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106

안전 여부가 오염수 방류 기준이 되면 안 되는 이유

안전 여부가 오염수 방류 기준이 되면 안 되는 이유 입력 : 2023.06.14 03:00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편집장 지난 12일부터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 보관 중인 방사성물질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위해 2주간 시운전을 시작했다. 이날자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은 ‘“오염수 방류, 사형 선고” 어민들 피눈물’이었다. 어부 일은 끝났다는 제주 어민들, 소금값이 한 달 동안 30% 넘게 오른 전남 신안, 수산물 소비절벽을 확신한다며 사형수 심정이라는 부산 자갈치시장 상인들의 소식이 이어졌다. 원고 마감 중 틈틈이 살펴본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에는 오염수 소식이 거의 없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자국 산업이 죽어가는데 안전이 검증되면 마시겠다는 국무총리. ‘우리 대통령’은..

연재칼럼 2023.08.14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국인의 전례없는 친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국인의 전례없는 친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에 붙는 ‘세계 최고’ 내지 ‘세계 최저’, ‘세계 최악’이 몇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부유한 나라 중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전체 임금 근로자의 약 37%)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고, 노인빈곤율(37.6%)이 제일 높은 나라도 한국이다. 합계출산율(0.78)은 세계 최저이고, 자살률(10만명당 23.6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악이다. 한국의 그 많은 ‘세계 최고’ 중에는 시민들의 대외관에 관한 통계도 하나 있다. 바로 미국에 대한 호감도다. ‘미국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89%로 아시아에서 단연 최고이며, 세계에서는 폴란드(91%) 다..

연재칼럼 2023.08.12

[말글살이] ‘존버’와 신문

[말글살이] ‘존버’와 신문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쌍스러워 보이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당신은 신문에 ‘존나’라는 단어를 써도 된다고 보는가? 알다시피 ‘존나’는 거친 욕을 살짝 달리 발음한 것이다. ‘졸라’, ‘조낸’으로 바꿔 쓰기도 한다. 양의 차이는 있지만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즐겨 쓴다. 그래도 신문에 욕을 쓰는 건 무리겠지? 그렇다면 ‘존버’는 어떤가? ‘존나 버티기’의 준말인데, ‘끝까지 버티기’ 정도로 ‘예쁘게’ 의역한다. ‘존버 정신’이나 ‘존버 장인’이란 말로 확대되기도 했다. 생긴 걸 품평하는 ‘존잘(잘생겼다)’, ‘존예(예쁘다)’, ‘존멋(멋있다)’은 ‘존버’와 사촌지간이다. 말은 사전적인 뜻만을 전달하지 않는다. 모종의 감정이 들러붙는다..

연재칼럼 2023.08.11

북극곰과 나의 공통점, ‘지구를 구할 수 없다’

북극곰과 나의 공통점, ‘지구를 구할 수 없다’ 입력 : 2023.08.08. 20:28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편집장 류준열 배우가 전하는 ‘그린피스’의 목소리다. “나는 북극곰입니다. 나는 기후 변화가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뽀얀 털을 갖고 있어서, 귀여운 까만 코를 갖고 있어서, 당신은 나를 걱정하고 안타까워 하지만 당신이 걱정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닙니다. 이미 당신에게 계절은 의미가 없어졌고, 이상기온은 더 이상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 북극곰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 북극곰과 우리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끔찍한 변화를 멈춰주세요.” 이 공익광고는 기후 위기를 기존과는 다른 관..

연재칼럼 2023.08.09

[말글살이] ‘걸다’, 약속하는 말

[말글살이] ‘걸다’, 약속하는 말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인간만이 ‘약속’을 한다. 생각해 보라.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세상은 돌아가고 어떤 일이든 벌어진다. 그런데도 굳이 인간은 수시로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한다. 약속은 인간이 말을 통해 자신과 자신이 하게 될 행위를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것이다. 자신과 세계를 맞물리게 함으로써 ‘말하는 동물’로서 인간의 본성에 다다른다. 문제는 약속을 무엇으로 보증하냐는 것이다. 약속은 그만큼 불이행의 가능성, 거짓 약속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다. 약속을 어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 모든 약속은 윤리적이며 정치적이다. “오늘부터 술을 끊겠어”라는 약속을 할라치면 “그 말을 어떻게 믿어?”라는 핀잔을 듣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걸..

연재칼럼 2023.08.05

[말글살이] 화무십일홍

[말글살이] 화무십일홍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삼류 무림의 세계로구나!’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공간을 이렇게 풍류(?)를 담아 선언하고 나면, 격동하던 마음도 가라앉고 ‘이 풍진 세상’을 견딜 힘이 생긴다. 권모술수와 이합집산이 어디 천하를 경영하는 자들의 세계에서만이랴. 작고 구체적인 삶일수록 더욱 치졸하고 비루한 법. ‘세상은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금언은 미리 알려진 모범답안이다. 게으른 방식이지만, 상황을 이겨내는 데 유용할 수 있다. 군에 갓 입대한 젊은이에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두려움을 이겨낼 힘을 준다. 곤궁한 사람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위로와 용기를 선물한다. 하지만 금언은..

연재칼럼 2023.07.30

모호하다

모호하다 [말글살이]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똑 부러지게 말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흥, 어느 누구도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오. 말의 가장 큰 특징은 모호하다는 것. 정확한 말은 없다. 예컨대, ‘청년’이라는 말은 모호하다. 물론 10살 어린이나 60살 먹은 사람을 청년이라 하지는 않는다. 스무살인 사람은 청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열아홉살은 어떤가. 마흔살은? 국어사전에 따르면 ‘서른살에서 마흔살 안팎의 나이’를 ‘장년’이라고 정의하던데, 그렇다면 청년은 스무살부터 서른살까지? 서른한살은 청년이 아닌가? 모호성은 ‘무지’(모른다)와는 다르다. 다른 행성에 생명체가 있는지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아직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줄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뜻일 뿐이다. 생명체가 확인되면 ..

연재칼럼 2023.07.30

[말글살이] 금쪽이

[말글살이] 금쪽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누가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말이 있다. ‘금쪽이’도 그중 하나. ‘쪽’이란 말은 쪼개진 물건의 일부분, 또는 작은 조각을 뜻한다. ‘대쪽’, ‘반쪽’, ‘쪽잠’, ‘쪽파’, ‘콩 한쪽’ 같은 예에 섞여 쓰인다. 주로 ‘금쪽같은’, ‘금쪽같이’라는 형태로 쓰이는 ‘금쪽’은 작은 조각의 금이다. ‘금쪽같은 자식’뿐만 아니라, ‘금쪽같은 시간, 금쪽같은 기회’에서처럼 금 자체보다는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용도로 자주 쓰인다. ‘금쪽’에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이’를 붙여 만든 ‘금쪽이’는 당연히 ‘귀한 자식’을 뜻해야만 한다! 기왕 귀한 걸 뜻할 바에야 화끈하게 ‘금덩이’나 ‘골드바’라고 했어도 ..

연재칼럼 2023.07.30

산재일기 [말글살이]

산재일기 [말글살이]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지만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같은 ‘아’도 다르게 들린다. 언론은 누구의 목소리를 들려주는가? 주류 언론은 자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한국 사회의 근본 병폐에 눈감고 이 체제가 최선이라고 되뇐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의 노력이 돋보인다. 노동자의 글쓰기.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기획 연재 ‘6411의 목소리’는 이제 50회에 이르렀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상담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돌봄노동자, 배달라이더, 이주민, 대리기사 등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투명인간들이 자신의 노동과 삶의 이야기를 직접 쓴다. 임금노동자 2172만명 중 비정규직이 815만명. 출근길에 나..

연재칼럼 2023.07.19

계급 세습권으로서 학교폭력

계급 세습권으로서 학교폭력 입력 : 2023.03.22 03:00 수정 : 2023.03.22 03:03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편집장 지금 한국 사회를 맹렬히 작동시키는 이 새로운 자본주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학교폭력은 한국 사회의 결과일까. 원인일까. 나는 학교폭력이 그 자체로 문제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어른 문화의 부수적인 문제로 여기는 발상에 반대한다. 그런 면에서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문제도 나이가 아니라 죄질로 논의 구도가 이동해야 한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편집장 노예무역 당시 백인 사냥꾼들에게 잡힌 흑인들은 ‘상품 운반’ 과정에서 기아와 폭력으로 이미 반 이상 사망했다. 주지하다시피 초기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였다. 서구는 자원 약탈과 점령으로 세계를 자기 땅으..

연재칼럼 2023.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