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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드라마'를 보다가

전쟁 ‘드라마’를 보다가 입력 : 2023.11.03 20:33 수정 : 2023.11.03. 20:39 오수경 자유기고가 저자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 은 ‘로맨스’ 사극이지만 전쟁 드라마이기도 하다. 1636년 조선, 능군리에 사는 길채는 “연모하는 이와 더불어 봄에는 꽃구경하고 여름엔 냇물에 발 담그고 가을에 담근 머루주를 겨울에 꺼내 마시면서 함께 늙어가”는 게 꿈이다. 길채뿐 아니라 많은 이의 바람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전쟁에 그 바람은 거침없이 짓밟힌다. 백성들은 삽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내일을 잃었다. 대부분의 전쟁이 그러하듯 에서도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무고한 백성들, 특히 노약자와 어린이, 여성이었다. 남성들이 ‘나라의 근본(왕)’을 구하기..

칼럼읽다 2023.11.03

위대한 배우는 어떻게 나이들어가는가

위대한 배우는 어떻게 나이들어가는가 김은형|문화부 선임기자 한달 전 40주년 회고전을 여는 정지영 감독 인터뷰를 하던 중 정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그날 저녁 열릴 개막식에 참석하겠다는 배우 안성기의 연락이었다. ‘남부군’ ‘하얀 전쟁’ ‘부러진 화살’ 등 정지영 감독의 주요 작품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안성기는 정지영 회고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정 감독은 긴 시간 혈액암 투병을 해온 안성기의 건강이 염려돼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안성기가 직접 연락해 오겠다고 한 것이었다. 안성기는 같은 식으로 1년 전 이맘때 열렸던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 특별전에도 참석했다. 그때 얼굴이 붓고 가발을 쓴 모습으로 나타나 암 투병 사실이 세간에 알려졌다. 며칠 뒤 안성기 배우를 직..

칼럼읽다 2023.11.03

실버타운에 가시렵니까?

실버타운에 가시렵니까?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2주 전 외출에서 돌아온 집 현관에 광고 전단이 붙어 있었다. 경기도 외곽의 실버타운 분양 정보였다. 소오름. ‘방충망 교체해야 하나’ 따위의 말로도 꺼내지 않았던 내 머릿속을 뒤져 온라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이제는 오프라인으로까지 직접 서비스를 하시겠다 이거지, 이 무서운 인공지능아!(인공지능과 뭔 상관인데) 옆집에도 같은 전단이 붙어있던 건 알아보지 못한 채 ‘요새 호텔식 컨시어지 어쩌고 하는 호화 실버타운도 많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성비’만을 이토록 강조하다니 이제는 광고 전단도 커스터마이즈하나, 소름 끼치는 인공지능 세상 같으니라구’ 망상의 나래를 펼치며 광고전단을 숙독하기 시작했다. 파닥파닥. 다섯살만 더 먹었으면 당장 뛰쳐나..

칼럼읽다 2023.11.03

살아야 죽는다

살아야 죽는다 입력 : 2023.09.06. 20:22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무척 역동적이다. 매일 약 2000억~3000억개의 세포가 죽는다. 또 그만큼의 세포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성인 몸 세포 약 40조개의 0.5%가량이 매일 교체되는 셈이다. 그렇게 얼추 200일마다 우리 몸은 새롭게 태어난다. 하지만 이 말은 절반만 옳다. 세포에 따라 수명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심장근육 세포나 1000억개에 이르는 뇌 신경세포는 수명이 상당히 길다.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은 적혈구는 120일을 살지만 1초에 200만개씩 태어나고 죽어간다. 테니스장 넓이의 소화기관 상피세포는 4~5일마다 교체된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 세포는 쉼 없이 살고 죽기를 되풀이..

칼럼읽다 2023.11.03

전쟁은 전염병처럼 번진다

전쟁은 전염병처럼 번진다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뒤, 가자지구에서 1만명 넘는 팔레스타인인을 숨지게 한 이스라엘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의 정치-군사적 지도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스라엘의 지난 3주간 공습 기간에도 알카셈(알깟삼), 사라야 알쿠드스, 아부 알리 무스타파 등으로 알려진 여단급 무장 조직들은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매일 로켓 포탄을 쏘고 있다. 10월27일부터 가자시티 인근에 진입한 이스라엘 전차와 장갑차를 표적으로 이들 여단은 합동작전도 진행하고 있다. 최고사령관이 사망했어도 여전히 제병합동 지휘통제 체계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하마스는 자신들이 억류한 이스라엘 인질들 동영상을 공개하는 심리전도 수행하고 있고, 러시아에서 이란과 헤즈볼라 지도자들..

칼럼읽다 2023.11.03

이념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이념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 입력 : 2023.11.01. 20:53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 연구원 전임연구원 조선왕조는 태조 이성계부터 마지막 순종까지 27대 518년 동안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봐도 드물게 오래 지속된 왕조이다. 하지만 그 국왕 권력이 순조롭게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두 번의 반정(反正)이 있었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1506)과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1623)이 그것이다. 중종은 연산군의 이복동생이었고, 인조는 광해군의 조카였다. 조선 왕실의 연속성은 이어졌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두 반정이 정치 쿠데타인 것은 분명하다. 16세기 초반에 일어난 중종반정과 임진왜란 뒤 17세기 전반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반정이라는 이름은 같아도 그 성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는 100여년 ..

칼럼읽다 2023.11.03

[말글살이] 주현씨가 말했다

[말글살이] 주현씨가 말했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생존자 이주현씨는 10·29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이 자리를 거절했습니다. 이 짧은 5분 안에 제 마음과 생각을 다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못다 한 말들은 그냥 다 없는 말이 되어 버릴 것 같았습니다. 저는 분향소보다는 이태원을 자주 갔습니다. 그 참사 현장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고 저라도 선명히 계속 기억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억의 벽 앞에도 자주 갔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메모지에 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 말 몇 마디로, 몇 줄의 문장으로 어떻게 이 마음을 다 표현합니까.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습니다. 분향소 앞에서 그분들의 영정을 마주 볼 때는 한 가지 말을 되뇔 수 ..

연재칼럼 2023.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