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놀이 40

새로운 날은 과거의 실수를 제물로 삼아 온다

새로운 날은 과거의 실수를 제물로 삼아 온다 수정 2025.04.10 21:28 레나 사진작가  빨리 핀 꽃들은 지고, 그 위를 새로운 꽃들이 덮는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꽃들처럼 인간도 과욕을 버릴 수 있다면. ⓒ레나  햇볕이 부쩍 맑고 따뜻해졌다.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창밖을 보니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마흔 중반을 훌쩍 넘겼으니, 봄꽃을 본 날이 어쩌면 봄꽃을 볼 날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했더니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더 곱고 아름답게 보였다. 이번 봄꽃이 유난히 반가운 것은 겨울이 그만큼 추웠기 때문이리라. 러시아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1910년 ‘불새’를 탈고한 후 고대 러시아 축제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는 자서전에 ‘봄의 제..

사진놀이 2025.04.12

양산에서 노을을 보다

양산에 온 지 10일째.양산으로 이사 온 지는 9일째.하루 전날 왔고 다음날 이사짐을 내렸다. 2025년 3월 21일이다.3월은 가장 바쁜 날이다.이사를 하면 프리랜서도 바쁘다. 책장 정리를 하다보니 노을을 볼 겨를이 없었다.이제 서재도 일단 자리를 잡았다.토요일 소주 한 잔 아니 소주 몇 병을 마시기 위해 집을 나섰다. 육교를 건너면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로 가서 고기와 술을 산다.저녁 6시 30분 육교를 지나는데 노을이 지고 있었다.찔끔내린 비, 다음 날이다.

사진놀이 2025.03.30

겨울의 터널을 지나며 [포토에세이]

겨울의 터널을 지나며 [포토에세이]수정 2025-03-10 18:43 등록 2025-03-10 16:39   창문 너머 메마른 가지에 아침 햇빛이 부드럽게 비추고 있다. 이 순간, 자연은 인내와 참음의 상징처럼 보인다. 겨울의 긴 터널을 지나, 포근한 햇빛을 받으면 그 가지에서 분명 새싹이 틀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올해 겨울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혹독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몰아친 마음 속 추위는 더욱 뼈아프게 느껴졌다. 몸은 옷으로 따뜻하게 감쌀 수 있지만, 마음은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엄혹하고 살얼음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사진놀이 2025.03.13

햇볕이 강하면 그늘이 짙다

햇볕이 강하면 그늘이 짙다입력 : 2025.02.13 21:24 수정 : 2025.02.13. 21:29 김지연 사진작가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 구례의 한 정미소. ‘정미소’ 연작 중에서, 2002. ⓒ김지연  햇볕이 강한 날 그림자가 짙다는 것은 반대로 그림자가 강한 날 햇살이 좋다는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두 사람이 그림자를 포개며 ‘이러면 그림자 색이 더 짙어질까?’ 하며 그림자를 서로 겹쳐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볕이 흐린 날이라면 ‘그렇다’ ‘아니다’라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나는 그 생각을 해보며 산책길에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의 그림자에 내 그림자를 슬쩍 겹쳐보았다. 그림자 농도는 변함이 없었다. 한 사람의 슬픔에 다른 사람의 슬픔이 더하더라도 슬픔에는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사진놀이 2025.02.14

삶은 원래 곤란하다는 듯

삶은 원래 곤란하다는 듯입력 : 2025.01.30 21:24 수정 : 2025.01.30. 21:29 이훤 사진작가  지나간 계절을 이어놓은 듯한 덩굴, Linking Winters 겨울 잇기(2024). ⓒ이훤  “밤사이 내릴 강설로 인해 길이 미끄러울 예정이니 대중교통 이용, 눈길 미끄럼 등 주의 바랍니다.” 늦은 밤 안내문자를 받았다. 현관에 눈 삽과 장갑을 미리 챙겨놓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면 복숭아뼈만큼의 눈이 소복이 쌓여 있을 것이다. 사는 일이 버거웠던 시절에는 비슷한 문자를 받고 눈물이 핑 돈 적이 있다. 밤새 눈이 온다는, 하늘이 무겁고 땅이 아슬아슬하니 조심하라는 건조한 문구가 내 삶을 관통하는 무심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누구의 삶에나 악천후로 가득 찬 절기가 찾아온다. 신이 가까이에..

사진놀이 2025.01.31

푸른색 한 줄기

푸른색 한 줄기입력 : 2025.01.16 20:59 수정 : 2025.01.16. 21:01 레나 사진작가  석양이 호수 뒤로 지고 있다. 서쪽 하늘로 사라지기 전,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 ⓒ레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 ‘푸른색 한 줄기(A Slash of Blue)’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황금의 물결 ― 하루의 둑 ― 바로 아침 하늘을 만들어내는 것.(A Wave of Gold - A Bank of Day - This just makes out the Morning Sky.)” 에밀리 디킨슨은 서쪽으로 지는 해의 황금빛과 서서히 다가오는 밤의 푸른빛이 섞인 저녁 하늘을 묘사하면서, 일몰의 태양이 다음날을 만들어낸다고 노래한다. 떠오르는 해는 일반적으로 희망이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매년 새..

사진놀이 2025.01.20

신호등이 가르쳐준 절제와 희망 [포토에세이]

신호등이 가르쳐준 절제와 희망 [포토에세이]윤운식기자수정 2025-01-13 18:29 등록 2025-01-13 16:50  파란색 신호등은 곧 빨간색으로 바뀔 것이고, 빨간색은 파란색으로 바뀔 것이다. 직진 신호라는 것은 빨리 달리라는 게 아니라 조만간 멈출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이고, 정지 신호는 낙담하여 넋 놓고 있지 말고 다시 운전할 것을 기대하라는 신호다. 신호등은 절제와 희망을 가르친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사진놀이 2025.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