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말글살이]
수정 2025-05-08 18:44 등록 2025-05-08 14:30
‘내내’는 어떤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이어질 때 쓰는 부사이다.
‘여름에 비가 왔다’는 말은 비가 한번만이라도 내리면 그만이지만,
‘여름 내내 비가 왔다’고 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는 뜻이 된다.
‘말 그대로’ 쉼 없이 비가 내렸다면 재앙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말은 태생적으로 ‘뻥튀기’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중에서 눈에 띄는 한두가지를 골라 마치 그게 전부인 양 과장한다.
‘방학 내내 소설책만 읽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적어도 밥은 먹고 잠도 잤을 테니).
여러 일 중에서 소설책 읽는 게 가장 도드라졌다는 뜻이겠거니 한다.
‘내내’에서 하나를 줄여 ‘내’라고만 쓰면 다른 말에 빌붙어 뭔가를 덧대는 접미사로 바뀐다.
‘겨우내, 여름내’는 ‘그 기간 동안 줄곧’을 뜻하게 되는데 ‘겨울 내내, 여름 내내’와 큰 차이가 없다.
접미사 ‘내’의 진가는 어떤 기간 전체보다는 그 기간의 마지막 지점을 콕 집어 강조할 때 발휘된다.
‘마침’이나 ‘끝’에 붙어 생긴 ‘마침내, 끝내’라는 낱말을 볼라치면 모종의 단호함이나 절박함 같은 게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우연히 마주친 ‘끝’이 아니라, 참고 견디고 버텨서 기어코 맞이한 끝. ‘끝내’로도 모자라 ‘끝끝내’라고 해야 직성이 풀릴 듯한 간절함 같은. 그래서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라는 노래는 민중들이 읊조리는 기도문이다.
[덧붙임] 사전에는 ‘내내’를 부사로 처리하고 있지만,
‘시험 치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라는 문장에서 보듯 관형어의 수식을 받기도 하니 명사로도 볼 수 있다.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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