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주상태
내 나이 꺾어지는 즈음에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는 삶을 속이지 말기를
그대는 삶에 속아 넘어가지 말기를
삶이 그대를 죽일지라도
그대는 삶을 죽이지 말기를
그대는 삶 때문에 죽음을 택하지 말기를
가끔 날아가는 새에게 소리치기도 한다
내 나이 결혼할 즈음에
자주 하는 일이 있었다
손을 잡고 가는 연인들을 보면서
내 삶을 속이면서
혼자 집으로 달려가 라면을 먹은 적이 있다
라면은 몇 그릇째 비워도
머릿속은 비워지지 않은 날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앞으로만 달리는 나이에도
내 삶은 뒤를 바라보았고
뒤로 돌아가는 나이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시간이 되었다
삶은 그대를 속일지라도
나는 삶을 속이지 않을 생각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을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