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106

[김용석의 언어탐방] 다이어트: 균형잡힌 삶의 지혜는 간데없고

[김용석의 언어탐방] 다이어트: 균형잡힌 삶의 지혜는 간데없고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 철학자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는 명언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한 몸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이러한 노력을 대변하는 말이 다이어트(diet)다. 현대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상용어 가운데 그 빈도가 최상위를 차지하는 말이다. 국어사전은 우리말로 순화해서 ‘식이요법’으로 쓸 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우리 일상 현실에서 다이어트는 건강한 식이요법과는 거리가 멀다. ‘살 빼기’라는 좁은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는 고대로부터 행해졌는데, 그때는 식이요법보다 더 넓은 의미로 쓰였다. 다이어트는 그리스어 디아이타(diaita)에서 유래한다. 디아이타는 체중 감량을 위한 음식 조절이..

연재칼럼 2022.09.18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세기말의 귀환?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세기말의 귀환?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요즘 들어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흔히 쓰인다. (구)냉전의 주요 참전국인 미국·중국·러시아가 다시 벌이는 패권 싸움이기에 ‘냉전의 귀환’과 같은 방식으로 개념화하기 쉬워서일 것이다. 한데 사실 ‘신냉전’이라는 말은 어폐가 심하다. 과거 냉전은 어디까지나 러시아혁명(1917년)과 중국혁명(1949년)의 연속이었다. 즉, 미국/서방의 반대쪽에 섰던 국가들은 고전적 자본주의와 다른 ‘대안적 근대’를 명분 차원에서나마 추구했다. 게다가 그들은 구미권 중심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나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자급자족을 추구했다. 한데 오늘날의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대외무역이 차지하는 비율(37%)이 미..

연재칼럼 2022.08.26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하퀴벌레, 하퀴벌레…바퀴벌레만도 못한 혐오를 곱씹으며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그렇다. 말은 깨진 거울이다. 사회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비추면서도, 깨진 틈 사이로 세계를 구기고 찢어버린다. 특히, 혐오표현은 한 사회의 균열상과 적대감의 깊이를 드러낸다. 흔한 방식이 ‘급식충, 맘충, 틀딱충’처럼 사람을 벌레 취급하는 것. 대상을 규정짓는 말이 만들어진다고 그걸로 끝이 아니다. 물에 잉크가 퍼져나가듯, 상상은 그 말을 씨앗 삼아 번져나간다. 하청노동자를 ‘하퀴벌레’(하청+바퀴벌레)로 부르자마자, 그 말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와 감정이 불뚝거리고, 대하는 방식도 정해진다. 사람을 벌레로 부른 이상, ‘벌레 대하듯’ 하면 된다. 불결하고 불순하고 해로운 존재이므로 하나하나 박멸하거나, ..

연재칼럼 2022.08.15

‘헤어질 결심’, 군 위안부, 김건희님의 다운로드

‘헤어질 결심’, 군 위안부, 김건희님의 다운로드 입력 : 2022.08.10 03:00 수정 : 2022.08.10. 03:03 정희진 여성학자 나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해외 연출작 외에는 모두 보았다. (2002)과 을 가장 좋아한다. 은 보기 힘들어서 두 번 보지 못했지만 꿈에 나타났으므로 ‘여러 번 봤다’고 할 수 있다. 그의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은 세 번 보았다. 주·조연은 말할 것도 없고 독립영화 시리즈의 스타 정하담 배우까지 멋진 배우들의 기막힌 연기, 언어의 차이가 작품의 깊이로 전환되는 각본과 연출, 이야기 구조…. 이 영화의 매력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작품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날을 꿈꾸지만, 불가능한 일임을 안다. 정치적이지 않은 텍스트는 ..

연재칼럼 2022.08.13

[김용석의 언어탐방] 포퓰리즘: 포풀루스 그리고 포퓰러리즘

[김용석의 언어탐방] 포퓰리즘: 포풀루스 그리고 포퓰러리즘 김용석 | 철학자 “포퓰리즘은 21세기에 유행하는 주요 정치 용어 가운데 하나다.” 정치학자 카스 무데는 저서 을 이렇게 시작한다. 하지만 이어서 용어의 문제점을 바로 지적한다. “이 용어는, 다수의 저널리스트에게나 독자에게나 크게 호소하기는 해도, 워낙 폭넓게 쓰이다 보니 혼란과 불만을 낳고 있다.” 포퓰리즘은 2017년에 케임브리지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지만, 우리 시대에 가장 넓게 사용되면서도 가장 오해받는 정치 개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학술적으로 그 사용을 거부하자는 제안이 있을 정도다. 그 말을 정의하고자 하는 정치학자들을 심리적 좌절에 이르게까지 했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도 무데는 이 용어를 간단히 폐기할 수는 없다..

연재칼럼 2022.08.05

[김용석의 언어탐방] 코즈모폴리터니즘: 함께 살아가는 삶의 원리

[김용석의 언어탐방] 코즈모폴리터니즘: 함께 살아가는 삶의 원리 ‘나’ 안에는 다양한 ‘우리’가 들어가 있다. 가문이라는 우리, 계층이라는 우리, 인종이라는 우리, 성별이라는 우리, 종교라는 우리, 정파, 지역, 국가라는 우리 등이 그것이다. 내가 타자를 대하는 순간 내 안에 체화되어 있는 어떤 우리가 작동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시민”이라고 대답한 디오게네스는 역설적으로 탈집단화의 정신을 설파한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말한 것이다. 김용석 | 철학자 새 대통령 취임사에 ‘세계시민’이라는 말이 여러번 등장했다. 귀가 솔깃했다.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인류사에서 공동체적 삶과 연관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져왔던 단어이기 때문이리라. 더구나 ..

연재칼럼 2022.06.17

메타 한밤중에 하늘 바라보기

메타 한밤중에 하늘 바라보기 오늘날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디지털 패러다임은 오히려 인류가 ‘다른’ 과학 기술을 창의적으로 개발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걸림돌일 수 있다. 우리가 인간 능력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면, 새로운 길을 항상 모색하고 있어야 한다. 디지털 문명의 발달이 몇십년 후에 특이점에 이를지 임계점에 이를지 지금 우리는 잘 모른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 철학자 ‘메타’라는 말의 사용 빈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다. 메타(meta)는 고대 헬라스어에서 유래해 많은 서구어에 퍼진 접두사다. 통상 다른 말 앞에 붙여서 신조어를 만드는 데 활용한다. 메타데이터, 메타메모리처럼 서구어끼리의 조합도 있지만, 메타언어, 메타비평 등 이종 혼성어들도 많다. 디지털 문명이 대세가 되면서 생겨나..

연재칼럼 2022.06.06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다시, 광장이 찾아온다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다시, 광장이 찾아온다 서울 세종로사거리 쪽에서 바라본 광화문광장의 풍경. 임형남 그림 노은주·임형남 | 가온건축 공동대표 지금 한창 공사 중인 광화문광장이 오는 7월에 다시 열린다. 광장을 중심으로 양쪽에 있던 차로를 동쪽으로 몰고,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넓히는 계획이 논란 끝에 몇년 전 확정되었다. 면적을 늘리고 녹지를 확장하며, 섬처럼 고립되었던 광장에 보행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계획의 핵심이다. 사람마다 각기 광화문 앞길에 대한 기억이 있겠지만, 나의 기억은 지금은 사라진 시민회관으로부터 시작된다. 차들이 씽씽 달리는 길가에 시민회관이 있었고 중앙에는 열을 지어 서 있던 은행나무가 도로의 중앙 분리대 구실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곳에 모인다거나 ..

연재칼럼 2022.05.05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점 선 면이 만나는 다차원의 세계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점 선 면이 만나는 다차원의 세계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임형남 그림 노은주·임형남 | 가온건축 공동대표 우리는 여행을 할 때 이런저런 정보나 볼거리, 살거리를 미리 알아보는 통상적인 여행 준비를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머물 장소를 한 군데 정하고 그 근처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뱅뱅 돌다 온다. 그곳이 중요한 장소이건 그냥 동네의 한 귀퉁이이건 상관없다. 그리고 돌아와서 가봤던 장소나 의미를 조사한다. 단순한 습관이지만 일반적인 시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갈 때도 그랬다. 맨해튼이야 무언가를 알아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널리 알려진 대단한 곳이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웃자란 잡초 밭에 들어선 것 같았다...

연재칼럼 2022.02.21

[김용석의 언어탐방] 픽션: 전략적 기만 혹은 속임수

[김용석의 언어탐방] 픽션: 전략적 기만 혹은 속임수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김용석 | 철학자 “예술은 사기다.”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현대예술사에 자리매김한 백남준이 1984년 발표 이후 귀국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그는 “예술가는 사기꾼 중의 사기꾼, 즉 고등 사기꾼이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겠지만, 그라면 충분히 그런 말을 했을 법하다. 예술이 사기이고 고도의 기만술이라는 발언은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이다. 백남준 이전에도 그런 말을 한 예술가들이 있다. 피카소는 “예술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기만(mentira·멘티라)이다”라고 했다. 그가 사용한 에스파냐어 ‘멘티라’는 ‘속임수’라고 옮길 수도 있다. 이는 예술가들 스스로 한 말이지만, 예술 행위가 ..

연재칼럼 202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