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다

시인들 이병률

닭털주 2025. 6. 2. 11:21

시인들

이병률

 

1

나이 먹어서도 사람들 친근하게 못 맞아주더니

못된 놈처럼 자기만 아느라 독기로 밀쳐만 내더니

시인이라고 소개하는 이 앞에선

마음이 열리고 바다가 보인다

 

술 한잔 오가며

시인들이 원래 그렇죠,

낯선 이의 말 같다 싶은 말에

편 하나 끌어들인 기분 되어

진탕 마시고 마시다가 바다 앞에 선다

 

우리 잘하고 있는 거지?

처음 본 사인데 말까지 놓으면서

길에 핀 꽃대를 걷어차면서도 시시덕거리는

시인들의 저녁식사

 

유난히 쓸쓸해져 걸어 돌아오면 빈집 가득한 바람

누군가 왔다 갔나 킁킁거리면

늦은 밤 택시 타면서 밤길 잘 가라고 손 흔들던 시인

언제 들렀다 간 건지 바다 소리 들리고

무릎까지 들어온 갈대밭에 발자국이 찍혀 있다

 

2

어찌 사는가

방에 불은 들어오는가

쌀은 안 떨어졌는가

 

살면서 시인에게만 들었던 말

나도 따라 시인에게만 묻고 싶은 말

부모도 형제도 아닌 시인에게만 묻고

한사코 답 듣고픈 말

 

어찌할 것도 아닌데

지갑이 두둑해서도 아닌데

그냥 물어서 괜찮아지고 속이 아무는 말

옛 애인을 만나러 가다 말고

시 쓰는 이의 전화를 받고

그길로 달려가서는 대뜸 묻는 말

 

어찌 사는가

방에 불은 들어오는가

쌀은 안 떨어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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