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인천에 살기 위하여
신현수 | ㈔인천사람과문화 이사장
5년 전쯤 ‘이부망천’이란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서울 살다가 이혼하면 부천 가고, 망하면 인천 간다’라는 뜻이란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자유한국당 정아무개 의원이 텔레비전 토론 중 했던 인천·부천 비하 발언이었다. 학교와 직장 때문에 몇년씩 나가 살았던 기간을 빼면 거의 평생 인천에 살아온 사람으로서, 발언 자체도 매우 모욕적이었지만, 더욱 괘씸했던 것은 그 발언 당사자가 인천시 기획관리실장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인천·부천 지역적 특성 운운한 게 잘 모르고 내뱉은 게 아니라, 실은 그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그의 모욕적인 발언을 떠나서, 생각해 보면 어쨌든 인천은 1883년 개항 이래 ‘살기 위해’ 모여든 도시였다. 개항 이후 인천은 듣도 보도 못한 일자리가 수도 없이 생겨난 도시였다.
제물포라는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인천으로 급속도로 서구문물이 밀려 들어왔고, 그에 따라 새로운 일자리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특히 박정희 정권의 ‘살농’ 정책으로 더는 농촌에서 살 수 없게 된 호남분들, 지역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충청분들, 지금은 많이 돌아가셨지만 한국전쟁 시기 월남하신 분들(인천은 아직도 이북5도민회가 힘을 쓰는 곳이다)이 모여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차이나타운이 있는 지역도 사실상 인천이 유일하며, 현재는 동남아 노동자, 고려인, 새터민 등이 살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지금이야 자식 세대들 대부분 인천에서 태어났고, 신도시 개발로 인해 수도권에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사정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인천 인구 분포는 토박이 10%, 충청 30%, 호남 30%, 월남민 및 기타 지역 30%라는 얘기가 한때 있었다.
도시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인천은 늘 ‘주인 없는 도시’라는 오명을 썼고, 목적지가 아닌 경유지였으며, 서울의 위성도시였고 베드타운이었다.
‘인천 짠물’이라며 인색하다고 욕먹었고, 인구 3백만 가까운 도시에 이렇다 할 방송국 하나 없다. 인천에서 생기는 좋은 일들은 방송에 좀처럼 나오지 않으며, 어쩌다 나오는 인천 관련 소식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햇볕 좋은 봄날, 가족들이 공원에 나와 휴일 한낮을 즐기는 화면은 대부분 서울이다 보니 인천시민들 자신도 서울과 비교해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인천을 떠나고 싶어 하고,
인천에서 경제활동을 해도 집은 서울에 두려고 한다.
인천에서 문화활동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으로 치부되며,
서울에서는 성공하는 공연도 인천에서는 실패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천이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인 것처럼 무시당하는 때가 정치의 계절인데, 어린 시절 잠시 살다 평생 인천을 떠나 있던 자들이 ‘인천사람’이라며 몰려 들어 집적거리다가 안 되면 다시 떠난다.
인천이 주인 없는 도시이자 부정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건, 일단 인천에 살아왔고 현재도 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
내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데 남이 나를 존중해줄 까닭이 없다.
생각을 조금 바꾸면, 인구 구성비가 다양하다는 것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다.
오히려 건강하고 활기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인천 짠물’은 모욕이 아니라 칭찬이다.
소금은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든다.
다양성과 다름을 포용하는 인천은 배타적이지 않다.
인천은 무지개색 용광로이며 ‘믹싱볼’이다.
그래서 인천 축구팀 이름도 ‘인천 유나이티드’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임제선사가 하신 말씀이다.
어딜 가든 손님으로 살지 말고 주인이 되어라, 현재 네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진실이다…. 선사의 말씀은 비단 우리 ‘인천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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