 때로는 자신의 입장도 바뀐다. 결코 쳐부수고, 깨버리고, 없애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새의 좌우 날개처럼 서로 조율하고, 조정하고, 함께 움직여야 한다.

선거가 끝나고 고교 시절 은사께서 메시지를 전달하셨다.

이번 선거 결과는 폐허가 된 나라를 이만큼 잘 살게 만든 노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젊은것들을 응징한 노인혁명이란 내용이다. 불편한 노구를 이끌고 비바람 눈보라 속에 태극기 들고 싸워서 얻은 성과라는 것이다. 역사를 움직인 주역으로서의 자긍심과 회한이 얽힌 글을 보고, 이제 막 노인이 된 나는 선배들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떻게? 토론이나 논쟁이 아니라 대화다.

비판보다 이해, 설득보다 공감이 먼저다.

세월호 유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노인과 이야기를 나눠본 정신과 의사 정혜신 선생이 공감의 힘에 대한 깨달음을 전했다.

그 소동에 대해 바로 묻지 않고 노인이 살아온 삶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기구한 삶에 눈물이 차오르더란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아까 그 엄마들(세월호 유족들)에게 욕한 건 좀 부끄럽지.”

노인이 보였던 뜻밖의 합리성은 사실 자기 존재가 주목받은 뒤에 생긴 내면의 안정감 때문이라고 했다.

젊은이들과도 대화가 필요하다.

우선 경쟁에 눌려 불안한 그들의 눈망울이 안정될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한 사람으로서 존중하며 이해해야 한다.

당장 대화를 통해 합의나 결론을 만들지 못해도 서로에 대한 태도 변화 자체가 문화 변화의 가능성을 여는 일이다.

이번 선거 결과에 절망한 옛날 제자들이 찾아왔다.

어두운 시절 내가 배웠던 리영희 선생님의 말씀을 전했다.

별로 위로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아무것도 겁나지 않았던 이십대 학생 시절 ‘5월 그날을 노래하며 거리거리에서 피 흘려 쟁취한 민주, 겨울밤을 지새우며 촛불로 밝힌 진보가 모두 물거품이 된 듯 이젠 허무하다고 했다. 그래도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내일모레면 환갑이라는 그들을 보며,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 <율리시스>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많은 것이 남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금 지난날의 하늘과 땅을 뒤흔들던 힘은 없지만, 우리는 우리다. 한결같았던 영웅적 열정, 세월과 운명에 쇠약해졌으나, 강한 의지로 애쓰고, 추구하고, 찾고, 결코 굴하지 않으리라.”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번에는 화염병과 촛불이 아니라, 경청하는 귀와 공감하는 가슴으로 세대와 성별, 계급과 이념의 벽을 넘는 대화를 하자.

반목하는 이 사회를 바꿀 첫번째 도약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