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차를 모는 시인, 하루 두번 출근합니다

노란 차를 모는 시인, 하루 두번 출근합니다 [.txt]

일하는 사람의 초상 l 학원 통원차량 지입 기사 이영박씨

 

분 단위의 차량 운행표, 아이들 수송하는 하루

10년 동안 무사고…“목숨 걸고 지키는 안전”

아이들에게 ‘세상 바라보는 창문’이란 사명감

노동의 뿌리에서 피어나는 시어로 시를 써

 

수정 2025-04-06 09:10등록 2025-04-06 08:00

 

 

운행을 앞두고 자신의 통원차량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은 이영박씨. 염기원 제공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도시 중심가는 대개 비슷하게 생겼다. 송도 새도시 역시 익숙한 이름의 카페와 식당, 편의점이 눈 닿는 곳마다 있었다. 구도심과 새도시 역세권 풍경이 구별되는 지점은 수많은 빌딩마다 여러개씩 들어선 병원과 학원이다. 건물 주위를 둘러싼 노란색 차량을 밤늦게까지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렇다. 바로 학원 통원차량이다.

 

송도에서 이영박씨를 만난 날은 춘분, 학원가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학원 하나에도 여러 종류의 일자리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학원장과 강사가 있다. 규모에 따라 관리실장, 행정 직원, 상담 선생님을 두기도 한다. 큰 학원에는 아이티(IT), 마케팅 담당자도 있다. 주거지인 인천에서 10년이 넘도록 학원 차량을 운행하는 그의 직업은 통원차량 지입 기사다.

 

“여러 직장을 다녔지만 가장 좋았던 건 학원 강사였어요. 국어 가르쳤지. 그런데 이 일은 특히, 특히 더 좋아. 솔직한 얘기로, 이걸 하면서 ‘하기 싫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최고의 직업이지.”

 

자신의 직업이 최고라고 눈앞에서 말하는 이는 처음 보았다.

 

일터에서 그는 기사님, 아저씨, 선생님, 다양한 호칭으로 불린다.

친한 초등학생 중에는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장난을 거는 아이도 있다며 새맑게 웃는 그는 62년생이다. 나 때는 ‘봉고차 아저씨’라고 불렀던 것 같다. 당시 봉고차들은 그레이스 아니면 이스타나였다. 지금은 스타렉스와 카니발 계열이 주류다. 그의 차량 역시 더 뉴 그랜드 스타렉스다. 노랗게 색칠한 차량의 보닛과 측면, 후면에 학원 이름이 새겨진 필름을 붙였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학원 통원차량 지입 기사가 되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통학차량 브로커의 횡포’를 다룬 3년 전 뉴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랑 버스’의 70~90%는 기사가 차주인 지입 차량인데, 공급자인 그들과 수요자인 학원을 연결하는 중개업체가 기사로부터 소개비 100만원을 받거나, 매달 일정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한 얘기를 하며 일을 시작한 계기를 물었다.

 

“원래 이쪽 일 하던 사람이, 나한테 이런 게 있다고 그래 갖고. 언제부터 했나? 지금 한 10년 됐지요.”

 

그동안 상황이 변한 건지, 이 지역의 특수성인지는 몰라도, 이씨는 자신처럼 지인 소개로 일을 구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공고를 올리기도 하지만 기사들을 통하는 게 가장 빠르고 쉽다. 경기 불황에 저출산으로 문 닫는 학원이 많으니 기사들의 공급은 과잉 상태고 진입 장벽도 낮다.

이런 2차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처우가 어떨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의 일과는 집에서 나와 차량 도우미 선생님을 태우면서 시작된다.

평일 오후 2시부터 자정까지,

수학 전문학원에 다니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집부터 학원까지 왕복 수송하는 게 그의 일이다.

단순한 것 같아도 복잡하다.

분 단위로 계획된 운행시간표를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요일마다 다른데 시험 때면 아예 전체 일정이 바뀐다.

저녁 시간은 따로 없다.

운행 중간에 시간이 나면 식당에 가고 바쁠 때는 대충 때운다.

 

“월급으로다가 평균적으로 하면, ○○○만원 정도. 근데 내가 일을 많이 하니까 많이 받는 편이죠. 일을 좀 이렇게 처리를 좀 많이 해주니까. 학원에 무슨 일이 있으면 도움을 주고, 운행에 차질이 있다고 그러면 바로 해결해 주고.”

 

박봉일 것이라 예상하고 조심스럽게 급여 수준을 묻자 그는 곧바로 숫자로 답했다.

내가 알아봤던 평균과는 앞자리부터 달랐다.

모든 게 비싼 새도시의 학원비 역시 그럴 것이다.

학원비가 비싼 만큼 기사의 급여 수준도 그에 비례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직장인들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

지입 기사인지라 나가는 돈이 많다는 것. 유류비며 보험료에 각종 유지 보수 비용이 상당하다.

 

다른 직업과 달리 조직이 주는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지만, 그래도 매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학원 관계자, 학부모, 아이들 때문에 힘든 건 없는지 묻자 “별것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배달 노동자에게 쓰레기를 버려달라고 요구하고, 담배 심부름까지 시키는 갑질 사례를 얘기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학부모가 운행 중에 연락해서 애가 학원에 가방을 두고 왔으니 지금 가져다 달라고 하는 정도는 참을 수 있다”면서.

 

“외곽에 있는 동네에서 일할 때는 인정이 있었어요. 명절 되면은 박카스라도 챙겨주고, 정이 오고 가는 이런 게 있거든. 근데 여기는 좀 달라요. 상품권을 주거나 카톡 선물하기로 보내. 아니, 그것도 감사하죠. 당연히. 문제는 우리 아이는 보통 애가 아니니까 특별 취급해 달라고 할 때. 난 그런 거는 싫거든요. 특권층이 가지는 그런 고유한 형태의 그런 갑질이 여기는 있어요.”

 

왼쪽으로 갑작스럽게 차선 변경을 한 것 같은 내용이 길게 이어졌다.

녹취록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니 인터뷰 초입에서 그가 했던 말과 맥락이 닿아 있었다.

자신의 직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묻자 그는 “당연히 안전”이라며 “목숨 걸고 지킬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는 10년 동안 아이들을 태우면서 사고를 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면서,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들과 매일 보는 어른은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걸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역할이 되기도 한다고 그는 말했다. 아이들이 무사히 집과 학원을 오가게 하는 건 당연한 책임이고, 자신의 말과 행동, 태도가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게 그의 직업윤리다.

사랑을 배워야 할 아이들이 차별을 먼저 배우고, 선민의식이라든가 우월주의에 빠져들고, 약육강식에 매몰되어 왜곡된 가치관을 가질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이게 일하며 힘든 점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실 대답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는 통원차량 기사보다 오래된 직업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시인인 그는 ‘운행 일지’라는 제목으로 연작시를 쓰고 있다.

학원 차량을 운행하면서 아이들에게서 얻은 영감이 시의 원천이다.

요즘에는 소설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의 순수는 그가 시를 놓을 수 없게 한다.

 

“시를 많이 쓰게 되죠.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 자체가 워낙 소중하고 사랑스러우니까. 나는 아이들을 통해서 진짜 많이 배우는 거지. 거의 내 어떤 그 일종의, 철학의 행보죠. 나는 애들 자체가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자정이 되어 일과를 마치면 학원 차량을 몰고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집으로 퇴근한다.

종일 어린 스승들을 태우고 다니던 차를 홀로 운전하는 그 시간,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차를 운전하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노동이 아닌, 혼자만을 위한 시간이니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즐기며 기분 전환할 것 같아서 질문한 것이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두번째 출근을 위한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무슨 의미일까.

 

퇴근하는 것이 그에게는 곧 두번째 출근이란다.

10시간 동안 기사님, 아저씨, 선생님으로 보낸 하루를 퇴고하며 곱씹고, 어제 쓴 글을 반성하며 밤길을 달린다.

집에 들어온 이후로는 작가로 출근해 새벽 네다섯시, 늦으면 여섯시까지 글을 쓰다 잠든다.

해가 중천에 떠 일어나면 다시 통원차량 기사로 출근한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두번의 출근을 반복하는 게 그의 삶이다.

 

“주말에는 쉬지. 여행을 가요. 취재 겸 문학 기행이랄까. 뭐 태안도 가고, 홍천도 가고. 여기 영종에도 가고. 강화도도 가고 그래요.”

 

주말은 오롯이 쉬며 글감을 찾는다.

젊었을 때는 노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재미가 없어졌다.

평일 자유 시간이 부족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일 자체를 좋아하기에 괜찮다고 답했다.

무엇보다도 애들이 좋으니 직업 만족도가 높다면서. 요즘은 운동을 못 해 배가 나오긴 했지만, 지금껏 건강 문제로 일을 쉰 적은 단 하루도 없단다.

 

인터뷰 말미에는 그의 또 다른 직업인 시인의 삶에 관해 주로 얘기했다.

통원차량 기사이자 시인인 그에게 노동과 예술은 분리되지 않는다.

그는 박노해, 김수영, 김지하를 좋아한다. 전태일 열사의 이름도 나왔다.

글로 쓰지는 않았어도 온몸으로 시를 쓴 사람이라고 전태일을 평했다.

 

“노동 자체가 내 삶의 성취를 이루는 길이죠. 시를 쓰는 데에 있어서, 예술적인 완성도를 기하는 데에 있어서, 나는 노동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을 해요. 시작(詩作) 자체도 이게 노동으로 되어야 하는 거지.”

 

그는 땅 위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글을 쓴다.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지만 노동을 통해 피땀으로 시를 쓰는 것이 가장 정직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단다. 두 가지 직업을 통해 그가 이루려고 하는 것은 동일하다. 노동이 신성한 가치를 회복해야 하고, 생업의 현장에 있는 비민주적인 구조를 극복하는 것이 노동 환경 개선의 시작이라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그는 나를 노란색 차에 태워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자율주행차가 그의 자리를 뺏고, 차량 도우미 역할을 로봇이 대체하는 순간이 특이점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소설가 염기원

 

염기원 l ‘문학의봄’으로 등단해 장편소설 ‘구디 얀다르크’ ‘인생 마치 비트코인’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여고생 챔프 아서왕’ ‘블루아이’를 썼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