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71

범상치 않은 친일파, 한글을 모독한 대표적 문인

범상치 않은 친일파, 한글을 모독한 대표적 문인 [김종성의 히,스토리] 친일파의 재산 – 김용제 세종대왕은 서문에서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라고 말했다. 이 나랏말쌈은 중국뿐 아니라 일본과도 당연히 달랐지만, 일본제국주의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어를 강요했다. 그들의 용어로 하면 '국어 상용화' 정책을 강제한 것이다. 일제가 한국의 말과 글을 억압한 1차적 의도는 징병제에 있었다. 한국인을 일본 군인으로 만들려면 한국어부터 없애야 한다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2019년에 제83집에 수록된 송숙정 중원대 연구교수의 논문 '일본이 식민지에서 자행한 국어 상용화 정책에 관한 일고찰'에 조선총독부의 1942년 자료인 가 인용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징병제 실시 계획이 발표된 1942년에 한국인 징병 적령자 21..

책이야기 2023.10.08

당신이 연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연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입력 : 2023.06.22 03:00 수정 : 2023.06.22. 09:38 인아영 문학평론가 당신이 연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할리우드 배우들이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에서 진행자가 물었다. 연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연기에는 한계가 없으니까요. 연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서요. 연기가 아니었다면 체포되었을 만한 행동을 해볼 수 있거든요. 솔직하고 재치 있지만 익숙한 답변이 이어지는 와중에 순서를 기다리던 짐 캐리의 대답은 현장의 공기를 단숨에 바꾼다. “저는 부서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I act because I’m broken).”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다. “저는 수많은 조각들로 부서진 사람이고, 연기는 수많은 조각들..

책이야기 2023.10.08

작가는 노동자인가

작가는 노동자인가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작가를 노동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노동자라 생각하며 글을 쓰진 않거든요. 고용주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시작부터 한분이 정체성에 의문을 던졌다. 지난 9월 중순, 작가노조를 준비하는 이들이 처음 얼굴을 맞댔다. 이른바 ‘순문학’, 에스에프(SF), 르포, 대중문화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현역 선수들이 두루 참석했다. 출판문화상 시상식장 같은 곳 아니면 평생 한자리에서 마주칠 일 없는 분들이다. 나는 사회과학과 저널리즘 사이 어딘가의 애매모호한 인간이지만, 일단 ‘인문사회 작가’로 분류됐다. 처음엔 살짝 서먹했지만 금세 공기가 뜨거워졌다. 작가들은 입에서 불을 뿜듯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초대를 받..

책이야기 2023.10.06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해보니 많은 게 다르네요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해보니 많은 게 다르네요 사서의 시간은 결코 여유롭거나 편안하지 않다 23.10.06 15:31l최종 업데이트 23.10.06 15:33l 한재아(jaeai2002)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편집자말] 공공도서관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조용한 곳, 여유롭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말한다. 사서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다. 도서관은 조용하고 여유로운 곳이다. 과거의 도서관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

책이야기 2023.10.06

내 고통을 관통한 시인 김혜순의 '말'

내 고통을 관통한 시인 김혜순의 '말' [서평 에세이] 황인찬 인터뷰 23.08.11 11:51l최종 업데이트 23.08.11 15:05l 윤일희(typoon52) 나는 시가 어렵다. 쉬운(?) 시도 더러 있지만, 시인이 의식의 흐름으로 배치한 언어들을 좇으며 그 의미를 해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읽지 못한다. 포기했다는 편이 더 적절할 테다. 김혜순 시인의 시도 그랬으면서(그가 시인이라는 것, '모단 걸'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의 소유자라는 것 외 그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나는 을 읽었다. 김혜순은 유명한 시인이다. 시를 잘 써서겠지만, 여성으로 처음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라는 이력이 도드라졌다. 왜 처음일까. 남성 중심의 문단 권력 때문이겠지. 책을 읽다 보면 그가 탁월한 ..

책이야기 2023.10.02

달팽이의 순간 이동

달팽이의 순간 이동 입력 : 2023.07.06 03:00 수정 : 2023.07.06. 03:01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산길을 벗어나, 아무개는 숲속으로 들어섰다. 볕은 뜨거운데 공기는 축 처진 물주머니 같은 날이었다. 지구가 위험할 정도로 뜨거워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지만, 무더위가 시작되기에는 아직 일렀다. 적어도 장마는 끝나야 하지 않나. 몸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되는 시절이다. 바람 한 줄기가 간절했다. 아무개는 등허리를 곧게 펴고 기지개를 켰다. 잠시 그대로 서 있으니 나뭇가지처럼 뻗은 양팔 사이로 바람이 휙 지나가는 듯했다. 나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무개는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다. 흉내를 내면 닮기라도 하겠지. 몇 달 전에 부러져 여전히 보호대를 ..

책이야기 2023.10.01

야간산행

야간산행 입력 : 2023.04.20 03:00 수정 : 2023.04.20 03:02부희령 소설가·번역가 복잡한 심사를 가라앉히려는 산행이었다. 산길을 오르며 몸은 점점 무거워졌으나, 마음은 그만큼 무게를 덜었다. 그래도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돌아서야 했다. 휴대폰 손전등을 켜는 순간에도 기회는 있었다. 저 아래 도시의 불빛이 훤히 보이는 자리였다. 왠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몸을 더 힘들게 하고 싶었다. 동네 뒷산이었고, 정상까지 돌계단이 이어지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는데 무엇인가가 눈앞으로 휙 지나갔다. 등골이 오싹했다. 불빛의 움직임 때문에 헛것을 본 것이겠지. 진정하고 다시 걸었다. 산이 깊어질수록 덤불에서 검은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바스락 소리도 들렸다...

책이야기 2023.10.01

평범한 삶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평범한 삶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존 윌리엄스의 를 읽고 23.09.25 09:01l최종 업데이트 23.09.25 10:14l 김은미(woori74)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이다." 존 윌리엄스의 는 어떻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한 남자의 삶이 담긴 소설이다. 출간 후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파고들어 감동을 주고 있다. 스토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농업을 제대로 배워보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부모님의 제안이었다. 농업을 공부해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던 스토너는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우연히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접하고 인생의 항로를 재정비한 후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그 이후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그의 결혼생활은..

책이야기 2023.09.30

은행나무 꽃

은행나무 꽃 입력 : 2023.05.18 03:00 수정 : 2023.05.18. 03:03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모든 나무는 이주자이다. 운명에 따라, 혹은 유전자에 따라 씨앗은 바람에 날리거나 강물과 빗물을 따라 흘러간다. 4단맛에 이끌린 짐승과 날짐승, 인간의 몸을 빌리기도 한다. 멀리 더 멀리 가려는 힘이 꺾이면, 뿌리를 내리고 몸을 펼쳐 잎을 틔운다. 나는 어미의 그늘에서 자라던 어린 은행나무였다. 네 할아버지가 나를 개울가로 옮겨 심었다. 그리고 30년 뒤에 네가 태어났다. 열 달 동안 너를 품은 태를 네 할머니가 개울물로 말갛게 씻었다. 볕이 잘 들고 사람 발길이 뜸한 곳에 묻었다. 한두 해 뒤에는 내 뿌리가 가닿을 만한 자리였다. 이제 막 꽃필 준비를 시작한 나는 그 모든 장면에 배경으로 ..

책이야기 2023.09.30

박태순, 글쓰기의 최저낙원

박태순, 글쓰기의 최저낙원 입력 : 2023.08.30 20:28 수정 : 2023.08.30. 20:32 고영직 문학평론가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소설가 박태순 선생(1942~2019)을 기리는 추모 행사는 글쓰기란 무엇이고,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얼마 전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는 유족을 비롯해 30여명의 선후배 작가들이 참석해 박태순 선생의 삶과 문학을 회고하며, 이 시대의 ‘산문정신’은 무엇인지 자문자답하는 시간이 됐다. ‘코로나 강점기’ 동안 숱한 한국문학의 거목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제대로 된 작별의 예를 갖추지 못했다. 시인 김지하(1941~2022), 소설가 조해일(1941~2020), 김성동(1947~2022), 조세희(1942~2022), ..

책이야기 2023.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