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글빚의 무게

닭털주 2022. 4. 19. 08:09

글빚의 무게

도재기 논설위원

 

 

서예가들이 유독 강조하는 말이 있다.

글씨는 곧 그 사람이란 뜻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이다.

서예뿐 아니라 문학·그림 등이 작가의 인격과 수양의 정도를 반영한다는 전통 예술관에서 나온 말이다.

굳이 예술관을 들지 않아도, 도스토옙스키나 뷔퐁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우리는 그가 쓴 글이 곧 그 사람이란 것을 안다.

 

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 장관 내정자들의 글이 잇따라 논란을 부르고 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는

결혼과 출산을 애국으로, 저출생의 원인을 여성 탓으로 돌리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성범죄자 취업제한 직종에 의료인을 포함시킨 법률을 비난하고(‘3m 청진기’),

암 치료 특효약은 결혼이라고도 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내정자는

출산하지 않는 여성에게 징벌세를 물려야 한다는 출산기피부담금 제도를 거론했다.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라도 하듯 그는 블로그의 모든 글을 삭제했다.

반페미니스트 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떠돌던 가짜뉴스를 버젓이 글로 쓴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내정자도 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내정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당한 비판을 받고 있는 듯 감싸면서 칭송했다. 방사능 오염을 걱정해 일본 수산물을 먹지 않는 것은 한국인의 민감성이라고 주장했다.

글에는 그들이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나 역사인식이 고스란히 투영된다.

장관 내정자들은 문제가 된 글이 당시의 일시적인 견해나 감정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남이 써주지 않는 한, 글과 그 사람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그 글은 어느 날 갑자기 머리에서 솟아날 수 없다.

고위 공직자로서 됨됨이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글을 통해 가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 내정자 등 거론되는 사람들은 장관은커녕 전문인·지식인의 글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하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갚아야 할 갖가지 빚이 있다.

글빚도 그중 하나다.

필자 본인은 소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퇴행적인 견해로 세상을 오도할 수 있다.

더구나 대중을 상대로 글을 썼다면 그 빚의 무게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내정자들이 진정 양식 있는 전문가라면 응당 글빚을 갚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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