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 영재교육 제도의 허와 실
입력 : 2023.06.20 03:00 수정 : 2023.06.20. 03:04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우리나라에는 영재교육의 제도와 법이 아주 잘 갖춰져 있다.
과학고를 설립하기 시작한 지도 40년이 넘었고, 영재교육진흥법이 시행된 지도 20년이 넘었다. 외국의 영재교육 전문가들은 한국에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가 28개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워한다. 실제로 다른 어느 나라도 우리만큼 방대하고 다양한 과학영재 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중학생 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영재교육원이 340개 있고, 영재학급도 1118개가 있다. 영재교육 대상자는 2022년 기준 7만2518명, 담당 교원은 1만8340명이나 된다. 교육 대상자가 전체 학생의 약 1.4%로 양적 규모 면에서 가히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운영하는 영재교육종합데이터베이스(GED)라는 사이트는 정책 결정자, 교육자, 연구자, 학생, 학부모 등 다양한 수요자에게 영재교육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 및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영재교육 대상자 중 수학·과학의 비중이 약 63%이고, 기타 발명, 외국어, 게임, 정보, 예술, 인문사회, 종합, 체육 등이 37% 정도 된다. 예를 들어 국립국악고에는 국악예능영재교육원이 있다. 영재교육원이나 영재학급은 담당 교사들의 전문성이 미흡하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과학고, 일반고로 전환 고려해야
현재 전국에 20개의 과학고와 8개의 과학영재학교가 있다. 그런데 과학고와 영재학교는 학생 선발 방식의 차이로 인해 두 그룹 간의 학생들 수준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고, 영재학교 간에도 격차가 크다. 영재학교는 3차에 걸친 선발 시험을 통해 전국의 모든 영재들을 자유롭게 선발할 수 있는 반면, 과학고는 해당 지역의 중학생을 대상으로 시험 없이 수학·과학 내신 성적으로만 선발한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수도권 몇 개를 제외한 대다수 지역 과학고는 2류 영재 교육기관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심지어는 영재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할 정도인 학교도 있다. 애초 전국에 막대한 국가 예산을 들여 과학고, 영재학교를 설치한 것은 각 지역의 영재들을 교육하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전국 최고의 영재들이 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에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도 문제이다.
수학올림피아드의 예를 들면, 최상위권 수십명은 모두 서울과학고 학생들이다.
영재교육에서도 지나친 동종교배는 좋지 않다. 서울과학고에 입학한 학생들 대부분이 학습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학습 의욕을 잃기도 한다.
얼마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앞으로 과학영재학교를 2개 더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교육부는 제5차 영재교육진흥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 영재교육은 확대일로의 길을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는 좀 차분히 돌이켜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과학영재학교와 과학고의 격차가 벌어진 데다 두 학교가 영재교육진흥법상 구별되는 학교이니 차제에 영재학교를 제외한 20개의 일반 과학고는 일반 학교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사교육과 과다학습이라는 문제의 원인으로 많은 이들이 대학입시의 과열 경쟁을 꼽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고교입시가 야기하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과학고, 명문 자사고, 외국어고 등에 입학하기 위해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에 내몰린다.
어린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다른 활동을 할 시간이 없다.
정서 발달이 필요한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과다학습에 시달리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수학영재들을 가르쳐 왔지만 실은 고교 평준화 정책을 지지한다.
‘하향 평준화’를 염려하며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고등학교 때부터 수준별로 선발해 교육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상식으로 여기는 ‘고교 평준화는 하향 평준화를 가져온다’는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평준화 시대에 학교를 다녔지만 당시에 학력 증진이 미흡하지 않았다.
일반 학교가 갖는 장점도 많이 있다.
나는 영재교육 자체를 전면 축소하거나 고교 평준화로 당장 돌아가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교육에서의 급격한 변화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가 그동안 우리나라의 이공계 인재 양성에 크게 공헌해 온 것은 인정해야 한다.
다만 어린 학생들의 과다한 학습 부담 문제와 사교육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영재교육의 양적인 확대는 이제 그만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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