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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는 삶을 위한 스킬

계속 쓰는 삶을 위한 스킬온 몸으로 글쓰기24.06.22 14:31l최종 업데이트 24.06.22 14:31l 강주은(danmoo777)  '원컨대, 내 생각이 명확한 표현을 찾게 해주소서.' 단테신곡 천국편 24곡에 있는 문장이다. 책상 위,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나도 간절히 바랐었다. 프렉탈 구조처럼 얽히고 설킨 생각을 또렷하고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가지런히 표현할 길은 없을까? 하고 말이다. 마음속 말을 다 쓸 수 없어 답답한 고구마를 먹던 날들에 고해본다. 나는 이제부터 마음의 빗장을 열 텐데 부디 질서 있게 나와다오! 어떤 재료로도 맛있게 우아하게 요리를 내올 테니 기다려 주겠니? 적어도 목 메는 고구마보다야 더 요리다운 요리를 약속하지. 요리에 대한 값은 시간과 열정과 성실로 대신하고 마침내..

책이야기 2024.06.23

돌멩이, 이층, 카프카

돌멩이, 이층, 카프카입력 : 2024.06.20. 20:55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일은 꼬이고 울적해 발길에 걸리는 대로 걷어차며 걸을 때, 아무 잘못도 없이 애꿎게 당하는 건 대개 돌멩이거나 나뭇가지인데 그냥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던 발끝에서 옛생각 하나 몰려나오기도 한다. 어린 시절 뒹군 고향의 이웃 마을은 거창군 고제면이다. 한자로 高梯, 하늘에 걸친 ‘높은 사다리’라는 뜻. 덕유산 자락인 고제는 한때 금 광산도 있고, 오일장도 열리며 번성했으나, 옛 자취는 흔적 없고 그 시절을 기억해 줄 어른들마저 사다리 타고 거의 다 올라가신 듯하다. 지금은 농협 하나로마트가 그나마 큰 건물이고, 보건소와 면사무소는 시무룩하게 서 있을 뿐이다. 그 곁에서 눈을 씻고 보면 ‘높은 다리’가 뱀 허물처럼 앉아 있..

칼럼읽다 2024.06.23

몸의 일기를 쓴다

몸의 일기를 쓴다입력 : 2024.06.20 20:53 수정 : 2024.06.20. 20:56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얼마 전 후배가 74세의 딩크족 노부부에 대한 다큐 한 편을 소개했다. 핵심은 ‘느림’이었다. 70대가 되면 ‘후다닥’ 밥을 차리는 게 불가능한 몸이 된다는 것이다. 노년 코하우징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나에게 후배는 “그냥 넓은 집에서 친구들과 다 같이 사세요. 70, 80대가 되어서 각자 공간을 갖는 게 의미가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그 프로젝트에서 비용이나 건축법 못지않게 고민이 된 것은 ‘늙은 몸’에 대한 구체성이었다.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가 필요할까? 몇살까지 운전할 수 있을까? 늙은 몸이 도통 가늠되지 않을 때 나는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를 다시 읽는..

칼럼읽다 2024.06.22

6월 폭염

6월 폭염입력 : 2024.06.20. 18:06 이명희 논설위원  ‘가마솥’이 따로 없다. 아직 6월인데, 전국에서 폭염 신기록이 세워지고 있다. 19일 서울은 35.8도까지 올라 1958년 이후 가장 더운 6월 날씨를 기록했다. 낮 한때 39도까지 오른 경북 경산시처럼 체온보다 기온이 더 올라간 도시도 여러 곳이다. 20일 기상청은 서울에 이틀째 폭염주의보를 내렸다. ‘더위 먹은 소 달만 봐도 허덕인다’는 속담이 있다. 한낮이 너무 뜨겁다 보니 밤에 달만 봐도 놀란다는 말인데, 지금 소가 아니라 사람이 그럴 지경이다. 때이른 폭염은 전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국은 북동부·중서부 지역을 덮친 열돔 현상으로 비상이 걸렸다. 그리스는 이달 40도가 넘는 더위가 계속돼, 관광객 6명이 숨지거나 실..

칼럼읽다 2024.06.21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할 수 없다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할 수 없다입력 : 2024.06.19 20:35 수정 : 2024.06.19. 20:39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과학소설 작가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과학자로 30여년을 보냈고, 인공지능 관련 물리학 논문을 몇편 출판했으며, 인공지능 관련 초급 대학 강의를 맡아 가르치기도 했지만, 요즘 생성형 인공지능의 눈부신 성능은 내게도 마법 같다. 위에서 소개한 아서 클라크의 말을 비슷한 형식으로 살짝 비틀어 재밌게 표현한 글귀를 접한 적이 있다. 과학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학과 사람들’에서 몇년 전 제작한 커피 컵에서 본, “완벽한 암기는 이해와 구별할 수 없다”라는 재밌는 문장이다. 요즘 인공지능의 엄청난 발전..

칼럼읽다 2024.06.20

여름을 받아들이기

여름을 받아들이기입력 : 2024.06.19 20:39 수정 : 2024.06.19. 20:40 인아영 문학평론가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으니 진짜 여름이 시작된 것일까. 주변에 여름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은 가운데 나는 예전부터 어쩐지 그러지를 못했다. 여름은 상쾌하고 시원하고 생기 있는 계절이지만 동시에 무덥고 끈적이고 지치는 계절이니까. 아니, 그보다 모든 것이 빨리 상하고 쉽게 썩고 금방 사라지는 계절이니까. 겨울에 모든 것이 얼어붙고 잠들어 시간이 고요하고 느리게 흐른다면 여름은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많은 것이 태어나고 자라지만 그만큼 많은 것이 시들고 죽는다고. 금세 지는 꽃잎이나 맥없이 죽는 벌레를 볼 때마다 이렇게나 많은 생명이 요란하게 태어났다가 빠르게 사라지는 계절이 슬프다고 생각했다...

책이야기 2024.06.20

자유로운 몸의 문화

자유로운 몸의 문화입력 : 2024.06.18 20:29 수정 : 2024.06.18. 20:30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독일에 와서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는 나체가 그 자체로 성적인 함의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우나가 남녀공용으로 운영되고 수영장·탈의실 등은 성별로 공간이 나뉘어 있지 않아 모두 섞여 옷을 갈아입는다. 이것은 ‘자유로운 몸의 문화’를 뜻하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의 나체주의 운동 에프카카(FKK; Frei-korper-kultur)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세기 말 레벤스레폼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FKK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자연과 멀어진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벗은 몸으로 만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자는 반권위주의 운동이었..

칼럼읽다 2024.06.19

권정생 선생님께

권정생 선생님께입력 : 2024.06.16 20:35 수정 : 2024.06.16. 20:38 서정홍 산골 농부  선생님,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은 자연재해와 전쟁 따위로 숱한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사시는 나라에는 미움도 원망도 탐욕도 자연재해도 전쟁도 없겠지요? 선생님께서 2005년 5월10일에 쓴 유언장을 다시 읽어 봅니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중략)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선생님,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환생할 뜻을 미루셔야 할 듯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나라마다 힘..

칼럼읽다 2024.06.18

로열의 시대는 끝났다

로열의 시대는 끝났다입력 : 2024.06.13 20:52 수정 : 2024.06.13. 20:53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사과값으로 몇 계절 들썩댔지만 참외, 토마토가 쏟아져 나오자 조금 잠잠하다. 소비자도 손 떨리지만 건질 것이 없던 생산자와 사과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영세 유통상인들도 손이 떨렸다. 사과값 폭등의 주요 원인인 기후위기는 피할 수 없으므로 앞으로도 반복될 테니 답답할 뿐이다. 다만 ‘금사과’ 사태를 통해 배운 것은 농산물 외모지상주의의 무용함이다. ‘못난이’ ‘비(B)품’ ‘흠과’로 부르던 과일을 ‘보조개사과’ ‘가정용사과’로 부르며 알뜰 소비를 하였다는 점에서 큰 배움이었다. 예쁘고 흠도 없는 ‘로열과’는 왕족급의 품위를 뜻하지만 농산물에서 로열과 건지는 일은 점점 더 불가능해..

칼럼읽다 2024.06.17

이상문학상

이상문학상입력 : 2024.06.13. 18:11 이명희 논설위원  1977년 제정된 이상문학상 역대 수상작 표지. 문학사상 제공  “이 상 역시 제 마음자리 가장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소설 쓰는 일에 바치는 수고에 지쳤을 때, 그 일이 허망하고 허망해서 망막해졌을 때 꺼내 볼 겁니다. 그때 그것은 한가닥 빛으로든, 모진 채찍으로든, 저에게 큰 용기가 되어줄 겁니다.” 고 박완서 작가가 1981년 엄마의 말뚝 2>로 제5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전한 연설문의 끝부분이다. 박 작가는 첫해부터 내리 4년간 우수상을 받았다. 대상을 받고 연설문에서 그는 작가에게 문학상이 어떤 의미인지 솔직하게 전했다. 이상문학상은 작가 이상(1910~1937)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문학사상’이 1977년 제정..

책이야기 2024.06.16