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풍 이미지가 던지는 질문
입력 : 2025.04.06 20:34 수정 : 2025.04.06. 20:47 이윤주 정책사회부장
최근 카카오톡에서 업데이트된 친구 프로필을 보면 십중팔구는 챗GPT를 이용한 ‘지브리풍’ 이미지다. 대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지브리풍 프로필 사진 하나 정도 업데이트하는 편이 나을까 고민하다 어쩐지 내키지 않아서 멈췄다.
챗GPT가 생성하는 지브리풍 이미지는 따뜻한 분위기의 배경에
부드러운 선으로 귀엽게 인물을 묘사해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달 말 오픈AI가 ‘챗GPT-4o’에 이미지 생성 기능을 추가하면서 가능해졌는데, 사용자들이 지브리풍 이미지에 열광하기 시작하며 유행이 됐다.
2022년 11월 챗GPT가 출시된 이후 산업과 연구, 생활 전반에서 AI를 이용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 됐다. 개인도 필요한 정보를 찾아 분석하거나, 양식에 맞게 문서를 변형하는 등의 업무에 AI의 도움을 받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여기에 지브리풍 이미지의 열풍은 ‘AI 대중화’의 새로운 변곡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챗GPT가 이미지 생성 기능을 갖춘 새 버전을 출시한 뒤 1주일 만에 ‘지브리풍’으로 제작된 이미지가 7억장을 넘고, 챗GPT의 유료 구독자는 약 450만명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챗GPT에 ‘네가 만드는 지브리풍 이미지의 인기가 대단하던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챗GPT는 ‘혹시 너도 한번 만들어보면 어때’라고 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고 몽환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나도 만드는 게 참 즐거워. 사람들이 그런 이미지에서 위로를 받고,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면 그걸 도울 수 있다는 게 참 뿌듯해’라고 답했다.
수년간의 수작업을 거쳐서야 세상에 나오는 것이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이다.
그 스타일을 모방해 만들어지는 지브리풍 이미지에서 인간은 어떤 위로를 얻고 만족감을 누려야 하는 것일까. 마치 문서에서 명조체와 고딕체를 고르듯 손쉽게 지브리풍, 디즈니풍 이미지를 찍어내는 것을 창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브리풍 이미지의 대중화가 지브리 스튜디오 고유의 정체성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일까. AI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더라도,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이나 고유의 정체성을 지켜낼 수 있는 영역으로 꼽혔던 것이 예술 분야다.
이 같은 측면에서 지브리풍 이미지의 열풍은 다양한 논란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표면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저작권 문제다.
지브리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이웃집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베끼지 않고, 스타일만 모방한다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아직 챗GPT의 지브리풍 이미지 생성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용자들이 입력하는 사진의 개인정보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
사용자가 향후 모델 개선에 기여할지 여부를 설정할 수 있으나, AI가 지브리풍 이미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이미지 데이터를 축적해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또 AI의 학습량이 증가할수록 AI가 소모하는 에너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점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방대한 양의 이미지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
AI 기업들의 데이터센터는 개별 국가의 사용량에 육박하는 막대한 전력을 쓰고 있어
탄소중립에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헨리 키신저와 에릭 슈밋 등은 공저 <AI 이후의 세계>에서 “AI 시대가 제기하는 역사적·철학적 과제는 15세기 유럽에서 인쇄술의 발달이 불러온 변화에 견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I 혁명은 대부분의 예상보다 빠르게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그에 따르는 변화를 설명하고, 해석하고, 체계화하는 개념들을 확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길을 잃고 만다.
도덕적·철학적·심리적·실용적 차원에서, 즉 모든 차원에서 우리는 새 시대의 벼랑에 서 있다”고 했다.
AI는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성취를 따라잡고 있다.
인류는 AI와의 동반자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첨단 산업으로서 AI의 육성 못지않게, AI의 개발과 사용에 대한 윤리와 규제 마련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AI의 성취를 인정하되 그 속에서 인간다움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지브리풍 이미지가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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