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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말글살이]

끝내 [말글살이]수정 2025-05-08 18:44 등록 2025-05-08 14:30 ‘내내’는 어떤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이어질 때 쓰는 부사이다. ‘여름에 비가 왔다’는 말은 비가 한번만이라도 내리면 그만이지만, ‘여름 내내 비가 왔다’고 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는 뜻이 된다. ‘말 그대로’ 쉼 없이 비가 내렸다면 재앙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피해가 심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말은 태생적으로 ‘뻥튀기’이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중에서 눈에 띄는 한두가지를 골라 마치 그게 전부인 양 과장한다. ‘방학 내내 소설책만 읽었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적어도 밥은 먹고 잠도 잤을 테니). 여러 일 중에서 소설책 읽는 게 가장 도드라졌다는 뜻이겠거니 한다. ‘..

연재칼럼 2025.05.09

열 살 되던 해

열 살 되던 해 수정 2025.05.06 20:25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열 살 되던 해, 새 교장 선생님이 부임했다. 변두리 시장통에 자리 잡은 이 학교에도 선진교육을 들여와 학부모들이 빚내어 더 나은 학군으로 이주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훈화하시던 그분은 높은 이상을 품은 열정적인 교육자셨다. 다만 그 이상이 때론 학교 현장에서 부담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던 듯하다. 그분이 야심 차게 도입한 ‘구라파식 체력단련’이 특히 그러했다. 월요일에 조회를 마친 후 교무실로 심부름 갔더니 몇몇 선생님들이 밀크커피를 타 마시며 “구라파 좋아하시네” 쿡쿡 웃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다. 체력단련의 방편으로 우린 매주 한 번, 한 학년 열두 반이 줄줄이 버스 타고 멀리 동서울 수영장까지 찾아가 교습을 받았다. ..

칼럼읽다 2025.05.07

탕수육은 왜 ‘부먹’인가

탕수육은 왜 ‘부먹’인가 수정 2025.05.01 20:20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얼마 전 지인과 함께 방문한 브런치 카페에서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요리를 발견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프렌치토스트 같지만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빵인지 달걀요리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로 두 재료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죠. 오래전 한 요리사로부터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비법은 빵을 균일하게 잘라 건조기에서 완전히 건조한 뒤 우유 등을 함께 넣은 달걀물에 하루 이상 담가 달걀물이 빵 안으로 충분히 침투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중간 불에서 겉을 빠르게 익히고 안쪽은 오븐에서 서서히 익힌다고 했습니다. 지인과 프렌치토스트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탕수육이 떠올랐습니..

칼럼읽다 2025.05.06

아부하는 인공지능 [유레카]

아부하는 인공지능 [유레카]구둘래기자수정 2025-05-04 18:31 등록 2025-05-04 18:03 “인공지능(AI)이 아부하기 시작했다.” 챗지피티(chatGPT) 4o(포오)의 3월 말 업데이트 이후로 나온 반응이다. 챗지피티가 어떤 질문에도 ‘통찰력이 있다’ ‘좋은 질문’이라고 일단 말하고 답변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오픈에이아이는 “좋아요 싫어요에 대한 피드백에 ‘과잉반응’한 결과”라고 토론 웹사이트 레딧 등을 통해 말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잘 쓰는 방법으로는 프롬프트(명령어 창)에서 자신과 상대방의 역할을 먼저 설정하고 들어가는 것을 든다.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때, 자신을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상대방을 ‘튜터’로 설정하면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식이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

칼럼읽다 2025.05.05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속셈’이 있다 [말글살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속셈’이 있다 [말글살이]수정 2025-05-01 18:39 등록 2025-05-01 14:30 스무살 언저리. 식당에서 밥을 더 얻어먹겠다는 심산으로 잔꾀를 부렸다. 비빔밥을 시키고 일부러 고추장을 반 숟가락 더 넣어 벌겋게 만들었다. 식당 주인에게 “고추장을 너무 많이 넣어 매워서 그러니 밥 좀 더 주실 수 있나요?” 얼마나 잔머리를 굴리며 살아왔을지 안 봐도 알겠지? 연필이나 계산기를 쓰지 않고 머릿속으로만 하는 계산을 속셈이라 하는데, 외우는 것이라곤 구구단밖에 없는 나로선 속셈으로 ‘35×72’ 같은 두 자릿수 곱셈은 엄두도 못 낸다. 머릿속 허공에 칠판을 달아 놓고 셈을 해 봐도 ‘35×2’의 값을 금방 까먹어 버리니 도무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숫자로 하는 ..

연재칼럼 2025.05.03

애순이, 금명이, 그다음을 위하여 [노정혜 칼럼]

애순이, 금명이, 그다음을 위하여 [노정혜 칼럼]수정 2025-05-01 18:46 등록 2025-05-01 16:08 노정혜 | 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국제적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16부작을 모두 몰아 보며 펑펑 울었다. 제주도 해녀의 집안에서 할머니와 엄마, 딸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좌충우돌 인생사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시대적 상황의 변화를 같이 겪어온 엄마 세대인지라, 악조건에서 꿈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1950년대 가난한 해녀의 딸로 태어난 총명한 엄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시인이 되는 꿈을 가졌지만, 험난한 인생길에서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일편단심 자신을 부추겨준 남편의 도움으로, 또 가난과 편견을 딛고 스스로 길을 찾은 딸을 통해 자신..

칼럼읽다 2025.05.03

효 마라톤의 역주행

효 마라톤의 역주행 수정 2025.04.30 21:06 손희정 문화평론가 ‘천만 러너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달리기를 즐긴다니, 이제 달리기는 단순한 붐을 넘어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아가는 모양이다. 이와 함께 달리기 대회도 성황이다. 인기 있는 마라톤 대회는 참가 신청 경쟁이 치열해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을 방불케 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심지어 웃돈을 얹어 배번을 양도받는 일까지 벌어진다. 나도 달리기에 빠져 살다 보니 러닝 크루에도 들어가고, 마라톤 대회도 하나둘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3일, 드디어 인생 첫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다. 그러던 중 좀 이상한 마라톤 대회에 대해 알게 됐다. ‘화성 효 마라톤’이다. 이 대회는 커플런의 경우엔 ‘..

칼럼읽다 2025.05.02

‘호모 콤파라티오’, 비교하는 인간 [똑똑! 한국사회]

‘호모 콤파라티오’, 비교하는 인간 [똑똑! 한국사회]수정 2025-04-30 18:44 등록 2025-04-30 17:32 게티이미지뱅크 이승미 |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반도체물리학 박사) 5월은 기념일이 풍성한 달이다. 노동절로 시작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이 이어지니 ‘가정의 달’로도 불린다. 설날과 추석 못지않게 지출이 늘어나는 달로 기억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다소 덜 알려졌지만 이렇게 각종 기념일이 줄지어 있는 5월에는 매우 의미 깊은 기념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5월20일 ‘세계 측정의 날’이다. 세계 측정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75년 파리에서 체결된 미터협약을 기념한다. 미터협약은 세계 17개국이 참여한 국제조약으로서 길이 단위 미터와 ..

칼럼읽다 2025.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