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헌법정신 역행하는 권력기관 사유화

닭털주 2022. 5. 5. 09:36

헌법정신 역행하는 권력기관 사유화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빙 대선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권교체기의 낯익은 풍경이 연일 이어진다.

말의 성찬과는 달리 행동의 냉혹함이 현실을 지배한다.

윤석열 당선인의 일성이었던 국민통합은 그들만의 통합임이 점점 노골화되고 있다.

결단의 고통을 감내한 주권자 국민의 정신적 위무를 위해서라도 지켜져야 할 새 정부 출범의 허니문을 스스로 깨뜨리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상징을 무너뜨린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제왕의 방식으로 대통령집무실 이전을 속전속결로 강행한다.

식사정치는 요란하지만 성가신 언론매체는 출입불가로 일관한다.

공약임을 내세워 여론에 역행하는 정부조직개편은 요지부동이다.

법치와 자유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더니 스스로 기소한 국정농단 범죄자를 찾아 사죄하고 명예회복을 약속한다.

능력주의랍시고 최소한의 다양성마저 상실된 성별·지역·학력·세대 편중, 비전부재의 첫 내각을 구성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최측근 현직 검사를 법무장관 후보로 전격 지명하고 학연이 두드러진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를 인선한 조치에서 보듯 권력기관의 직할 체제를 전면화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열거하기에도 만만찮은 행보는 진영논리라고 쉽게 치부하기 힘든 행태적 방향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검찰총장 출신 당선인이 스스로 살아있는 권력이 되어서는 권력기관 직할 의도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 것은 민주공화 헌법에 비추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 행보다.

아직도 혹시나하고 있을 많은 국민들의 순진한 낙관이,

오히려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날씨만큼 처량해 보인다.

정작 들어야 할 사람들이 듣기를 거부하더라도,

역시나의 허망함을 짊어질 이들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헌법이 전제하고 있는 정권교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헌법에 정권교체는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 법치, 보통선거 등 민주공화제의 기본원리를 고려할 때 주기적인 정권교체는 당연히 전제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제의 경우 정권교체는 총선과 대선으로 이원화되어 있고,

입법권과 행정권 사이에 권력분점이 빈발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번에도 총선이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야당이 압도적 다수를 이루게 되는 권력분점이 현실화되었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 따른 정권교체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러나 정작 당선인이 보여주는 행태는

그토록 공격하던 내로남불을 넘어 반헌법적이기까지 하니

국민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헌법상 권력분점을 해소하는 방법은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는 야당과 협치하는 방법과

국민의 신임을 두고 경쟁하여 정국주도권을 장악하는 방법이 있다.

둘 다 민주공화 헌법이 허용하는 방식이지만,

두 번째의 경우 헌법이 묵시적으로 금지하는 금단의 영역이 있다.

대통령이 법집행권을 남용하여 사정정국을 조성하고 상대를 위력으로 제압하는 방식이다. 민주화 이전에는 너무나 당연시되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근절되지 않은 이 선별적 법집행권의 방식은 법 앞의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법치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로 민주적 대통령제가 도입되었지만 제왕적 대통령 현상이 끊이지 않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했던 근본원인이 되어 왔다.

문제의 법무장관 후보자가 나쁜 놈만 잘 때려잡으면 법치라고 했다지만, 열 명의 범죄자를 풀어주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국민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민주공화국 헌법의 법치이다. 스스로가 이와 같은 국민의 적법절차적 권리를 지렛대 삼아 실체적 진실발견을 임무로 하는 검사로서의 직업윤리를 저버리고도 법치의 상징인 법무장관으로 나서는데 아무런 법적 장애가 없는 배경이기도 하다.

촛불로 국정농단 대통령을 탄핵한 것이 불과 5년 전임에도,

탄핵의 원인이자 제왕적 대통령제의 요체인 권력기관의 사유화를 노골화하고 있는 행태는 도대체 무슨 아이러니인가?

 

그 성과 여부에 대해 당연히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과 관련하여 지향한 방향성에 있어서만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사회 모든 세력의 원론적 입장이 다를 수 없다.

현실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법무부를 그 외청에 불과한 검찰로부터 자유롭게 하려는 탈검찰화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남긴 유산의 단절을 위해 필수적이다.

정치인 배제를 공언하고서도 정작 행안부 장관을 자기 사람으로 고집하는 것 또한 정권교체라는 명분과 어울리는 일인지 의문이다.

간곡히 청하건대, 제발 민주공화적 헌법정신에 입각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되새기시라.

 

 

헌법권력기관사유화제왕적 대통령제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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