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 잘 살았다
송경동
나는 내 시에
푸르른 자연에 대한 찬미와 예찬이 빠져 있음을
한탄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에
부드러운 사랑에 대한 비탄과 환희가 빠져 있음을
아쉬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에
저 드넓은 우주에 대한 경배와 경이로움이 빠져 있음을
억울해하지 않는다
나는 내 시에
빛나는 전망과 역사에 대한 확고한 낙관이 반영되지 못했음을
그닥 반성하지 않는다
가령 뜨거운 화덕 앞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령 뙤약볕과 추위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령 착취와 차별과 폭력과 모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한 시절 인연이 그들 곁이었으므로
그들의 비천하고 비좁은 이야기로 내 시가 가득찼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한 시절 인연이
충분히 고귀하고 행복한 세상과 절연하고
고통만이 전부인 세상과 교통하는 일이었으므로
그 절규와 아우성으로부터
내 시가 몇 발쯤 비켜서 있지 못했음을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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