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 46

‘-음’ [말글살이]

‘-음’ [말글살이]수정 2024-11-28 18:48 등록 2024-11-28 14:30  기계는 어떤 목적을 위해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다. 괘종시계를 분해하여 안을 들여다보면 에너지를 만드는 태엽, 에너지를 전달하는 톱니바퀴, 에너지를 규칙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만드는 탈진기 등의 부품이 있다. 말도 시계처럼 부품들로 분해할 수 있다.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와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가 대표적이다. 명사와 동사를 조립하면 하나의 사건을 표현할 수 있다. ‘자동차가 달린다’, ‘사람을 만났다’, ‘밥을 먹었다’. 그런데 동사에 ‘-음’이라는 도깨비방망이를 붙이면 명사로도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다.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면 이내 사라져 버리는 것이건만, 마치 형체..

연재칼럼 2024.11.30

안식을 위한 안식

안식을 위한 안식입력 : 2024.11.27 21:06 수정 : 2024.11.27. 21:08 오은 시인  한 해가 저물어간다. 언제부터 “한 해가 저물다”란 표현이 관용적으로 쓰였는지 알 수 없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연말이 가까워질 즈음이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차분해진다. 설렘은 잠시 눌러두고 가만히 올해를 돌아보기 시작해서일까. 꼼꼼한 사람이라면 이미 내년 계획을 세우고 있을 테지만, 기념일 다음날 목격되는 거리 풍경처럼 내게 마무리는 복잡하기만 하다. 좀처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곳곳에 놔두고 온 미련 때문일까, 정리 또한 깔끔하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물다’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풍경은 어둠일 것이다. 날이 다 저문 뒤에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처연..

칼럼읽다 2024.11.30

퇴직해도 현역처럼 살고 싶어서 벌인 일

퇴직해도 현역처럼 살고 싶어서 벌인 일[백세인생, 준비 이렇게] 문화관광해설사로, 학교 강사로, 시민기자로 제2의 인생을 삽니다24.11.29 14:08l최종 업데이트 24.11.29 14:08l 이완우(lwanwoo)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햇병아리 시절에 철도를 직장으로 8년 간 재직하였다. 철도는 역과 역 사이의 선로에 기관차가 객차와 화차를 끌고 운행하는 교통수단이다. 기관차에 연결된 객차는 여객을 수송하고, 화차는 화물 등 물류를 운송한다. 어린 시절, 철도와 인연을 맺으며 역마 같이 다가온 여행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열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 독서할 때가 많았다. 책 속의 어떤 내용은 눈을 감고, 열차 바퀴가 선로 레일의 연결부를 넘어가며 내는 '따그닥 따그닥' 소리를 들으며 인상적..

칼럼읽다 2024.11.29

지역소멸의 ‘위기탈출 넘버원’

지역소멸의 ‘위기탈출 넘버원’입력 : 2024.11.28 21:45 수정 : 2024.11.28. 21:46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아이들을 기를 때는 예쁜 줄 모르고 키우는 일에만 급급하여 내내 아쉽다. 그런데 귀여운 아기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며칠 전 국민영양관리계획 우수기관으로 상도 탄 춘천시 보건소에서 영양플러스사업의 일환으로 여는 조리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생겼다. 영양플러스 사업은 임신부와 영유아의 취약한 영양 문제를 해소하고 식생활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지역단위 영양프로그램이다. 보충 식품 꾸러미를 제공하고, 영양교육·상담 등이 이루어지는 사업 효능이 매우 좋은 보건복지 프로그램이다. 비수도권에서는 임신부와 영유아 부모는 다문화가족인 경우가 많다. 이날 춘천시 보건소에서 영유아..

칼럼읽다 2024.11.29

찬란한 불꽃 [포토에세이]

찬란한 불꽃 [포토에세이]수정 2024-11-25 18:49 등록 2024-11-25 17:29   캠핑을 좋아해서 자주 다닌다. 캠핑하는 여러 이유 중 ‘불멍’이 빠질 수 없다. 불멍은 아련했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거나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동해안 어느 솔밭 캠핑장에서 바닥에 떨어진 솔방울을 주섬주섬 모아 화로대에 넣었다. 빨간 불길이 반짝거리며 일렁인다. 얼마나 지났을까. 불빛이 사그라지면 나도 조용히 누워 잠든다. 깊은 침잠이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사진놀이 2024.11.28

지하철 2호선까지 건드리는 서울시... '공포의 열차'가 온다

지하철 2호선까지 건드리는 서울시... '공포의 열차'가 온다[박정훈이 박정훈에게] 철도·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준비하는 이유사회 박정훈(parti) 24.11.28 11:52ㅣ최종 업데이트 24.11.28 11:52  요즘 지하철을 타면 옷차림을 어찌할지 고민입니다. 너무 춥다고 두 겹 세 겹 껴입었다가는 외투를 벗을 공간조차 없는 차량 안에서 쪄 죽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이 신도림역입니다. 1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이동을 하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몸이 공중으로 살짝 떠서 승강장까지 옮겨졌습니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은 몸을 구겨 넣기 시작했습니다. 승객들의 비명소리와 다음열차를 이용해 달라는 노동자의 절박한 외침이 뒤섞입니다. 여차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칼럼읽다 2024.11.28

한강 이후의 한국 문학과 출판

한강 이후의 한국 문학과 출판 이광호(문학평론가, 문학과지성사 대표) 2024. 11+12.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024년 10월 10일은 한국 문학사와 출판 문화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 되었다. 노벨문학상(Nobel Prize in Literature)에 대한 한국인의 갈증은 ‘서구=중심=보편’이라는 ‘타자’의 인준을 목말라하는 것이었고, 한국 문학이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속해 있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구 중심의 ‘보편’이란 그 자체로 제국주의적 허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문학과 지식 시장에 일종의 위계가 작동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었다. ‘세계 문학’이 영어·불어·독어로 창작된다는 것도 허위이지만, 그 허위가 오랫동안 세계 문학 시장을..

책이야기 2024.11.28

단어의 시민권에 대하여

단어의 시민권에 대하여입력 : 2024.11.26 20:58 수정 : 2024.11.26. 21:02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서기 1세기 로마에 포르켈루스(Porcellus)라는 사람이 살았다. 싸움 잘하는 장군도, 말 잘하는 정치가도, 노래 잘하는 가수도, 멋진 근육의 검투사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로마 역사의 한 귀퉁이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사연인즉 이렇다. 그는 문법 학교의 교사였다. 까칠하고 꼬장꼬장한 라틴어 ‘훈장’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라틴어 문법에 어긋나는 말을 하거나 어떤 단어나 문장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말과 언어를 자의적으로 사용하거나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목숨까..

책이야기 2024.11.27

종이교과서로 회귀하는 북유럽

종이교과서로 회귀하는 북유럽입력 : 2024.11.26 20:57 수정 : 2024.11.26. 20:59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2025년 3월 우리나라에서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초등 3·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도입될 예정이라 한다. AI 기반 교과서가 개별 학생의 학습 데이터를 수집해 학생의 수준과 이해도를 측정한 뒤, 그에 맞는 학습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맞춤형 교육을 제공해 학생들의 학습능률을 높일 거라 기대한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다수는 디지털기기 사용 증가로 이미 약화된 학생들의 집중력과 통제력, 문해력이 더 저하될 거라 염려한다. 한편 교실의 디지털화에 적극적이던 북유럽 국가들은 종이교과서..

칼럼읽다 2024.11.27

저게 날 속였어

저게 날 속였어입력 : 2024.11.25 21:35 수정 : 2024.11.25. 21:41 심완선 SF평론가  나는 간혹 스스로 서프라이즈를 준비한다. 덕분에 영화 그래비티>(2013)를 매우 당황스러워하며 보았다. 나는 오로지 두 가지만 알고 있었다. 등장인물이 우주에서 조난당한다. 배우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았다. 작중 인물들은 허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왕복선에 탑승한다. 신참인 라이언 스톤 박사(샌드라 블럭)는 망원경 수리를 위해 우주 유영을 시작한다. 그런데 갑자기 인공위성 파편 더미가 그녀를 습격한다. 팀의 지휘를 맡은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는 그녀를 구조해 귀환한다. 하지만 우주왕복선은 이미 파괴되었고 다른 승무원들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다. 두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 90분..

책이야기 20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