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사람의 말, 정치인의 말

닭털주 2022. 7. 4. 13:22

사람의 말, 정치인의 말

최준영 책고집 대표

 

 

마음 둘 곳 없는 허망한 시절이다.

와중에 메마른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단비 같은 말이 있어 반가웠다.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 것인가,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세월호 아이들의 이름이 흘러나올 줄을.

고 김용균씨와 고 변희수 하사, 고 박길래님의 이름이 소환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조석봉 역으로 TV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조현철이 했던 수상 소감이 화제다.

수상 소감이 알려진 후 그의 남다른 가족사까지 큰 화제가 되었다.

조현철은 <전태일 평전>의 편저자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고 조영래 변호사의 조카이며,

유신 시절 공해연구소를 만들어 환경운동에 씨를 뿌렸던 조중래 교수의 아들이다.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에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군,

변희수 하사,

그리고 잠시만요, 기억이 안 나네요.

이경택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

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에 있다고 믿어.”

 

모처럼 사람의 말을 들으며 상념이 깊어졌던 걸까.

조영래 변호사 이름 뒤에 어김없이 따라붙는 고 김근태 의장의 말까지 떠올랐다.

고문 후유증으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던 민주주의자 김근태내 친구 조영래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한 시대의 죽음이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김근태는 생의 마지막까지도 정치인의 말 대신 사람의 말을 잊지 않았던 정치인이다.

사람들이 조현철의 수상 소감에 감응한 건 단지 그의 메시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에 더해,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과 상식을 송두리째 헤집고 있는 고위층과 지식인, 부유층의 일탈적이고 일그러진 모습과 대비되는 어떤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고위층과 지식인의 위선적인 행태에 몸서리쳐왔다.

정부는 바뀌었다지만 그러한 행태는 개선될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되레 더 노골적이고, 심지어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탈법과 불법을 일삼는다.

조국 전 장관을 비판하며 정치의 길로 들어섰던 새 대통령의 첫 인사를 보고 있노라면

기함할 정도다.

새 정부 고위층의 인사청문회가 지난 정권에 이어 또다시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력과 지위의 세습에 몰두하는 그들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고,

탈법과 불법을 넘나들면서도 반성이나 사과의 말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정권교체였던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정말이지 못 들어줄 것은 그러한 행태를 옹호하고 나선 정치인들이다.

 

저는 애초 조 전 장관이 대한민국의 초엘리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초엘리트로서 그 초엘리트만의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자식들은 굳이 불법이나 탈법이나 편법이 아니더라도 그 초엘리트들 사이 인간관계 등으로 일반 서민이 갖지 못한 어떤 관계들이 있다.”

최민희 전 의원의 말이다.

 

대한민국에 빈부격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부모의 재력에 따라 교육을 받는 수준에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장관으로서의 결격사유가 될 수는 없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말이다.

 

사람의 말과 정치인의 말 사이에 이토록 높은 장벽이 쌓이고, 이리도 다른 문법을 갖게 된 현실이 가슴 아프다. 사람의 말, 사람냄새 나는 말 하나 소개해 본다.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황풍년)에 나오는 왕대마을 윤순심 할매의 말이다.

 

우리 손지가 공부허고 있으문 내가 말해. 아가,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다 도둑놈 되드라.

맘 공부를 해야 헌다. 인간 공부를 해야 헌다,

그러고 말해.

착실허니 살고 놈 속이지 말고 나 뼈 빠지게 벌어묵어라.

놈의 것 돌라 묵을라고 허지 말고 내 속에 든 것 지킴서 살아라.

사람은 속에 든 것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벱이니

내 마음을 지켜야제 돈 지키느라고 애쓰지 말아라.”

 

 

배우 조현철 수상 소감제58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D.P고위층인사청문회말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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