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무책임한 선장의 사회

닭털주 2022. 4. 30. 09:27

무책임한 선장의 사회

최성용 청년연구자

 

 

공부한다는 건 특혜다.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으로서 단 한 번도 내가 지닌 특권을 잊어본 적 없다.

물론 대학원생은 사람도 아니라는 자조가 심심찮게 들리는 시절이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중위소득 100%에 미달하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그래도 공부와 연구를 업으로 삼으며 특정 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건 특권이다.

더욱이 내가 전공하는 분야에서 나의 말과 글은 전문가로서 권위와 영향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 사회가 전문가를 키워내어 그에게 합당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므로, 내가 지닐 권위는 사회에 기여할 의무를 다하는 데 쓰여야 한다.

 

이런 생각은 사회적 신뢰의 기초가 된다.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는 전문가는 신뢰할 수 있고, 신뢰만큼 권위가 부여된다. 전문적 식견과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신뢰할 만한 전문가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하나 이런 상식적인 믿음이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 한국 사회는 아픈 경험들을 통해 확인해왔다.

세월호 참사는 선장부터 해경 공무원, 언론인, 그리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제 책임과 직업윤리를 내팽개칠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근대의 수도원이라 불리는 대학에 자리 잡은 교수 역시 마찬가지다.

교수들의 권위와 특권은 사회가 투자한 그들의 전문성과 사적 유불리를 떠나 공공선을 위해 목소리 내야 하는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에 근거한다.

중세 수도원과 절의 역할처럼,

대학은 진리와 도덕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기에 조국 사태, 그리고 품앗이는 관행이었다는 교수들의 옹호와 변명은 도덕적 소명을 내팽개친 타락한 중세 교회와 닮았다.

비단 더불어민주당만이 아니라 윤석열 정권의 장관 후보자들조차 이런 퇴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로남불은 피상적인 말이다. 누구도 세월호 선장을 내로남불이라 비판하지 않는다. 오로지 더 높은 학벌과 특권을 누릴 목적으로 공부하고 전문성을 기르는 이 사회의 적나라한 현실이 거기에 있다.

공공선, 도덕, 신뢰를 고민하는 지식인과 전문가는 멸종위기종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책임을 내던지고 가장 먼저 배를 탈출할 티켓으로 전문가의 권위와 특권이 사용된다면, 그건 사회의 총체적 실패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교수 자녀의 논문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제안했다.

그의 학벌이 논란거리가 될 만큼 그가 특권으로부터 자유롭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전수조사는 대학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주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조국 옹호·반대가 아니라 부모가 실력이 되는 교육불평등,

개인적 이익을 위해 특권을 사용하는 망가진 직업윤리,

무너진 사회적 신뢰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대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전수조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그런 이유를 대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야말로 세월호 선장이 교수가 되고 장관이 되는 현실을 가능하게 만든다.

몇 년간 그토록 소모적인 갈등을 벌이면서도, 이 사회의 엘리트는 조국 사태가 평범한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였고, 왜 충격이었는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 선장이 모는 배를 믿고 탈 만큼 어리석은 승객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