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93

남편 죽이는 법

남편 죽이는 법 입력 : 2022.05.20 20:49 수정 : 2022.05.20 20:52 안호기 논설위원 “… 결혼이란 건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 잔인한 구속이에요.”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닌가요?” “사랑이오? 글쎄요. 그건 착각이었어요. 사랑이라고 믿었던 거죠.” 서미애 작가의 소설 에서 남편을 죽였다고 자백한 주인공이 형사와 나눈 대화이다. 매순간 남편을 죽이는 상상을 하는 아내는 한 달간 매일 가계부에 남편을 죽일 방법을 한 가지씩 적어놓는다. 미국에서 이라는 소설 내용이 현실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이 소설을 쓴 낸시 크램튼 브로피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19일 전했다. 브로피의 남편은 4년 전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요리학원에서 두 차례 총격을 받고 숨진 채 발견됐다. 검..

책이야기 2022.05.24

자유의 조건

자유의 조건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영국인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여기지만, 이는 심한 착각이다. 그들은 단지 선거일에만 자유로울 뿐이며, 다음날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 18세기 사상가 루소의 이 말은 선거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인용구일 것이다. 당사자인 영국인들은 이게 좀 재밌다고 느끼는지 지금도 선거일이면 이 인용구를 신문 1면에 크게 싣고는 한다. 이런 말을 붙여서. “자유로운 날이니 오늘 신문은 공짜(free)입니다!” 루소의 말은 (1762)의 ‘대의제’라는 장에 나오는 것으로, 시민들이 주권을 대표자에게 양도하는 한 자유롭게 사는 건 꿈같은 일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기억할 한 가지 사실은 루소가 프랑스 사람이 아니고, 시민들의 자치도시인 제네바 출신으로서 고향에 무한한 자..

책이야기 2022.05.13

어른의 공부

어른의 공부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작년과 재작년, 대안연구공동체에서는 몇몇 대학과 대학원의 강의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갈 곳을 찾지 못한 학자들의 온라인 강의였습니다. 특히 한 학자는 서울대 대학원과 고려대 대학원, 성균관대 대학원 등의 강의를 공동체에서 진행했습니다. 이 학자는 칠판이나 화이트보드에 글씨를 쓰면서 강의를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서울대, 고려대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판서를 하면서 실시간 온라인 강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학의 무신경과 안이함 탓으로 적어도 온라인 강의 시스템에서는 작고 가난한 인문학 공동체가 국내 최고의 대학을 앞섰던 겁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며 토론을 포함한 어떤 형태의 수업도 할 수 있었으니까요. 강의..

책이야기 2022.05.13

소설가보다 똑똑한 소설

소설가보다 똑똑한 소설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번역은 기존 텍스트를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 그 텍스트 또는 저자와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나로서는 저자에게 질질 끌려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저자의 텍스트를 장악하고 싶지도 않다. 어느 한쪽의 색으로 상대를 칠해버리려 하기보다는 서로 색깔을 유지하면서 두 색깔이 만나며 서로 번져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낼 여지를 주는 게 매력 있다. 박서련 단편의 표현을 빌리면, “몸을 전혀 맞대지 않고도 두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사이즈”(‘A Queen Sized Hole’)를 찾는 게 중요하다. 창작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나는 비슷한 맥락에서 작가와 작중 인물의 관계를 눈여겨보는 쪽이다. 가령 소설 속 인..

책이야기 2022.05.13

인생이 아름답다? 인간 주제에

인생이 아름답다? 인간 주제에 인아영 문학평론가 얼마 전 번역자 친구와 어떤 시를 같이 읽었다. 내가 말했다. 이 시에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은 게 의심스럽지 않아? 뭔가가 진짜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남발하지는 못할 것 같아. 성실한 시인이라면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대신 다른 표현을 찾았겠지. 친구는 골똘히 생각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아니라고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어떤 소설을 옮기는데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거슬릴 만큼 많이 쓰이는데 그건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휘감겨 고민을 너무 많이 한 흔적이고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정말 소설이 아름답게 되었더라는 것이다. ‘훌륭한 문학은 아름답다고 쓰는 대신 아름다움을 보여줘야 한다’ 운운하는 논리는 고지식한 비평가들의 ..

책이야기 2022.05.07

내 마음을 흔든 정재승 박사의 '유일한 사치'

내 마음을 흔든 정재승 박사의 '유일한 사치' 갱년기의 헛헛함을 버티게 해주는 힘은 모두 다르겠지요 22.04.09 11:11l최종 업데이트 22.04.09 11:11l은주연(elesslove) "이거 둘 중에 골라봐!" "......" 득의양양이라는 말은 이럴 때를 위하여 만들어졌나? 싶은 순간이었다. 흡사 골동품과도 같은 자물쇠, 그것도 버튼이나 다이얼의 형태가 아닌 열쇠로 여는 단단한 자물쇠였다. 그 자물쇠를 딸의 눈앞에 자신 있게 내어놓는 남편을 차마 이해할 수 없는 눈길로 쳐다보았다. 대체... 왜 그러는 건데? 첫째 아이와 학교 복도에 있는 사물함이 걱정된다는 이야기, 아무래도 자물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참이었다. 중학교 때 쓰던 자물쇠가 있으려나, 하고 말하던 찰나 남편이 ..

책이야기 2022.05.05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막내 방송작가로 산다는 것 (하) / 최유정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막내 방송작가로 산다는 것 (하) / 최유정 최유정 | 방송작가 방송국 하면 떠오르는 곳들이 있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다 저기로 출근하는구나. 그럼 저 안에 ○○방송팀도 있고, △△방송팀도 있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곳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1년 넘도록 당연하게 명찰을 걸고 스튜디오가 있는 ‘진짜’ 방송국으로 출근했다.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방송을 찾다 공중파에서 방송하는 간판급 휴먼다큐 프로그램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꿈꿔왔던 방송이기에 그대로 직진했다. 며칠 후 방송국 근처 한 건물 안, ××프로덕션이라는 곳에서 면접을 보았다. 매일 아침 9시까지 그곳으로 출근하면 되고, 그 다큐는 총 4개의 외주제작사..

책이야기 2022.05.05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막내 방송작가로 산다는 것 (상) / 최유정

[11회 비정규 노동 수기 공모전] 막내 방송작가로 산다는 것 (상) / 최유정 최유정│방송작가 언니, 저예요. 벌써 햇수로 2년 차인데 쓸 수 있는 경력은 3개월인 걔 있잖아요. 작가 하기 전에 5성급 호텔에 있었죠. 3교대와 박봉의 삶에서 이렇게 살 바엔 더 사랑하는 일을 하자며 제 발로 박차고 나왔어요. 그리고 내달린 곳은 어린 시절부터 ‘쓰는 사람’이 꿈이자 독실한 믿음을 가졌던 제게, 대단히 사랑스럽게 보였던 종교방송 막내 작가 자리였어요. 2020년 초, 한달에 100만원 안 되게 받으면서 5개 프로그램을 했어요. 많을 땐 7개. 생각했던 방송작가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방송을 위해 필요한 일은 모두 방송의 일부라는 말에 동의했기에 어떤 일이든 다 했어요. 촬영장 오시는 분들이 마실 컵을 설거지하..

책이야기 2022.05.05

천명관, 소설가서 ‘뜨거운 피’ 영화감독으로 데뷔

천명관, 소설가서 ‘뜨거운 피’ 영화감독으로 데뷔 고희진 기자 천명관(58)이 영화 의 감독으로 돌아왔다. 그는 얼마 전까지 소설가로 불렸다. 2004년 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당시 문학계에선 그를 ‘천재’ 혹은 ‘이단아’로 불렀다. 최근작은 2016년 발표한 다. 약 15년 소설가 생활 뒤, 환갑이 가까워진 나이에 뒤늦게 영화감독에 데뷔한 속내는 무엇일까. 지난 17일 화상 인터뷰로 그를 만나봤다. 영화 로 데뷔한 천명관 감독. (주)키다리스튜디오 사실 천 감독의 꿈은 오래전부터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보험 외판원 등을 하다가 서른 즈음에 충무로에 발을 내디뎠다. 연출부 하려고 하니까 당시 조감독들이 나보다 어려서 잘 안 써줬다. 결국 영화사에서 집기나 주차 관리하는 소위 ‘따가리’를 했다. 시나리오도..

책이야기 2022.04.26

최상급 추천의 언어

최상급 추천의 언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책의 뒤표지에는 대개 300자 내외의 추천사가 한두 개씩 수록되어 있다. 유명한 사람이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할 것이다. 추천사의 분량이나 비용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한 줄에 10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고 수백 자를 쓰고서도 10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한 글자에 매겨지는 가격을 감안하면 추천사는 가장 비싼 집필 활동임에 분명하다. 그다지 유명한 작가가 아닌 나에게도 종종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한 달에 두세 건은 꼭 오는 듯하다. 우선은 내가 이 추천사를 쓰기에 적합한 사람인가, 하는 고민이 되지만, 그렇게 판단했으니 연락이 왔겠지 싶다. 원고를 살펴보고 쓰기로 마음을 먹고 나면 그 분량과는 별개로 부담이 찾아온다. 이만큼 쓰기 어려운..

책이야기 2022.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