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 53

교육자가 혁명을 기다리는 이유

교육자가 혁명을 기다리는 이유 이병곤ㅣ 제천간디학교 교장 답답하다. 2023년 한국. 교육으로 세상 바꾸기란 힘들겠다는 판단이 든다. 혁명이 일어나면 좋겠다.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나 전세계로 번졌던 문화 혁명을 꿈꾼다. 그해 봄, 파리 근교 낭테르대학에서 시작했다. 베트남전쟁에 반대해 성조기를 불태우고 시위하던 대학생들이 경찰에 붙잡히면서부터다. 시위는 소르본대학으로 번져 학생 500여명이 잡혀갔고, 대학은 폐쇄되었다. 학생들은 되레 바리케이드를 쌓고 자동차를 불태우며 저항을 시작한다. 얼마 뒤 5월22일에는 노동자 1천만명이 동시 파업을 벌일 정도로 시위가 커졌다. 혁명은 섬광처럼 일어난다. 혁명의 물결은 피오르해안을 형성하는 빙하처럼 협곡을 깨부수며 거칠게 전진할 것이다. 무질서와 파괴를 동반한..

칼럼읽다 2023.09.24

물불 가리지 않기

물불 가리지 않기 입력 : 2023.06.15 03:00 수정 : 2023.06.15. 03:05 오은 시인 물을 마실 때마다 불을 생각한다. 불을 피울 때마다 물을 떠올린다. 물과 불, 이름은 비슷하나 성질은 전혀 다른 두 물질 말이다. 불 위에 물을 올려두고 끓이다 보면 불의 힘이 불끈 솟는 게 느껴진다. 타오르는 불에 물을 끼얹는 장면을 보면, 끓어오르는 것을 잠재우는 물의 위력에 새삼 놀란다. 4월이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세월호 참사와 최근 캐나다 동부에서 서부로 확산한 산불 소식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물과 불의 위험성을 깨닫곤 한다. 사람이 사는 데 필수 불가결하지만, 잘 다루지 않으면 언제든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 얼마 전, 각기 다른 자리에서 불같은 사람과 물 같은 사람을 만났다. 불..

칼럼읽다 2023.09.23

아픈 마음과 이해심

아픈 마음과 이해심 입력 : 2023.09.20. 22:58 임경선 소설가 미대 지망생이던 내가 정치학 전공으로 진로를 바꾼 이유는 미국 뉴욕 공립 고등학교의 역사 수업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유태계 미국인 여성인 바바라 선생님이 이끈 그 수업은 오로지 토론으로만 이루어졌다. 고등학생들은 U모양으로 둘러앉아 그날의 주제를 갖고 찬반 그리고 중간자적 입장의 논지를 자유롭게 발언했고, 간혹 선생님은 조용한 학생들이 먼저 발언하도록 유도했다. 수업은 양쪽 입장의 논리에 대해 수긍할 만한 점을 평가하고 재고할 만한 지점이나 놓친 논점을 짚어준 후, 본 논쟁이 실제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에 대한 선생님의 강의로 마무리되곤 했다. 나는 그 수업을 통해 상황을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일과 상대의 입장에 서서 ..

칼럼읽다 2023.09.23

여행 대신 모험

여행 대신 모험 입력 : 2023.09.20 23:01 수정 : 2023.09.20. 23:02 복길 자유기고가 저자 요즘은 여행 코스를 짤 때 맛집 위주의 동선을 의식적으로 피한다. 식도락 여행은 계획이 쉽고 대체로 높은 만족감을 주지만, 일정을 식사에 맞추다 보니 여행지를 즐길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느껴서다. 그러나 먹고 마시는 단조로움을 피해 여행 계획을 세운다 한들 그것이 여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식당과 카페가 빠진 계획엔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드라마 촬영지가 빼곡히 채워진다. 소셜미디어(SNS) 돋보기로 사람들의 사사로운 후기와 사진 명소까지 알뜰하게 훑으면 완성된 계획표에는 여행에서 반드시 의미를 남기고 말겠다는 나의 징그러운 열정만이 가득하다. 여행의 여유는 여행을 준비할 때부터 ..

칼럼읽다 2023.09.23

가을 국화

가을 국화 입력 : 2023.09.21 20:30 수정 : 2023.09.21. 20:31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우연이 희한하게 겹치는 그런 날이 있다. 붐비는 설렁탕집 건너건너에서 허겁지겁 밥 먹는 이는 좀 전 지하철에서 마주쳤던 중년. 짧게 깎은 머리, 후줄근한 점퍼에 청바지 차림이다. 그는 아주 오래전 캐나다로 이민 떠난 재종 동생과 어찌 그리 닮았는가. 혹 녀석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몰래 잠깐 귀국이라도 한 것일까. 그러나 또다시 보아도 그럴 리는 없었다. 그 바람에 흠칫 짐작을 넓혀본다. 주위에 몰래 거처를 숨기고 없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행방을 감출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있겠구나. 투명인간인 듯 두더지인간인 듯. 유학을 떠났다가 학위를 그만두..

칼럼읽다 2023.09.23

[말글살이] 피동형을 즐기라

[말글살이] 피동형을 즐기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원고가 마무리되셨는지요?’ 오늘도 어떤 분에게 원고를 독촉하면서 피동형 문장을 썼다. ‘마무리하셨나요?’라 하면 지나치게 채근하는 듯하여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나도 매번 독촉 문자를 받는데 열이면 열 ‘언제쯤 원고가 완성될까요?’ 식이다. ‘원고 완성했어요?’라 하면 속이 상할 듯. 비겁한 피동 풍년일세. 한국어 문장에 대한 가장 강력하면서도 근거 없는 신화가 ‘피동형을 피하라’라는 것. 글 쓰는 사람이라면 이런 얘기를 한번쯤 들었을 것이다. ‘능동형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피동형은 우리말을 오염시킨다’, ‘우리말은 피동형보다 능동형 문장이 자연스럽다’, ‘피동형은 영어식 또는 일본어식 표현의 영향이다’. ‘능동형이 자연스..

연재칼럼 2023.09.23

동물마다 서로 다른 미각

동물마다 서로 다른 미각 입력 : 2023.05.26 03:00 수정 : 2023.05.26. 03:03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신기하게도 고양이는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단맛을 내는 성분은 주로 탄수화물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지는데, 고양잇과 동물들은 주로 육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용하지도 않는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에너지 측면에서 낭비이기에, 단맛을 느끼는 미각 세포가 발달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에 반해 잡식성인 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단맛을 잘 느낍니다. 대식가인 고래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미각이 아주 단순합니다. 단지 짠맛을 느낄 뿐인데,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과 함께 통째로 삼키는 식습관 때문입니다. 다양한 맛을 느낄 필요가 없으니 짠맛 이외의 맛과 관련된 ..

칼럼읽다 2023.09.17

세계 최대 규모 영재교육 제도의 허와 실

세계 최대 규모 영재교육 제도의 허와 실 입력 : 2023.06.20 03:00 수정 : 2023.06.20. 03:04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우리나라에는 영재교육의 제도와 법이 아주 잘 갖춰져 있다. 과학고를 설립하기 시작한 지도 40년이 넘었고, 영재교육진흥법이 시행된 지도 20년이 넘었다. 외국의 영재교육 전문가들은 한국에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가 28개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놀라워한다. 실제로 다른 어느 나라도 우리만큼 방대하고 다양한 과학영재 교육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중학생 또는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형태의 영재교육원이 340개 있고, 영재학급도 1118개가 있다. 영재교육 대상자는 2022년 기준 7만2518명, 담당 교원은 1만8340명이나 된다. 교육 대상자가 전체 ..

칼럼읽다 2023.09.17

[슬기로운 서평생활] 동네책방이 책 이상의 문화공간을 만드는 이유

[슬기로운 서평생활] 동네책방이 책 이상의 문화공간을 만드는 이유 기자명 장슬기 기자 입력 2023.02.18 10:35 수정 2023.02.20. 14:54 어떤 면에서 글을 쓰고 읽는 행동은 가장 사치스러운 행동이다. 사치란 말이 보통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긍정적인 부분만 발라내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인간 중심적인 생각을 조금 더 펼쳐보면 여타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특징이 글로 소통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지적 허영심을 충족하기 좋은 공간 중 하나가 동네책방이다. 정말 동네마다 책방이 있을 정도로 동네책방이 많다. 위트앤시니컬(유희경 시인), 책방이듬(김이듬 시인), 책방무사(가수 요조), 당인리책발전소(김소영·오상진 전 아나운서 부부), 니은서점(사회학자 노명우), 쩜오책방(사회학자 조형근) 등 유..

책이야기 2023.09.16

최저임금 벌기도 힘든데... 동네책방 창업의 감춰진 진실

최저임금 벌기도 힘든데... 동네책방 창업의 감춰진 진실 [소셜코리아] 출판 시장 불황에도 동네책방은 늘어... 산업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 문화 조형근(soko) 지난 2월 에 "동네책방이 책 이상의 문화공간을 만드는 이유"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문화공간으로서 책방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가수, 아나운서, 대학 교수, 시인, 전직 대통령 같은 유명인들이 책방을 차린 사례를 들고 있는데, 놀랍게도 내 이름도 있었다. 아마 동네의 협동조합 책방에 참가하고 있다는 이유로 몇 년 전 다른 매체에 응한 인터뷰 때문인 듯했다. 그때 인터뷰도 동네책방의 '부상'에 주목했다. 그런데 동네책방이 '부상'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출판산업과 서점업계가 해마다 '단군 이래' 수준을 넘어 '파피루스 발명 이래 ..

책이야기 2023.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