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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의 카르텔

분서갱유의 카르텔 입력 : 2023.10.18 20:10 수정 : 2023.10.18. 20:11 장지연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2000년대 초반 일이다. 개성공단으로 남북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 방송국에서 개성을 직접 방문해 그 역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했다. 마침 내가 속한 연구 모임이 고려 개경을 연구하고 있었기에, 방송국에 여러 자문과 함께 북한 측 연구자 ㅈ씨를 만나서 연구 이야기를 들으라고 조언했다. ㅈ씨는 해방 후 개경 성곽 전체를 직접 조사하여 논문을 발표한 유일한 분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온 방송국팀이 전한 북한의 환경은 열악했다. 수시로 정전이 되는 바람에 촬영이 자주 중단됐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추천한 ㅈ씨는 자신의 박사논문 원고를 보자기에 싸..

책이야기 2023.10.20

이제 막을 내리는 하루키 월드

이제 막을 내리는 하루키 월드 입력 : 2023.10.20 20:49 수정 : 2023.10.20. 20:53 한윤정 전환연구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이 나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30년 동안 하루키 소설을 따라 읽어온 터라 이번에도 습관처럼 책을 주문했고, 760쪽 분량이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틀간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오래된 독자들 때문인지 혹은 ‘하루키’라는 이름이 여전히 새로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지, 이 책은 예약판매 단계부터 3쇄라는 기록을 세웠을 뿐 아니라 두 달째 주요 서점의 문학 부문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49년생으로 올해 74세인 하루키는 극렬한 학생운동 세력인 ‘전공투 세대’로서 폭력적 집단주의에 반발해 개인의 내면과 일상에 천착했다...

책이야기 2023.10.20

75년 전 오늘, 여순에서 벌어진 일... 양지바른 곳에 묻힌 학살자

75년 전 오늘, 여순에서 벌어진 일... 양지바른 곳에 묻힌 학살자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여수지구계엄사령관 송석하, 반군토벌사령부 정보참모 백선엽 23.10.19 14:55l최종 업데이트 23.10.19 20:36l 정성일(jsichj) 10월 19일은 여순민중항쟁 75주기를 맞이하는 날입니다. 오랫동안 여순민중항쟁은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렸습니다. 75년 전 여수와 순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동족상잔 결사반대 여수 제14연대는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미군 철수시 국방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한 미군정이 기존 9개 연대 외 6개 연대를 추가하며 창설됐습니다. 광주에 주둔한 제4연대 안영길 대위 등 기간병력 1개 대대가 1948년 3월부터 여수 신월리에 내려와 전남 동부지역에서 모병..

칼럼읽다 2023.10.20

기름진 맛 조미료?

기름진 맛 조미료? 입력 : 2023.10.19. 20:26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제가 좋아하는 튀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기름진 맛도 하나의 맛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인데요.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맛을 보통 5가지로 구분합니다. 19세기까지는 단맛·짠맛·신맛·쓴맛의 4가지 맛만 인정됐습니다. 이 4가지 기본맛 그리고 이들이 서로 혼합된 것을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맛이라 본 것입니다. 기원전 4세기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러한 주장을 펼친 이래 거의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여기에 더해 새롭게 감칠맛이 등장한 것은 1908년 도쿄대학의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에 의해서입니다. 예전부터 일본인들이 ‘우마미’라 부르던 것을 또 다른 별개의 기본맛이라 주장하..

칼럼읽다 2023.10.20

나는 노들의 학생이다

나는 노들의 학생이다 입력 : 2023.10.19. 20:26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지난 금요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노들장애인야학(노들)에 다니는 학생들의 무상급식을 위한 후원 행사가 열렸다. 우리는 이 행사를 ‘평등한 밥상’이라고 부른다. 정부가 학생들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해주면 좋겠지만 노들은 정규학교가 아니어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런데 노들은 정규학교가 장애인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학교다. 정규학교에서 배제해놓고, 정규학교가 아닌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급식에서 배제하는 셈이다. ‘평등한 밥상’은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기울어진 밥상을 적어도 이 학교에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매년 이맘때면 교사들 모두가 후원 티켓 판매에 나선다. 나..

칼럼읽다 2023.10.20

[말글살이] 조의금 봉투

[말글살이] 조의금 봉투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람의 일 중에서 형식과 절차가 제일 엄격히 갖춰진 것이 장례이다. 특별히 줏대 있는 집안이 아니라면, 장례식장에서 시키는 대로 빈소를 꾸미고 염습과 입관, 발인, 운구, 화장, 봉안 절차를 밟으면 된다. 문상객이 할 일도 일정하다. 단정한 옷을 입고 빈소에 국화를 올려놓거나 향을 피워 절이나 기도를 하고 상주들과 인사하고 조의금을 내고 식사한다 (술잔을 부딪치면 안 된다는 확고한 금칙과 함께). 유일한(!) 고민거리는 조의금으로 5만원을 할 건가, 10만원을 할 건가 정도? 장례식장마다 봉투에 ‘부의’(賻儀)나 ‘조의’(弔儀)라고 인쇄되어 있으니, 예전처럼 봉투에 더듬거리며 한자를 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한 일이지만,..

연재칼럼 2023.10.20

[말글살이] 부사, 문득

[말글살이] 부사, 문득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부사(副詞)는 이름부터 딸린 식구 같다. 뒷말을 꾸며주니 부차적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더부살이 신세. 같은 뜻인 ‘어찌씨’는 이 품사가 맡은 의미를 흐릿하게 담고 있다. 글을 쓸 때도 문제아 취급을 당한다. 모든(!) 글쓰기 책엔 부사를 쓰지 말라거나 남발하지 말라고 한다. 좋은 문장은 주어, 목적어, 서술어(동사)로만 되어 있다는 것. 부사는 글쓴이의 감정이 구질구질하게 묻어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지 못하면서도 마치 그럴듯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준단다. (그러고 보니 이 칼럼의 분량을 맞출 때 가장 먼저 제거하는 것도 부사군.) 그래도 나는 부사가 좋다. 개중에 ‘문득’을 좋아한다. 비슷한 말로 ‘퍼뜩’이 있지만, 이..

연재칼럼 202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