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92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나는 12년차 비정규직 강사입니다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우수상] 나는 12년차 비정규직 강사입니다 임하정 | 영어회화전문강사 밀레니엄 시대라 환호하던 2001년, 저는 33살의 나이로 영어영문학과 편입 시험을 치렀습니다. 면접을 보셨던 교수님께서 나이를 물으시더니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라고 하시며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준비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학교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했습니다.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직장 생활을 함께 했던 10대에는 밤새워 공부하는 것을 얼마나 동경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영어 과목을 좋아했는데, 제가 처한 열악한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을 상상하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씨앗을 드디어 밭에 심은 기분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이후, 이력서에 ‘영문과 졸업’이라..

책이야기 2022.02.26

늙어가는 독자들

[늙어가는 대한민국 출판시장] 늙어가는 독자들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책 생태계 연구자) 2021. 6. 우리 사회의 고령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20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5.7%로 ‘고령사회’인 한국은 4년 뒤인 2025년이 되면 그 비율이 20.3%로 상승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 보도자료, 2020.9.28. ) 국제연합(UN)의 기준에 따른 이 비율의 증가 속도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들을 압도한다. 장기 전망에서는 최고의 고령 국가인 일본까지 앞지를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저출산 문제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교육부의 대학 정원 감축과 대학 구조조정 계획 발표도 대학사회의 지각 변동..

책이야기 2022.02.20

[구매와 열독 사이, 책을 대하는 사람들의 심리 탐구] 공유시대, 책과 독서의 무한 변주

[구매와 열독 사이, 책을 대하는 사람들의 심리 탐구] 공유시대, 책과 독서의 무한 변주 류지희(작가) 2021. 11. 현대인들은 일 년에 책을 몇 권 정도 읽을까?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오늘날처럼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각종 미디어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책이란 독자들로 하여금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지난해 2020년 상반기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한 해 평균 성인의 연간 종이책 독서율은 52.1%로 약 6.1권의 독서량으로 집계되었다. 겨우 절반이 넘는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2년 전 데이터에 비해 더욱이 7.8% 정도가 줄어든 수치이다. 더구나 해가 거듭될수록 종이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이제는 눈에 보이는 사실이 되어버린 듯하다. 국민들의 평..

책이야기 2022.02.20

최재봉의 탐문 _10 복수 -- 복수는 문학의 힘

복수는 문학의 힘 최재봉의 탐문 _10 복수 “분노란 누군가 우리의 인격 혹은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의 인격을 근거 없이 경멸했을 때 가지게 되는 복수의 욕망”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에서 썼다. 분노와 복수심은 아마도 사랑보다 강력한 유일한 정념이 아닐까. 세계 문학의 거장들이 다투어 분노와 복수를 다룬 까닭은 그 때문일 것이다. “파트로클로스여! 내 이제 그대를 따라 지하로 갈 것이오./ 하나 기상이 늠름한 그대를 죽인 헥토르의 무구들과 머리를/ 이리 가져오기 전에는 내 그대의 장례를 치르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그대를 화장할 장작더미 앞에서 트로이아인들의 빼어난 자제/ 열두 명의 목을 벨 것이오. 그대의 죽음이 나를 노엽게 한 때문이오.” 서양 문학사의 조종(祖宗)이라 일컬어지는 호메로스 서사시 의 ..

책이야기 2022.02.15

최재봉의 탐문 _09 술 초월 혹은 도피

초월 혹은 도피 최재봉의 탐문 _09 술 들으니 청주는 성인에 비유되고 탁주는 현인에 비유된다 말했겠다 성인과 현인을 나 이미 마셨으니 구태여 신선을 구할 필요 있으리오 술 석 잔을 마시니 대도에 통하고 한 말 술 마시니 자연과 합하도다 시인이자 영문학자인 수주 변영로(1897~1961)가 1953년에 낸 회고록 에서 제목에 쓰인 ‘명정’(酩酊)은 몸을 가눌 수 없도록 크게 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제목처럼 무려 대여섯 살 무렵에(!) 시작해 평생을 이어 온 음주 역사와 그에 얽힌 일화를 재미나게 엮어 놓아 큰 인기를 끌었다. 김병익이 에서 소개한 ‘백주나체승우(乘牛)’ 사건이 대표적이다. 공초 오상순과 횡보 염상섭, 성재 이관구(언론인)와 수주까지 네 사람이 어느 날 대낮에 명륜동 산자락에서 펼쳐진 술자..

책이야기 2022.02.14

소셜 살롱에서 글쓰기

소셜 살롱에서 글쓰기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지난 연말부터 ‘소셜 살롱’ 모임에 나가고 있다. 살롱이라 하면 17~18세기 프랑스의 예술가와 지성인들이 지적인 대화를 나누던 사교 모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소셜 살롱이라니, 요즘 이런 게 핫하다고 말로만 들었지 이전에는 체험해보지 못한 형태의 모임이었다. 소셜 살롱에는 독서·영화 모임부터 쿠킹, 베이킹, 요가, 도자기, 자수 등의 원데이 클래스가 결합된 형태까지 다양한 테마의 모임이 있다. 이러한 모임은 일방적인 강습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데 방점이 있다. 내가 참여하는 모임은 글쓰기 워크숍이 결합된 형태인데, 선정한 영화를 보고 그와 관련된 소재를 글감으로 짧은 픽션을 쓰고 모인다. 3주 정도 간격을 두고 모이면 근황 토크도 하고..

책이야기 2022.02.14

최재봉의 탐문 _08 편집자 --퍼킨스라는 환상, 리시라는 악몽

퍼킨스라는 환상, 리시라는 악몽 최재봉의 탐문 _08 편집자 작가가 탈고한 원고가 책으로 완성되어 나오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편집자라 할 수 있다. 아니, 편집자의 역량은 때로 작가가 원고를 쓰기 전부터 발휘되기도 한다. 편집자는 작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작가를 부추겨 원고를 쓰게 만들기도 한다. 미국 작가 제임스 미치너의 은 소설을 둘러싼 문학·출판계의 인물들과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에 관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메타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본질에 관한 논의보다는 소설을 둘러싼 제도와 환경에 초점을 맞추는 문학사회학적 접근법을 취한다. 이 작품은 모두 4개 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은 소설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2장은 편집자를 중심으로 전..

책이야기 2022.02.11

오두막에서 만든 책

오두막에서 만든 책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책 만들기에 관한 예전의 경험담을 가끔 꺼내면 사람들은 꽤 재미있게 또는 신기하게 듣기는 하지만, 이제는 사라진 한때의 이야기로 소비하고 곧 잊어버린다. 회고담 또는 ‘라떼는…’ 따위의 이야기로 들릴까봐 늘 조심스럽지만 아무렴 어떠랴. 시대가 변하고 사물이 바뀌면 그것에 얽힌 경험과 말들도 희미해지는 법. 역사가 마르크 블로크는 “사물이 바뀌는 만큼 어휘가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어서, 이제는 의미가 달라진 어휘가 과거를 오늘의 잣대로 잘못 이해하게끔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에 따르면 사라진 것은 단어가 아니라 그것에 결부된 경험과 기억이겠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게라’ 같은 용어가 그러하다. 오래전 활판인쇄로 책을 만들던 시대에는 인쇄 직전에 시험..

책이야기 2022.02.10

최재봉의 탐문 _07 독자 -후원자인가 하면 독재자인, 독자

후원자인가 하면 독재자인, 독자 최재봉의 탐문 _07 독자 글은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하지만 독자에게 읽힘으로써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 점에서 작가와 독자는 상보적인 관계에 놓인다. 모든 작가는 독자에서 출발한다. 글을 쓰기 전에 읽는 일이 먼저다. 읽는 일이 쌓이고 쌓인 끝에 쓰는 일로 몸을 바꾼다. 독자로 출발해 작가가 된 뒤에도 독자로서의 정체성은 언제까지고 그를 따라다닌다. 모든 작가는 곧 독자이기도 하다. “시를 썼으면/ 그걸 그냥 땅에 묻어두거나/ 하늘에 묻어둘 일이거늘/ 부랴부랴 발표라고 하고 있으니/ 불쌍하도다 나여/ 숨어도 가난한 옷자락 보이도다” 정현종의 시집 (1978) 맨 앞에 실린 작품 ‘불쌍하도다’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는 시를 쓰는 행위와 남들에게 읽히는 행위 사이에 위계가 분명..

책이야기 2022.02.09

책읽는 노동자

책읽는 노동자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농민공은 중국에서 이주 노동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농민의 자유로운 이주를 허용하지 않는 중국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나 공업 지대를 떠돌며 비합법적으로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수는 대략 2억9천만명쯤 된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사실상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2021년의 한 조사는 이들 중 7천만명이 이미 자기 고향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왔다고 추산했다. 이런 묘사는 다소 시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한 농민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더우반에 글을 하나 올렸다. 그는 수년간 철학과 영어를 독학해왔으며, 4개월 걸려 이라는 영문 책의 번역을 마쳤다고 하면서 출판 가능성을 알고 싶어 했다. 이때까지 더우반의 ‘하이데..

책이야기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