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끝내 [말글살이]

닭털주 2025. 5. 9. 10:26

끝내 [말글살이]

수정 2025-05-08 18:44 등록 2025-05-08 14:30

 

 

내내는 어떤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이어질 때 쓰는 부사이다.

여름에 비가 왔다는 말은 비가 한번만이라도 내리면 그만이지만,

여름 내내 비가 왔다고 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는 뜻이 된다.

말 그대로쉼 없이 비가 내렸다면 재앙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말은 태생적으로 뻥튀기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중에서 눈에 띄는 한두가지를 골라 마치 그게 전부인 양 과장한다.

방학 내내 소설책만 읽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적어도 밥은 먹고 잠도 잤을 테니).

여러 일 중에서 소설책 읽는 게 가장 도드라졌다는 뜻이겠거니 한다.

 

내내에서 하나를 줄여 라고만 쓰면 다른 말에 빌붙어 뭔가를 덧대는 접미사로 바뀐다.

겨우내, 여름내그 기간 동안 줄곧을 뜻하게 되는데 겨울 내내, 여름 내내와 큰 차이가 없다.

 

접미사 의 진가는 어떤 기간 전체보다는 그 기간의 마지막 지점을 콕 집어 강조할 때 발휘된다.

마침이나 에 붙어 생긴 마침내, 끝내라는 낱말을 볼라치면 모종의 단호함이나 절박함 같은 게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연히 마주친 이 아니라, 참고 견디고 버텨서 기어코 맞이한 끝. ‘끝내로도 모자라 끝끝내라고 해야 직성이 풀릴 듯한 간절함 같은. 그래서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는 노래는 민중들이 읊조리는 기도문이다.

 

[덧붙임] 사전에는 내내를 부사로 처리하고 있지만,

시험 치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라는 문장에서 보듯 관형어의 수식을 받기도 하니 명사로도 볼 수 있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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