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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더 많은 용기를, 우리 모두에게 입력 : 2023.12.17. 20:16 김현호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 플랫폼P 센터장 웹툰을 자주 본다. 솔직히 말하면 거의 중독 수준이다. 수만권의 만화책에 시간을 쏟아붓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더 건실한 인간이 되었을 것 같다는 후회 때문에 조금은 자중했지만, 몇번의 입원과 잦은 출장을 핑계로 결국 이 새로운 형식의 만화에 흠뻑 빠져들고야 말았다. 이제는 틈이 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고 이 안온하고 유쾌한 세계로 자연스레 향한다. 만화책에 익숙한 독자 입장에서 요즘 한국 웹툰의 수준은 놀랍다. 스크롤을 이용해 좁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스펙터클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펼침면과 컷을 리드미컬하게 다루며 몰입감을 이끌어내던 전성기 출판 만화들에 비해서도 탁월하며, ..

책이야기 2023.12.30

‘나쁜 PVC’가 학교에 사용된다

‘나쁜 PVC’가 학교에 사용된다 입력 : 2023.10.19 20:29 수정 : 2023.10.19. 20:33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나는 쓰레기 줄이는 ‘제로 웨이스트’ 상점에서도 일하고 환경단체에서도 일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는 상점 갈 때마다 없던데 돈 수금만 하냐는 오해를 산다. 반대로 단체에 출근했다 하면 상점 말고 딴 일로 돈 벌어야 하냐고 걱정들 한다. 여러 일을 하는 ‘N 잡러’나 프리랜서들은 주변에 설명할 일이 많다. 정작 내게는 이 일이나 저 일이나, ‘본캐’나 ‘부캐’나, 사장이나 환경 활동가나, 플라스틱 파파라치와 같은 한통속의 일인데 말이다. 제로 웨이스트 상점은 플라스틱 껍데기인 포장을 없애는 데 집중하고, 환경단체는 껍데기 속 알맹이가 유해한 플라스틱인지 캐묻는 활동..

칼럼읽다 2023.12.30

영화계는 더 이상 당신들의 ‘밥’이 아니다

영화계는 더 이상 당신들의 ‘밥’이 아니다 사회 부조리 고발 신호탄 되어야 할 이선균의 죽음 오동진 영화 평론가 이선균의 장례가 끝났다. 경기도 광주의 한 장지에 그는 봉안(奉安)됐다. 그는 영면에 들어갔지만 말이 좋아 영면이지 그의 입이 봉인(封印)된 것이다. 그의 비극적 죽음은 생을 스스로 끝내기 바로 직전의 치욕적인 삶에 비해 언론에서 외면 받았다. 김홍일 신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이선균과 관련됐던 그간의 방송 보도, 특히 KBS의 녹취록 공개에 대해 뉴스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자인했지만 그 얘기는 이제 이로써 이선균의 죽음 자체에 대한 뉴스 가치조차 삭감하라는 지시처럼 느껴졌다. 뉴스는 급격하게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행보로 옮겨 갔다. 그것을 두고 보도국이나 편집국에서는 팩트를 좇는 언론..

칼럼읽다 2023.12.30

몸을 낮추면 보이는 것들

몸을 낮추면 보이는 것들 헬싱키예술박물관(HAM)에서 열린 ‘봄 목장으로’라는 전시를 관객들이 관람하는 모습. 전시는 2024년 1월까지 열린다. 사진 신하경 [크리틱] 강혜승 | 미술사학자·상명대 초빙교수 곧 어린이 꼬리표를 뗄 딸아이와 지난주 핀란드를 다녀왔다. 아이와의 핀란드 여행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버킷리스트였다. 부모가 막 됐을 무렵 출장차 홀로 핀란드를 방문했다. 당시 헬싱키에서 보낸 며칠의 경험은 한 아이를 책임지는 어른으로서 세상을 달리 보게 된 계기가 됐다. 당연한 줄 알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상상의 경계도 보게 됐다. 그때 다짐했다. 아이가 제 발로 여행할 만큼 자라면 일상에서 어른의 눈높이로 배제되지 않는 경험을 꼭 하게 하리라. 8년 가까이 된 기억이지만, 헬싱키의 키아스마 현대미술..

칼럼읽다 2023.12.30

입으로 지은 업 깨끗하게 씻으며

입으로 지은 업 깨끗하게 씻으며 입력 : 2023.12.28 22:15 수정 : 2023.12.28. 22:16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한 사람을 만나는 건 하나의 문을 여는 것. 말 하나를 배우는 것도 문 하나를 열고 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가전제품 살 때, 어디 기계만 달랑 오던가. 설명서에 딸려온 새로운 단어로 사용법을 익힌다. 좋은 일은 앞에 있는 법, 이 물건과 엮어나갈 사연은 또 얼마이겠는가. 사람 人. 작대기로 지게를 받쳐놓은 듯 사람이 서로 의지하는 모양이라고 풀이한다. 문 門. 문이야말로 더욱 구체적이다. 마주 보는 두 얼굴의 옆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문을 만나고 문을 통과하면서 결국 바깥까지 나아간다. 대설 지나 동지도 지나면서 시간의 문이 점점 잘록해진다. 계묘년을 닫으며 성큼 들어서..

칼럼읽다 2023.12.30

12월의 연하장

12월의 연하장 입력 : 2023.12.06 20:52 수정 : 2023.12.06. 20:53 임의진 시인 연말과 연초면 지인들에게 성탄 카드와 연하장을 부치곤 했었다. 전보 서비스도 종료되어 없어지고,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엽서를 우체통에 넣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한 스승에게 제자가 묻기를 “스승님! 진정한 친구는 어떻게 가질 수 있나요?” “참된 친구가 만약 있다면 한 명도 기적과 같은 법이다. 둘은 많고, 셋은 불가능해. 나도 그런 친구가 없어 즐겁게 놀지 못하고, 이리 공부만 하는 거 아니냐.” 제자는 골똘히 궁리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더래. 그대에게 한 명의 기적 같은 친구가 있어 연하장을 부칠 수 있길 비는 마음이다. 함석지붕의 오리지널 흙집 ‘토굴’에 머물던 분을 안다. 우리는 억은커녕..

칼럼읽다 2023.12.30

바람 냄새

바람 냄새 입력 : 2023.12.27 22:26 수정 : 2023.12.27. 22:30 임의진 시인 네 발 내 발 아니고 제발.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잘못과 실수가 많은 인생이야. 누구나 그렇지. 그래 ‘제발 부탁해’란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제발 더 자고 싶어. 기린은 하루 3시간밖에 못 잔다고 해. 개미는 아예 잠을 안 자다시피 한다는데, 하루에 두 번 고작 7~8분씩 쪽잠을 잔대. 수면제라도 먹지 좀. 나무늘보는 너무 게을러터져서 일주일에 딱 한 번 나무 밑으로 내려오는데, 이유는 화장실 때문이래. 내년엔 제발 부지런해지길 바라. 매미는 땅속에서 15년 이상을 지낸다. 제발 내년에는 땅속에서 나와 로커처럼 시끄럽게 노래하렴. 하마는 오줌을 누어 지린내로 구애를 하는데 내년에는 제발 잘생긴 미모..

칼럼읽다 202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