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조선> 원고료 받는 편한 삶 원하나?

닭털주 2023. 7. 3. 10:02

<조선> 원고료 받는 편한 삶 원하나?

안도현 시인 '조선닷컴 러브레터' 연재놓고 훼절 논란

03.05.26 22:05l최종 업데이트 03.05.27 22:26l 손병관(patrick21)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로 시작하는 시 '너에게 묻는다'

베스트셀러 '연어'로 유명한 시인 안도현(43·www.ahndohyun.com)씨가

최근 인터넷 조선일보 '조선닷컴''러브레터'라는 연재물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씨의 이 같은 행보는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지지 최근의 보수파 '색깔론' 비판 등의 전력에 비추어 부적절한 선택이라는 지적들이 많다.

 

안씨가 '러브레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 15.

안씨는 동영상을 통해 "시나 소설에 들어있는 빛나는 사랑의 언어들, 인간의 심금을 울린 노래 가사들을 엮어 매일 어느 누구에게 연예편지를 쓰는 심정으로 러브레터를 운영하고 싶다"고 밝혔다.

 

26일까지 총 9회의 글을 쓰는 동안 독자들의 반응("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사는군요^^ 수첩에 적어 둬야지..." "시인님의 유쾌한 글을 대하니, 빙긋이 웃음을 머금게 됩니다")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그러나 <조선>의 경우 <조선>이 지향하는 가치가 자신의 소신과 어긋난다며 수년간 <조선>에 기고는 물론, 인터뷰를 거절하는 문인들이 있어 논란을 일으켜왔다.

공개적으로 안티조선 선언을 한 시인 김준태 노혜경, 소설가 박태순 방현석 송기숙 정도상, 평론가 임헌영 등이 그들이다.

 

반면, 시인 곽효환 문정희 백미혜 이진영 함민복, 소설가 김형경 심상대 이문열, 평론가 유종호 정과리 등은 <조선> 칼럼 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름들이다.

안 시인은 안티조선 선언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이다.

일반독자들의 뇌리 속에 '빼어난 시어를 구사하는 서정시인'으로 각인되어 있는 안 시인을 프로조선 또는 안티조선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불경한 것일까?

 

그러나 안 시인이 조선닷컴으로 '외도'한 것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이 동료문인들의 지적이다. '안도현이 <조선>과 어울리지 않는 문인'이라는 논거는 몇 가지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 시인은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고,

최근에는 KBS 사장과 국정원장에 대한 색깔론 공세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지난해 안 시인은 자신의 홈페이지 '시인의 편지' 섹션에 두 편의 글을 올려 노무현에 대한 지지의사를 분명히 했다.

 

관련 기사

- 안도현 "보수언론의 흠집내기,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작년 810일에 쓴 '희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는 " '노사모'의 열정적인 응원가에 힘입어 선전하는 노 후보에게 눈꼴이 시렸던 일부 보수언론이 '노사모' 흠집내기를 시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해도 너무 한다 싶더군요"라고 말했다.

 

8.8 재보선 패배 후 후보시절 노무현의 인기가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쓰여진 이 글에서 그는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식의 정치적 허무주의를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그 놈이 그 놈'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이 계신다면 '그 놈' 중에 노무현씨를 빼주십시오"라고 자신의 선택을 분명히 했다.

 

후보시절 노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치던 같은 해 112일에 쓴 글에서는 '정치철새' 김민석에게 "솔직히 울고 싶었다. 배신자여, 갈 테면 가라" 일갈하고, 노무현에 대해서는 "그는 당당하게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바보인 것이다. 20021219, 꾹꾹 참았던 눈물의 폭탄을 누구와 함께 터뜨릴 것인가. 나는 그 희망을 노무현 후보에게 걸었다"고 지지를 재확인했다.

 

 

안 시인이 홈페이지에 올린 작년 812월간 추천사이트.

노사모, 개혁당, 노무현, 미선이와 효순이...

과연 조선일보는 안도현과 궁합이 맞는 매체일까?

 

해가 바뀌자 그는 정치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는 무조건 붉은 칠을 해대는 '붉은 페인트공들'을 질타하고 나섰다.

430일에 쓴 글에서 그는 백색 테러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SBS '야인시대'를 지켜보며 KBS 사장과 국정원장 임명 과정에 불거진 '색깔론'을 떠올린다.

 

그는 "지금 이 땅의 '색깔론'은 정연한 논리라기보다는 억지 떼에 가깝다.

(붉은 페인트질을 하는) 행위가 곧 애국으로 귀결이 되고, 권력이 되고, 돈도 밥도 되는 세월을 그들은 살아온 것이다. 독재와 결탁한 그들은 붉은 페인트공에 다름 아니었다"고 말했다.

 

<조선>은 야당 대변인 시절부터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기사를 썼고, -오프라인의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해 우리 사회에서 색깔론을 확대재생산해왔다.

지금 와서 안도현이 '인터넷 조선일보'에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조선>이 변했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안 시인이 전업작가의 길을 택하며 잊혀진 사실이지만,

그가 한때 열렬한 전교조 교사라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안 시인은 19898월 이리중학교에서 해직된 후 942월까지 전교조 이리익산지회에서 상근자로 일했다. '해직교사' 꼬리표를 단 이 시기에 대해 그 자신은 "서서히 '사나운 운동권'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목소리를 높인 뒤에 찾아오는 허탈감이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전교조 지회 활동을 함께 했던 익명의 동료교사는 "안도현은 열렬 투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냉담자도 아니었다. 복직 후 연락이 끊어졌지만, 서점에서 그의 책을 언뜻언뜻 읽을 때마다 그가 전교조 시절의 가치를 버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승목 교장 자살 이후 전교조 공격에 거품을 무는 조선닷컴에 글을 올리는 그에 대해 요즘 혼란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안도현의 변신'에 대한 친구들과 팬들의 반응도 '당혹' 그 자체이다.

최재봉 <한겨레> 문화부장은 "안도현이 조선닷컴에 글을 쓴다는 것을 <조선>에 실린 사고(社告)를 보고 알았다.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고 논평을 꺼렸다.

 

홈페이지 방명록에도

"최소한의 양심과 균형감, 도덕의식을 가진 자라면 조선일보에 글쓰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천사같은 소리를 한다 해도... 난 믿을 수 없다"

"그 입으로 문성근을, 노무현을 옮겼었나요? 설마설마, 생계를 위한 것이겠지 했는데, 도저히 이성이 용서를 못하게 하네요"라는 의견들이 올라왔다.

 

안 시인이 작년 3<조선> 아침논단 필진에 포함됐다가

결국 집필을 포기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전철을 밝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됐다.

 

안 시인의 절친한 친구로, 전라북도의 한 사찰에서 저작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소설가 이병천씨는 "용택이 형이 <조선> 기고를 한다고 하자 안도현이 용택이형에게 두어차례 전화를 한 것으로 안다. 도현이가 '인터넷에서 형을 노골적으로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득했고, 결과적으로 용택이형으로부터 '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전했다.

 

이씨는 "도현이는 인터넷을 좋아하는 문인이다. <조선>의 주독자층은 중장년층이지만, 인터넷신문을 읽는 독자들은 주로 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젋은이들을 상대로 편하게 얘기를 하려고 그와 같은 선택을 한 게 아닐까? 러나 인터넷신문이 터무니없는 논조를 펼치는 종이신문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일한 생각 같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씨는 "가능하다면 만나서 상의를 해보고 싶다.

<조선>에서 혹 문단을 흐트리려고 그러는 지는 모르겠는데,

만약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 이놈아 정신 차려라'라고 하고싶다"고 덧붙였다.

 

15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조선닷컴 '안도현의 러브레터

 

"안 시인에게 술을 한잔 얻어먹은 적이 있다"는 익명의 젊은 시인은

"<조선>이 문인들에게 지급하는 원고료는 업계 최고수준이다. 적잖은 문인들이 하루하루 유혹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셈이다. 안 시인의 결정을 너무 가혹하게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시인 이산하는

"안도현은 <조선>에 대해 큰 알레르기가 없는 문인이다. 작년 가을 우연히 만났을 때 그의 입에서 <조선> 얘기가 나왔는데, 마치 청탁을 받으면 응할 것처럼 보였다"'변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도.

 

이씨는 "나 역시 <조선>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많이 받았다. 연재물, 일사일언, 한총련에 대한 칼럼 등등 이런 것들을 뿌리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안 시인은 큰 고민 없이 결정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의 행동은 '안티조선'의 대의를 잃지 않으려는 동료문인들과 네티즌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조선>'나쁜 신문'...그러니 나의 세계관까지 의심말라"

[일문일답] 안도현 시인

 

- 처음 '조선닷컴'에 글을 쓰기로 한 경위는?

"4월말이나 5월초에 문화부 김광일 차장으로부터 연재물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책을 읽다가 좋은 글이 있으면 밑줄을 그어놓곤 했는데, 이런 것들을 모아 글을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조선>의 보수적인 생각과는 상관없고, 논리적인 자기주장을 펴는 글도 아니어서..."

 

- <조선>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

"<조선>에 글쓰면서 아무 생각 없을 수는 없잖은가? 1년에 한두번 정도 <조선>에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종이신문도 아니고, 인터넷신문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왜 쓰냐'고 다른 의견들을 내는 분들이 있다."

 

- <조선>에 대해 아무 생각 없는 문인이면 또 모르는데, 사람들은 그 동안 쓴 글을 보고 "시인 안도현과 <조선>은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나는 <조선>'나쁜 신문'이고, <조선> 기자들을 만나도 '나쁜 신문이니 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책을 내야하고, 출판사와도 통해야 한다. 출판사는 또 신문을 이용하려고 하고... <조선>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를 천명하기 전부터 개인적으로 알고지내던 기자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를 한순간에 끊을 수 없더라."

 

- 인간적인 문제와 상관없이 <조선>에 대해 단호한 문인들이 많다.

"그런 고민하는 사람 많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문단이라는 게 복잡다양해서 의견이 많다. 안티조선 선언한 분도 있고, (안티조선) 의견 내지 않고도 <조선>에 글을 안 쓰는 분이 상당수 있고, (안티조선) 의견에 동의하지만 글을 쓰는 분도 있고..."

 

- 항의하는 분들을 위한 답변을 미리 준비하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러나 <조선>에 글쓰는 것과 나의 세계관을 동일시해 의심하지 않았으면 한다. 뭔가 얘기할 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광수의 친일행각보다 충격적이다' '안도현의 시를 쓰레기통에 버리련다'는 식의 단선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은 기분이 안 좋다."

/ 손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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