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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옥은 필요하다

어떤 지옥은 필요하다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시에 쓴 적 있다. ‘중2병’이 고1까지 지속된 탓인데, 당시 합평회에서 친구들이 감탄하며 따라 읊조리던 걸 떠올려보면 그들 역시 같은 환우였던 게 분명하다. 정작 그 문장이 실린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을 읽은 건 스물몇살 때였던 것 같다. 그제야 알았다. 사르트르는 단순히 타인이 지옥임을 선언한 게 아니라, 타인이라는 지옥에 갇혀 있음에도 우리는 벗어날 수 없으며 심지어 기회가 주어져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이렇게 투덜거릴지 모른다. “대체 이 사람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웹툰 얘긴 줄 알았더니….” 맞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어..

칼럼읽다 2023.10.06

작가는 노동자인가

작가는 노동자인가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작가를 노동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노동자라 생각하며 글을 쓰진 않거든요. 고용주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시작부터 한분이 정체성에 의문을 던졌다. 지난 9월 중순, 작가노조를 준비하는 이들이 처음 얼굴을 맞댔다. 이른바 ‘순문학’, 에스에프(SF), 르포, 대중문화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현역 선수들이 두루 참석했다. 출판문화상 시상식장 같은 곳 아니면 평생 한자리에서 마주칠 일 없는 분들이다. 나는 사회과학과 저널리즘 사이 어딘가의 애매모호한 인간이지만, 일단 ‘인문사회 작가’로 분류됐다. 처음엔 살짝 서먹했지만 금세 공기가 뜨거워졌다. 작가들은 입에서 불을 뿜듯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초대를 받..

책이야기 2023.10.06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해보니 많은 게 다르네요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해보니 많은 게 다르네요 사서의 시간은 결코 여유롭거나 편안하지 않다 23.10.06 15:31l최종 업데이트 23.10.06 15:33l 한재아(jaeai2002)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편집자말] 공공도서관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조용한 곳, 여유롭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말한다. 사서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다. 도서관은 조용하고 여유로운 곳이다. 과거의 도서관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

책이야기 2023.10.06

대세는 따라야 하는가

대세는 따라야 하는가 입력 : 2023.09.22. 20:07 한민 문화심리학자 사람들은 대세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꽤나 대세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특정 상품의 유행뿐만이 아니라 대학입시, 고시, 의대 진학, 부동산, 코인 열풍 등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강력한 대세들이 한국에는 많이 존재한다. 대세를 따르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이는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의 유명한 실험으로 증명된 바 있다. 애시는 7, 8명의 참가자들을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히고 선 하나가 그려진 종이를 보여주고, 잠시 후 서로 다른 길이의 세 개의 선이 그려진 종이를 보여주며 좀 전에 본 선과 같은 길이의 선을 고르게 했다. 이 실험에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참가자들 중 실제로 응답을 ..

칼럼읽다 2023.10.06

경기도 친환경 무상급식, 교육청이 흔드나

경기도 친환경 무상급식, 교육청이 흔드나 입력 : 2023.10.05 20:36 수정 : 2023.10.05. 20:39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아이의 학교 기숙사에서 물가가 상승한 데다 학생들이 줄어들어 밥값이 오른다는 연락을 받았다. 점심은 학교급식을 먹지만 기숙사의 아침, 저녁밥은 외부업체에서 밥차로 받는데 입맛 무던한 아이마저도 영 부실하다고 말한다. 그나마 이문도 크게 남지 않는 급식 업체를 유치하느라 교사들이 애를 썼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감지덕지하고 있다. 부모로서 안타깝지만 아이에게 학교 급식이라도 든든하게 먹으라 당부 중이다. 학생들이야 학교급식을 12년 동안 먹으니 겹치는 느낌을 받더라도 식단은 학교급식이 다양하다. 집에서는 국을 한 냄비 끓여 몇 끼니를 먹어도 학교급식은 국이나 찌개만..

칼럼읽다 2023.10.06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말글살이]

기역 대신 ‘기윽’은 어떨까, 가르치기도 편한데 [말글살이] 게티이미지뱅크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마르고 닳도록 입고 다니던 청바지가 버스에 앉는데 찍 하고 찢어졌다. 천을 덧대어 오버로크해서 버텼으나, 오래 못 가 뒷무릎까지 찢어졌다. 아깝더라도 버릴 수밖에.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김수영)지만, 언젠가는 버려야 할 때가 온다. 한글 자음 이름도 그렇다. 한글 창제 후 백년쯤 지나 최세진은 어린이용 한자학습서 ‘훈몽자회’를 쓴다. ‘天’이란 한자에 ‘하늘 천’이라고 적어두면 자습하기 편하겠다 싶었다. 명민한 최세진은 이름만 배워도 그것이 첫소리와 끝소리에서 어떻게 발음이 되는지 알 수 있게 만들었다. ‘리을, 비읍’처럼 ‘이으’의 앞뒤에 ㄹ, ㅂ을 붙이면 첫소..

연재칼럼 2023.10.06

국민이 희망을 놓아버릴 때

국민이 희망을 놓아버릴 때 이경자ㅣ소설가 저는 요즘 매주 기다리는 소식이 생겼습니다. 에버랜드 아기 판다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푸바오’의 동생들인 쌍둥이 판다 동영상이 올라와 거푸 두번을 보았네요. 쌍둥이 판다 이름 짓는 공모 이벤트에도 열심히 참여해 매번 제 마음에 드는 이름에 투표합니다. 제가 판다들 동영상을 기다리고 되풀이해 돌려 보는 이유는 생명에 기울이는 ‘진실’과 ‘정성’이란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엔 거짓이 없더라고요. 거짓 없는 생활, 관계를 동영상으로 바라보며 생각지도 못했던 걸 느끼고 배우고 반성하고 부끄러워합니다. ‘강바오’라고 불리는 사육사님의 태도에도 놀랍니다. 동물과의 진실한 사랑에 감동해서. 저도 젊은 날 아이를 배고 낳고 젖 먹이고 기르고 가르친 적이 있는데, ‘아이바오’..

칼럼읽다 20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