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입력 : 2023.08.30 20:30 수정 : 2023.08.30. 20:32 성현아 문학평론가
최근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돌아와 이를 나의 소셜미디어(SNS) 계정에 올렸다.
이런 일도 있으니 동참해달라는 의도였지만, 거기엔 내가 봉사 활동도 하는 나름 좋은 사람임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었다. 그런 불순한 마음을 마주하고 나니 부끄럽고 죄스러웠다. 게시물을 지우려던 찰나에 그 활동을 내게 알려주었던 친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는 내가 함께해 줘서 큰 힘이 되었다며 너는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저 좋은 사람 아니에요, 언니.”
고해성사라도 하듯 언니에게 나의 ‘나쁨’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언니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그런 활동이 있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심지어 이후에 일정이 있어서 딱 3시간밖에 못했고요. 이런 활동을 했다고 자랑할 SNS 공간 없이도 과연 제가 봉사 활동을 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 고백 속에는 나의 오랜 고민이 녹아 있다.
처음 평론가라는 칭호를 얻었을 때,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끔찍한 꿈을 자주 꾸었지만, 그런 일들은 제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날 일입니다. 일상을 누리고 있는 나는 모두에게 빚진 자입니다. 반성문 같은 글을 계속 써나가겠습니다.”
실로 나는, 고통받는 이들의 곁에 좀 더 오래 머물러주지 못한 것,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의 소식을 접하고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돕지 못했던 것, 늘 비난받지 않을 만큼만 정의로웠던 것,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죄책감을 동력 삼아 글을 쓴다.
그러나 그런 이타적인 동기를 지닌 내가 아주 좋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
그 균열이 나만 아는 징그러운 그림자가 되어 나를 괴롭혀 왔다.
선한 길로 함께 나아가자고 외치는 ‘나’와 그다지 선하지 않은 ‘나’가 상충할 때마다 나는 주저하게 됐다. 좋은 사람도 아닌 내가 좋은 일에 앞장서자고 말해도 되는 걸까? 괜히 나 때문에 선한 의도를 지닌 활동들이 왜곡되는 것은 아닐까? 그때마다 가까스로 거머쥔 다짐은 ‘침묵하는 선이 되기보다 행동하는 위선이 되자’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위선에 불과하다 해도,
가만히 있기보다는 차라리 선을 가장한 행위라도 하는 편이 옳다고 되뇌었다.
그래도 벗어놓을 수 없는 무거운 그림자는 내 걸음을 붙들곤 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언니는 내 고민을 듣고 “나도 그래”라며 공감해 주었다. 시인이자 기후 활동가인 언니는, 더 시급한 일에 개입하기 위해 어떤 문제들은 외면하게 될 때, 더는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아 몇몇 현장에는 가보지 못할 때, 연대 활동을 한 후에 SNS 계정에 업로드할 때, 나와 같은 고민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현아야, 그런 활동이 있다고 알려준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그 활동을 하러 오는 건 아니야. 네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아는데, 시간을 쪼개서 와준 게 오히려 너무 놀라웠어.” 언니는 나의 작은 선행을,
언니가 하는 많은 활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그 행동 자체를 높이 사주었다.
‘야고보서’ 4장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선을 행하지 않는 이들을 단죄하겠다는 엄포로 읽힐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구절을 보고 해방감을 느꼈다.
이는 선인이라면 선을 행해야 한다는 말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저 누구든 선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했다면, 선을 행할 능력과 여건이 된다면, 그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선한 일을 하는 데에는 이제껏 올바르게 살아온 ‘좋은 사람’이란 검증이 필요치 않다.
선하게 살자고, 사랑을 베풀자고, 부당한 폭력에 맞서고 서로의 슬픔에 동참하자고 외치면서도 때로는 참을 수 없이 비겁해지던 내게, 아직 선을 행할 기회가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도 타자와 사회를 돌보는 일에 함께할 수 있다.
선행에는 어떤 조건도 필요치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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