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믿어 준 김장하 선생…기부보다 어려운 용기
김은형기자
수정 2025-04-10 15:13 등록 2025-04-10 11:51
탄핵 심판 때 인용 판결문을 읽은 문형배 헌법재판관이 주목받으며 그가 등장했던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가 재개봉하는 등 김장하 선생에 대한 관심까지 다시 불 지펴지고 있다. 김장하 선생은 문형배 재판관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지원했다. 2019년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기를 질색하는 김장하 선생을 위해 지인들이 몰래 준비한 서프라이즈 생일파티에 찾아온 문형배 판사는 고마움을 전하다 목이 메었다.
2022년 말 지역방송(엠비시경남)에서 방영한 작품이 SNS에서 잔잔하게 입소문을 타면서 빨리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다큐를 보면 김장하 선생한테 도움을 받은 사람들과 지원을 받은 단체는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깊게 남은 건 진주신문 후원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원과 도움과 선의의 문제를 벗어난 믿음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창간 때 진주신문의 시민 주주이자 이사로 참여했던 김장하 선생은 10년 동안 매달 천만원씩 신문에 지원하며 적자 해소에 힘을 보탰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김장하 선생은 이 신문이 좀 더 강하게 사회의 불의와 싸우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한번도 지원금을 끊거나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그런 마음을 신문 쪽에 전하지 않았다. 부담을 주거나 압력으로 느껴지는 걸 원치 않았을 터이다. 그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타인을 믿는다는 건 때로 수백억 원 자산을 일구는 일이나 그걸 또 남을 위해 쓰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나는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문제라고?
나 역시 ‘기자같지 않게’ 취재원의 아무말 대잔치를 쉽게 믿어온 이력이 상당히 길어 굳이 따지면 사람을 쉽게 믿는 편에 속한다.
그런데 따져보면 내가 의심하거나 거부감 없이 믿은 사람들이나 이야기들은 대체로 나에게 호의적이거나 적어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의심이라는 건 대체로 마음이 긁히는 순간 일어나게 마련이다.
권력자들 주변에 하나같이 아첨꾼들만 들끓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닌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싫은 이야기하는 사람을 곁에 둔 권력자들은 거의 없다. 윤석열이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된 데는 분명 ‘우리 편’이라는 진보의 얼토당토않은 믿음이 일부 바탕이 됐고 윤석열이 수직낙하를 하게 된 데는 ‘잘한다 잘한다’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계엄이라는 황당무계 월드로 그를 안내한 이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진주신문과 김장하 선생의 속 깊은 관계는 잘 모르지만 김장하 선생은 성에 차지 않고 아쉬움이 더 큰 이 신문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 믿음은 저절로 생기는 믿음이 아니라 내 안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믿음이다.
믿을 만해서 믿는 믿음이 아니라 허약하고 불안정하며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이나 조직이 든든하게 자라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믿음이다.
반항심 많은 사춘기 아이를 키우며 내적으로 가장 부딪히는 단어가 ‘믿음’이기도 하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는 경구가 있지만 자식을 믿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른이 보기에는 뽑기도 이런 꽝이 없을 만큼 이상한 선택들을 골라서 하는 아이를 믿음을 가지고 지켜보느니 투잡, 쓰리잡으로 몸을 갈아서 학원비를 버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경구에 따라 “너를 믿는다”고 말해봤자
아이는 엄마의 발연기를 금방 알아차려 말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
나에게 유리하다거나 호의적이라는 안전판 없이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내 우주를 건 진심과 결단의 문제다.
김장하 선생은 ‘싹수’를 본 게 아니라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학생들과 단체들을 지원했을 것이다.
그중에는 사회적 기준으로 이른바 실패자들도 있고 아쉬운 결과도 있겠지만 문형배 재판관 같은 인물들도 탄생했다.
“아무도 칭찬하지도 말고 나무라지도 말고 그대로 봐주기만 하라고 말하고 싶다.”
김장하 선생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한 말은 아마도 그가 내린 믿음의 정의일 것이다.
또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직장 부하를 바라보는 상사나 누군가를 내려봐야 하는 위치에 있는 누구에게나 당부하는 이야기일 터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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