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날은 과거의 실수를 제물로 삼아 온다
수정 2025.04.10 21:28
레나 사진작가
빨리 핀 꽃들은 지고, 그 위를 새로운 꽃들이 덮는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꽃들처럼 인간도 과욕을 버릴 수 있다면. ⓒ레나
햇볕이 부쩍 맑고 따뜻해졌다.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창밖을 보니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마흔 중반을 훌쩍 넘겼으니, 봄꽃을 본 날이 어쩌면 봄꽃을 볼 날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했더니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더 곱고 아름답게 보였다. 이번 봄꽃이 유난히 반가운 것은 겨울이 그만큼 추웠기 때문이리라.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1910년 ‘불새’를 탈고한 후 고대 러시아 축제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는 자서전에 ‘봄의 제전’ 창작 동기에 대해 상세하게 써놓았다.
‘상상 속에서 엄숙한 이교도 의식을 보았는데, 현자들이 원형으로 둘러앉아 있고 한 소녀가 죽을 때까지 춤을 추고 있었다.’ 그는 꿈에서 본 춤이 봄의 신을 달래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고대 의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 슬라브족들의 봄 축제 ‘야레 고디’에서는 겨울과 죽음을 상징하는 여신, 마르자나 혹은 마라의 이름을 붙인 허수아비를 물에 빠뜨리거나 불에 태우는 의식을 했다. 춥고 긴 겨울이 완전히 사라져야만 따스한 봄바람이 분다는 것을 고대인들을 체득하고 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고대 제의에서 영감을 받아 ‘봄의 제전’을 완성했고 이 곡에 맞춰 바츨라프 니진스키가 안무를 제작했다. 1913년 5월29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봄의 제전’은 첫선을 보였다. 관객들은 기겁했다. 야성적이고 원초적인 리듬과 혼란스러운 리듬, 불규칙한 리듬과 생경한 악기들의 소리가 낯설기도 했거니와 기괴하고 과격하게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이 무대는 이후 현대무용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고대인들에게서 온 지혜였다.
어떤 부분을 완전히 도려내지 않으면 새로운 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2025년 4월4일 이후, 피었는지도 몰랐던 봄꽃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경악스러운 사실이 드러날 때마다 충격과 공포, 불안에 싸여 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감상에 젖어 꽃들을 겨우 바라보기 시작한 찰나, 갑자기 개헌이라는 단어를 누군가 입 밖으로 꺼냈다. 축제는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완연한 봄을 불러오기 위해서는 겨울의 정령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섣불리 또 다른 축제를 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아 있는 겨울의 싹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내란이라는 명패가 붙은 허수아비를 불태우지 않는다면, 잔인한 겨울은 빈틈을 노려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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